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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공공의 적북

Posted August. 07, 2010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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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나!

어두운 골방 안, 미녀 첩보원이 반나체 상태로 북한군 병사들에게 사정없이 뭇매를 맞는다. 건물에 부착된 자주통일이란 구호도 보인다. 현재 상영 중인 액션영화 솔트의 한 장면이다. 얼마 전 할리우드 톱스타 앤젤리나 졸리가 한국을 방문해 홍보한 이 작품은 러시아 스파이로 지목받아 미국 정보요원들의 추격을 받는 주인공 솔트의 활약상을 다룬 액션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정작 줄거리나 액션보다는 북한의 핵무기를 파괴하러 잠입했던 솔트가 북한군에 붙잡혀 고문 받는 초반부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솔트뿐만이 아니다. 이제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악당=북한은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미국 대중문화에서 상한가(?) 치는 북한

요즘 외교적으로 미국의 냉대를 받는 북한이지만 할리우드에서만큼은 블루칩이다.

시초는 배우 차인표 씨가 출연 제의를 거절해 화제가 됐던 007 어나더데이(2002년). 이 작품에서 무기 밀매를 벌이는 북한 장교들은 제임스 본드를 사로잡을 정도로 막강한 실력의 적으로 등장했다.

이 밖에도 북한이 대형 블록버스터들의 양념거리로 등장하는 영화는 부지기수다. 트랜스포머(2007년)에서는 외계 로봇들에게 미군 기지가 공격당하자 미국 관리는 이런 짓을 할 나라로 북한을 지목한다. 아이언맨 2(2010년)에서는 북한이 아이언맨의 특수 슈트를 모방한 군수품 개발에 매진하다 실패하는 국가로 등장한다. 애니매이션 팀 아메리카: 세계경찰(2005년)은 아예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테러집단의 수장인 김 위원장은 왜 이렇게 다들 무식하지? 나처럼 지적이지 못하고라고 중얼거리며 피아노를 치고 노래하는데 ronery risten pran 등 l을 r로 발음하는 나르시시즘 환자로 희화화됐다.

공공의 적: 나치 독일소련외계인북한(?)

평론가들은 과거 오랫동안 할리우드의 공공의 적이었던 소련의 자리를 북한이 대체했다고 보고 있다. 할리우드의 작품들은 대개 세계 질서를 어지럽히는 적을 규정하고 이 적을 물리치는 것을 주요 줄거리로 삼는다.

나치 독일(독재자 발키리 등)과 소련(붉은 10월 백야 등)을 적으로 삼았던 할리우드는 한때 지구 밖 외계인으로 시선을 돌리기도 했다. 인디펜던스데이, 화성침공(리메이크), 맨인블랙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북핵 위기가 고조되며 북한이 공공의 적으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미국과 비슷한 갈등을 겪는 아랍 국가들에 대해서는 시리아나(2006년)나 킹덤(2007년)에서처럼 동정적 시선을 보내거나 미국의 석유 욕심이 문제라는 인식을 담는 작품이 나오는 등 북한에 대한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영화평론가 박유희 씨는 아랍 국가가 중세부터 서구에 많이 알려졌고 미국 사회에 커뮤니티를 형성할 만큼 다수가 살고 있는 데 반해 북한은 모든 정보가 대부분 감춰져 있어 국가라기보다 이상한 음모를 꾸미는 테러집단 수준으로 묘사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성운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