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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 법원 “김정남 암살, 계획적 공모”...여성들 ‘사실상 유죄’

말레이 법원 “김정남 암살, 계획적 공모”...여성들 ‘사실상 유죄’

Posted August. 17, 2018 08:02   

Updated August. 17, 2018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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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2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2명의 여성에 대해 ‘유죄의 증거가 충분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사건이 발생한 말레이시아 현지 법원이 이 여성들의 행위를 ‘계획적인 공모’라고 표현하며 사실상 검찰 측 손을 들어준 것이다.

 AP통신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샤알람 고등법원은 16일 재판에서 인도네시아 출신 시티 아이샤(26)와 베트남 출신 도안티흐엉(30)이 북한인들과 ‘계획적으로 잘 짜여진 공모’를 꾸며 김정남을 살해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아즈미 아리핀 판사는 이날 “검찰 측이 ‘반증이 없을 경우 유죄가 확정될 수 있는(prima facie)’ 주장을 펼쳤다”며 피고인 측이 반론에 나서라고 요청했다.

 아직 유죄 판결이 내려진 것은 아니지만 피고인 측에서 적절한 반박이 없을 경우 재판부의 판단을 뒤엎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피고인 측의 반론 기회는 11월과 내년 2월에 주어진다. 이로 인해 판결이 나오기까지는 앞으로 수개월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 재판부 “범행 후 손 씻은 행위, 매우 이상해”

 두 여성은 지난해 2월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남의 얼굴에 추후 VX로 확인된 맹독성 신경물질을 바르고 도주했다. 재판부는 이들이 △VX가 신체에 흡수되기 쉬운 눈 부위를 집중적으로 공략한 정황과 △범행 직후 화장실에서 손을 씻은 행위를 김정남을 살해할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는 핵심 근거로 꼽았다. 아리핀 판사는 “(범행 후) 화장실로 달려간 이들의 절박한 행위가 손에 묻은 독성 물질을 씻어내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할 근거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두 여성이 단순히 몰래카메라를 촬영한다고 생각하고 범행에 의도치 않게 가담했다는 변호인 측의 주장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리핀 판사는 몰래카메라 촬영에 흔히 동반되는 숨어있는 촬영보조원 등이 없었던 점을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검찰 측이 폐쇄회로(CC)TV 영상만을 근거로 주장을 펼치고 증인을 한 명도 부르지 않은 점은 검찰 측의 주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 北의 ‘정치 살인’ 주장엔 ‘구체적 증거 부족’

 재판부가 “(피고인들이) 특정 행위를 벌인 이유를 설명할 의무는 피고인 측에 있다”고 밝히자 두 여성의 변호인단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들은 편집된 CCTV 영상만으로는 범행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우며, 피고인들이 범행 이후 옷을 갈아입지 않은 점 등을 증거로 제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말레이시아 당국이 재판이 정치화되는 것을 꺼려하는 가운데, 진짜 범인은 도주한 8명의 북한 용의자임을 강조하는 변호인 측의 주장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날 “정치적 살인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 구체적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김정남 사망 직후 자국 주재 북한 대사를 추방하고 김정남의 시신을 북한에 신속히 넘기기를 거부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보였으나, 북한이 북한에 거주하는 말레이시아인의 출국을 금지하면서 보복 조치를 취하자 북한인 용의자 일부의 출국을 허용하고 김정남의 시신 역시 북한으로 인계하는 등 추후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파악되는 8명의 북한인 중 4명은 범행 당일 도주했고, 나머지 4명은 추방되거나 출국이 허용돼 북한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기재 recor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