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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vel / 임정의의 해외 건축 탐방:파리1
'천의 얼굴' 에펠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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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이후 프랑스인들은 자신의 나라가 문명의 진정한 중심지이며, 사람이 살아가는 법을 선도하는
국가라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17세기와 18세기에 이르러 프랑스 문화는 과연 세계에 그 유례가
드문 탁월한 위치를 차지했다. 막강한 군사력과 루이 14세의 명성은 유럽 대륙 전체에 걸쳐 프랑스의
매너와 스타일을 모방하게 했고, ‘태양왕’이 발산하는 영광은 많은 나라의 상류 계급에 사치스러운
멋을 내는 풍조를 낳게 했다.한 세기 이상의 기간에 중부 유럽의 많은 공국(公國)과 공령(公嶺)들의 많은 지배자들이 그들 영토의 중심 수도에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한 왕궁을 짓기 위해 프랑스 건축가들과 설계사들을 초청했다. 또한 프랑스인 시종과 집사들이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의식들을 관장했다. 기품있는 건축물은 그것이 세워진 시대의 양식을 반영하지만 부단한 변화를 거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부르고뉴 지방의 로마네스크 예술은 랑구독 지방의 그것과는 다르다. 또한 고딕 양식의 대사원을 보더라도 마치 닮지 않은 자매들처럼 지방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다. 프랑스의 각 지방은 지금도 이러한 차이를 완강히 고수하고 있다. 파리의 하늘은 늘 낮게 드리워져 있다. ‘파리의 5월은 아름다워’라는 팝송도 있지만, 파리는 대체로 눈 내리기 직전의 11월처럼 하늘이 묵직하게 내려앉아 있다. 그래서 파리의 모든 풍경은 착 가라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가라앉은 밑바닥에는 무엇이 흐르는 것일까. 바로 그 흐름을 관통하는 것이 옛 것과 새 것의 조화다. 센강가의 이끼 낀 돌 하나, 그 위의 오래된 다리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와 균형을 맞추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높지도 않고 그렇다고 낮지도 않으며 일정한 높이를 맞춰 서 있는 건물들. 그 건물들은 때로 낡고 더러워 보이지만 그것은 게으름으로 방치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역사의 깊이를 말해주는 것. 말하자면 파리는 거리의 모든 것, 그냥 굴러다니는 돌 하나까지에도 역사의 손때가 묻어 있다. 소설가이자 정치가인 앙드레 말로가 문화장관 재직 당시 이 손때를 벗겨내자고 제의했다가 국민에게 혼난 적이 있을 정도다. 여행안내 책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에펠탑. 에펠탑만큼 계절에 따라,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는 건축물도 드물다. 에펠탑에는 네 가지의 표정이 있다. 첫 번째는 이 탑을 바로 밑에서 올려다 볼 때 나온다. 쇠막대가 아무렇게 가로질러 있고, 게다가 튼튼한 쇠망까지 둘러져 있어서 마치 하늘로 치솟은 짐승의 우리 같은 느낌마저 든다. 어찌 보면 흉물스럽기조차 하다. 그러나 센강을 사이에 두고 건물과 인간을 한꺼번에 바라보면 에펠탑의 얼굴은 한결 달라진다. 파리 사람들 특유의 쫑알거림과 오래된 집들, 잿빛 도로와 푸른 가로수들과 같은 풍물 너머로 솟은 검은 탑을 봄빛 속에서 바라보면 고도 파리의 낭만에 젖어 있는 자신을 문득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에펠탑의 두 번째 얼굴이다.
그러나 에펠탑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이 높은 탑에 올라가 발 밑에서 출렁이는 센강과 한없이 푸른 샹드 마르스의 녹음을 내려다 볼 때다. 에콜 밀리테르의 사관후보생이 자랑스럽게 행진하는 광장, 로마 신화에 나오는 군신(軍神) 마르스(Mars)의 이름을 따서 붙인 상드 마르스 광장이야말로 무정한 것 같으면서도 믿음직스럽고, 인공적이면서도 낭만에 찬 에펠의 검은 탑에 걸맞다. 만일 이 탑이 주택가 한가운데 있었더라면 파리라는 도시의 정감은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이 탑이 들어선 19세기 당시에는 1851년 런던 대전시회를 위해 세운 크리스털 궁전과 1883년에 만든 가장 긴 다리 브루클린교, 그리고 1889년에 세워진 에펠탑이 세계 3대 철골구조물을 형성했다. 프랑스의 구조 기술자 귀스타브 에펠(Alexandre Gustave Eiffel·1832~1923)의 설계로 이 탑이 세워질 때 파리의 많은 예술가와 문학인들은 맹렬하게 반대운동을 벌였고, 신문과 잡지에는 이들의 항의문으로 범벅이 되는 등 파리가 온통 떠들썩했다. 그 가운데서도 ‘여자의 일생’으로 유명한 작가 모파상은 이 건물을 철저히 증오해 몽소 공원의 자기 기념비를 이 추악한 탑과 등을 돌리게 해서 세웠을 정도다. 에펠탑이 과거의 중요한 건축적 형태, 즉 이집트의 오벨리스크, 로마의 개선문 아치와 고딕성당의 탑 등이 통합된 건축물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박람회장 대지에 자리잡도록 세워진 탑의 위치는 이 구조물이 거대한 출입구로 의도되었다는 점을 명백하게 나타낸다. 이 탑은 박람회장 배치의 주 구성축을 이어주었다. 기단 부분의 장식용 아치는 중앙에 위치한 돔 형태의 박람회장 건물에 대해 조망의 틀을 설정해 주었던 것이다. 오벨리스크와 고딕의 형태는 당시만 해도 새로운 건축 자재였던 강철로 각색됐다. 내-외부 공간의 자유로운 상호 관입은 새로운 것으로서 위에 언급된 건축양식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상호 관입은 20세기 건축의 공간개념을 예시하고 있다. 에펠탑은 무엇보다도 자연의 힘에 대한 인간의 승리를 나타낸다. 이 탑은 마치 로마의 황제가 전쟁에 이기고 수도 로마에 돌아왔을 때 개선 아치가 그를 맞아들였던 것 같은 인간의 지고한 업적을 상징화하고 있다. 이 탑은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고 굴복시키며 조절할 수 있다는 신념을, 고딕시대처럼 더 이상 기도와 신앙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힘을 통해서 그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인간에게 전해주었다. 또한 인간이 자신을 초월하고자 하며, 자신보다 위대한 무엇을 갈망하는 영원한 욕망을 지녔다는 사실을 대변해주고 있다. 따라서 에펠탑은 제국주의시대의 건축양식답게 당시의 시대정신을 극명하게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임정의/건축사진가> |
세 번째는 지하철 에콜 밀리테르 역에서 내려 낡은 대포로 장식된 에콜 건물과 분수가 있는
트로카텔로 정원 너머로 육중하게 솟은 탑을 한여름에 보았을 때다. 물보라가 번득이고 녹음이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화초가 소담스레 핀 정원 건너편에서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검은 탑은 하늘과 땅을
이은 파리의 기둥, 그 자체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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