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8일 “유럽은 더 이상 미국과 영국 동맹에만 의존할 수 없다”며 “이제 스스로의 운명을 위해 싸워야만 한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의 맹주이자 사실상 유럽의 최강 지도자가 독자 행보를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제2차 대전이후 70여년 역사에서 유럽이 미국을 떠나겠다는 하는 움직임은 처음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장 이후 흔들려온 국제질서의 기본지형이 또 다시 요동치고 있다.
선거유세 중 나온 말이긴 하지만 평소 신중한 언행을 보여 온 메르켈 총리 스타일상 이번 발언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오래 품어온 생각을 적절한 타이밍을 골라 발언 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 침공 이후 러시아로부터 직접적 안보위협을 느끼고 있는 유럽인들은 미국이 과연 유럽의 안보를 위해 제 역할을 할지, 근본적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친러 성향 트럼프의 ‘러시아 스캔들’도 트럼프 본인의 국내입지 약화를 넘어서 유럽인들에게는 또 다른 불안요소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기간 공약한 대로 취임 후에도 독일의 대미(對美) 흑자를 지적하며 방위비 증액요구를 현실화하고 나섰으니 메르켈로서도 임계점에 다다른 것이다.
급기야 트럼프는 지난주 G7정상회의에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헌장 5조인 집단방위조항에 대해 “지키겠다”고 명시적으로 선언하지 않아 유럽정상들에게 충격을 줬다. 미국 대통령이 1949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 이래 나토 헌장 준수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68년 나토 역사상 처음이었다. 대신 트럼프는 나토 회원국들이 국내총생산(GDP)의 2%수준으로 국방비 지출을 늘리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맹비난했다.
메르켈은 4연임 성공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과 자유무역과 EU를 옹호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와 손잡고 독일과 프랑스의 결속을 강화하면서 미국 영국에 의존해온 국방에서 탈피해 독자적인 EU군(군)창설까지 검토하고 있다. 유럽 자체가 독일 프랑스가 주도하는 EU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내세우며 친미 성향인 영국 두 진영이 서로 견제하는 체제로 접어들 수 있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와 자국중심주의는 세계열강의 세력화와 지역주의로 귀결될 것이다. 나아가 지역분쟁 가능성도 고조된다. 대선기간 중 나토는 물론 한국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등 동맹국을 향해 안보 무임승차론을 주장하며 방위비 증액 요구를 했었던 트럼프는 이를 하나하나 현실화시키고 있다. 동맹조차도 이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대상으로 생각하는 상대에게 우리 안보를 얼마나 의탁해야하느냐는 유럽의 질문은 바로 우리에게도 향한다. 동맹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대미 협상력도 함께 높여야 하는 한국의 외교도 초유의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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