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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청구권협정 각하 결정에 담긴 헌재의 고민

한일청구권협정 각하 결정에 담긴 헌재의 고민

Posted December. 24, 2015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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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헌법재판소는 일제 강점기 시절 강제징용 피해자의 딸 이윤재 씨가 낸 한일() 청구권협정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렸다. 각하는 헌법소송의 요건을 갖추지 못해 합헌이나 위헌이라고 결정할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이번 결정으로 한일청구권협정의 효력은 영향을 받지 않게 됐다. 만약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렸다면 한일 관계를 흔드는 외교적 풍파가 크게 일었을 것이다.

이 씨는 2007년 제정된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09년 국가가 1165만6000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하자 행정소송과 함께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이 일본 정부와 기업에 대한 개인의 배상청구권을 제한해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위반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헌재는 한일청구권협정의 위헌 여부가 이 씨가 제기한 행정소송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 위헌 여부를 판단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합헌이든, 위헌이든 어느 쪽으로 결정해도 후폭풍이 만만찮았을 것인데 헌재가 묘수를 찾아낸 느낌이다.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달리 한일 양국이 청구권협정에서 해결한 것으로 합의한 8개 항 속에 명시적으로 포함된 사안이다. 일본 정부와 법원은 이 문제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종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일본 법원은 일관되게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한국 정부도 이 문제는 청구권협정으로 완결된 사안이라고 본다. 하지만 대법원이 2012년 일본 기업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개인적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고 일본이 반발하면서 사안이 복잡해졌다.

한일청구권협정과 같은 국가 간 조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어제 헌재 결정을 앞두고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국내에서 판결을 내렸을 때 국내에서 그치는 상황은 지났다며 현명한 결정을 기대한다고 한 것도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다. 최근 국가배상과 개인배상을 별개의 문제로 판단하는 흐름도 나타나곤 있지만 국가 간 협정을 재판으로 뒤집으면 국익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헌재의 고민이 이번 결정에 담겼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