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제59회 베니스 영화제 개막작은 프리다 칼로의 전기 영화 ‘프리다’였다. 칼로가 환생한 것처럼 열연했던 멕시코 배우 샐마 하이엑은 이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연기 인생의 전환점을 찍었다. 화가 칼로의 인생에도 두 번의 전환점이 있었다. 스스로 대형 사고라 표현했던 사건들이었다.
“내 인생엔 두 번의 대형 사고가 있었어. 차 사고와 디에고, 바로 당신! 두 사고를 비교하면 당신이 더 끔찍해!” 영화 속 대사는 칼로가 디에고 리베라에게 실제 했던 말이다. 18세 때 당한 교통사고는 의사를 꿈꿨던 소녀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침대에 누워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잊기 위해 시작한 그림 그리기는 그녀를 화가의 길로 이끌었다. 두 번째 대형 사고는 멕시코 미술 거장 디에고 리베라와의 결혼을 말한다. 남편의 여성 편력과 잦은 외도는 그녀에게 육체적 고통보다 더 큰 마음의 상처를 주었다. 두 사고로 칼로는 지옥 밑바닥까지 경험했지만, 그 고통을 자화상으로 그리며 스스로를 치유했다.
이 그림은 칼로가 10년간의 결혼 생활을 끝내기 1년 전, 뉴욕으로 전시 여행을 떠났을 때 제작한 것이다. 그녀는 다른 자화상에서처럼 상처 입고 피 흘리거나 슬픈 모습이 아니라 도도하고 당당해 보인다. 리베라의 아내가 아니라 독립적인 화가로 뉴욕 전시를 성공리에 마친 뒤라 그런 듯하다. 짙은 갈매기 눈썹이 인상적인 그녀는 멕시코 전통 의상 위에 동물 뼈 목걸이를 하고 있어 마치 밀림의 여전사 같다. 옆에서 어깨동무를 하며 위로해 주는 동물은 함께 사는 원숭이다. 실제로도 칼로는 원숭이나 앵무새 같은 이국적인 동물들과 식물을 키우면서 마음의 안정을 되찾곤 했다.
절박함이 기적을 만든 걸까. 할리우드 영화의 소재가 될 정도로 극적인 삶을 살았던 칼로. 두 번의 대형 사고는 끔찍한 고통의 시발점이었지만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절박함은 그녀를 리베라 못지않은 세계적 미술가로 만든 원동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