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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1등 콤플렉스

Posted April. 11, 201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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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사상가 이율곡(15361584)은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최근 출간된 율곡 이이 평전에 따르면 그는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나 시화()에 능한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았지만 콤플렉스투성이의 문제아였다. 열여섯에 어머니를 잃은 그는 무단가출 후 1년간 승려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 책을 쓴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는 죽고 싶은 생각을 할 정도로 심리적 갈등을 겪은 것으로 보이지만 이런 방황과 고뇌를 슬기롭게 극복해 진정한 위인이 됐다고 평가한다.

2006년 미국의 인기 리얼리티쇼 서바이벌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첫 우승을 차지한 권율 씨의 스펙과 경력은 눈이 부실 지경이다. 스탠퍼드대,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연방의원 입법보좌관, 판사시보를 지내고 매킨지와 구글에서 일했다. 그런 그가 인터뷰에서 나는 루저(loser실패자)였다며 선생님을 실망시킬까 봐,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할까 봐 늘 전전긍긍했다고 털어놓았다.

겉보기에 부럽게만 보이는 우등생의 내면에도 가족조차 모르는 콤플렉스와 상처가 많은가 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엄친아로 불리는 모범생들이 자살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서울 대치동에서 고3 학생이 자살한 데 이어 지방 명문고에서 전교 1등을 도맡던 권모 군은 머리가 심장을 갉아먹는데 더이상 못 버티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이들의 자살 이유는 늘 최고의 자리를 지켜내야 한다는 1등 콤플렉스 때문으로 추정된다.

집과 학교에서 칭찬받고 사는 청소년들을 무엇이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일까. 본보가 성적이 상위 10% 안에 드는 고교생 100명에게 물으니 주변의 기대감(41%)이 첫손가락에 꼽혔다. 한국의 청소년이 그만큼 일찍부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산다는 증거다. 성적이든 외모든 늘 남과 자신을 비교하거나 나의 가치를 타인에게 검증받으려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우리 아이들에게 남의 기대를 따르기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용기, 벼랑 끝에 서 다시 시작하는 자기 갱신의 용기를 가르쳐야 할 때다.

고 미 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