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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제국 흉노에게 ‘탐가’라는 고유문자 있었다”

“유목제국 흉노에게 ‘탐가’라는 고유문자 있었다”

Posted May. 04, 2017 07:17   

Updated May. 04, 2017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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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부터 농경민족은 유목민과 자신을 구별 짓는 핵심 요소로 문자를 내세웠다. 복잡한 문법 체계를 갖춘 문자 없이 행정명령조차 구두에 의존한 유목제국을 중국인들은 야만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흉노 등 유목제국에 대한 여러 고고자료들이 쌓이면서 유목민족도 기본적인 문자생활을 영위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 사서 사기(史記)는 “흉노인은 서면약속도 말로 한다”고 했고, 후한서(後漢書)도 “흉노는 죄인에 대한 송사(訟事)를 선우(單于)에게 구두로 보고하며 문서나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고 적었다. 대제국 흉노에 대한 역사기록이 절대 부족한 이유다. 강인욱 경희대 교수(북방고고학)가 최근 발표한 ‘흉노인의 문자, 그리고 유라시아 유목제국의 전개’ 논문은 흉노의 문자 사용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흉노는 문자를 갖지 못했다는 일반상식에 반하는 주장인 셈이다.

 논문에 따르면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100km 북쪽에 있는 흉노 무덤인 노용 올(노인울라)에서 글자가 새겨진 칠기(漆器)가 발견됐다. 중국제 칠기 바닥에선 한자와 더불어 흉노 특유의 ‘탐가’가 발견됐다. 탐가란 주인을 식별할 수 있도록 가축에 찍는 낙인처럼 유목민들이 사용하는 고유 기호들을 말한다. 이와 관련해 흉노 귀족이 묻힌 골모드 고분 출토 주사위에도 비슷한 문양의 탐가가 확인됐다. 강 교수는 “흉노가 확산된 지역을 따라서 탐가 문양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이들은 태양이 떠오르는 형태로 왕을 상징화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기동력과 빠른 의사결정이 최대 강점인 유목제국 속성상 문자행정이 도리어 걸림돌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제시됐다. 예컨대 고대 실크로드에 진출한 한나라는 행정기록과 보관에 적지 않은 인력과 시간을 소모했다. 드넓은 사막지대에서 전략상 초소를 옮길 때마다 몇 수레 분량의 목간(木簡)을 일일이 실어 날라야만 했다.

 반면 광대한 지역을 떠도는 유목민을 다스린 흉노는 단순화한 명령을 구두로 신속하게 전달하는 방식을 취했다. 고분 부장품에 새긴 탐가처럼 각종 의례나 신분상징의 도구로만 글자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흉노는 문자에 기반을 둔 행정조직과 관료제를 버린 덕분에 빠른 속도로 초원제국을 일으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상운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