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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범 코앞서 놓쳐 아찔했던 인질극

Posted February. 14, 20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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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11시 40분경.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에서 빵집을 운영하던 박모 씨(39여)는 가게 주방을 청소하고 있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오후 11시가 넘으면 손님이 드물어 영업을 마무리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괴한 2명이 갑자기 들이닥쳤고 박 씨를 때린 뒤 눈과 입에 테이프를 붙인 뒤 그녀를 납치했다.

이때부터 악몽 같았던 19시간의 납치극이 시작됐다.

2시간쯤 뒤인 11일 오전 2시경 남편 유모 씨(39)는 부인의 휴대전화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지만 목소리는 부인의 것이 아니었다.

부인을 우리가 납치했으니 현금 7000만 원을 준비해라. 경찰에 신고하면 부인은 죽게 될 것이다. 내일 다시 전화하겠다.

깜짝 놀란 유 씨는 10여 분간 고민하다가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비상이 걸렸다. 주소지와 사건발생지 관할 경찰서 소속 형사들이 긴급 소집됐다.

범인들이 다시 전화를 걸어온 시간은 오전 8시. 이들은 현금 7000만 원을 다시 요구했다. 이어 오전 10시와 낮 12시에 잇달아 전화를 걸어와 돈이 준비됐느냐고 물었고 유 씨는 경찰의 권유대로 3500만 원밖에 준비가 안돼 은행 융자를 받아야 한다고 둘러대며 시간을 끌었다.

성산대교 인근에서 만나기로 한 유 씨와 경찰은 곧바로 가짜 지폐 7000만 원을 들고 접선 장소로 출발했다. 경찰은 1만 원짜리 가짜 돈 7000장을 준비하고 이 돈이 담긴 가방에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부착해 범인을 잡기로 한 것.

헬멧과 마스크를 쓴 채 번호판이 없는 배기량 250cc짜리 오토바이를 타고나온 범인은 위폐가 담긴 가방을 유 씨에게서 받아 갔다. 경찰은 오토바이, 택시, 자가용 등을 이용한 기동추격조 48명을 투입해 범인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오토바이를 쫓았다.

하지만 추격전이 벌어진 지 약 25분 만에 양천구 목동의 한 언덕배기에서 범인은 경찰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같은 시간 다른 경찰관들은 가방에 부착된 GPS를 추적해 범인의 위치를 쫓았지만 결국 놓치고 말았다.

유 씨는 계속 부인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생사를 확인했지만 범인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부인의 생사를 마지막으로 확인한 것은 오후 3시 2분. 범인들은 전화를 걸어 6시에 전화할 테니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고 했다.

범인이 받아간 가방이 오후 4시 반경 구로구 신도림동의 공구상가 근처에서 발견됐지만 박 씨의 생사 여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가짜 돈인지 눈치 채지 못한 범인들은 오후 6시 25분경 전화를 걸어와 박 씨를 풀어주겠다고 했다. 30분 뒤 아내를 애타게 기다리던 유 씨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박 씨의 나 풀려났어라는 말과 함께 긴급 상황은 19시간 만에 끝났다.

경찰은 13일 범인들이 이동한 경로 주변의 폐쇄회로(CC)TV 녹화테이프를 확인하는 등 범인을 쫓고 있다.



황형준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