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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숨바꼭질 성화 봉송

Posted April. 12, 2008 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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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에서 성화 봉송이란 개념을 만든 사람은 아돌프 히틀러였다. 올림픽에 성화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이었지만, 히틀러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아리안족 젊은이 3422명이 그리스 올림푸스산에서 베를린까지 3422km를 횃불을 들고 뛰는 릴레이를 펼치도록 했다. 독일 아리안족이 고대 그리스의 영광을 재현한다는 것을 만방에 과시하려는 나치즘의 선전 선동술이었다.

성화 봉송은 개최국의 아이디어와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보여 주는 무대로 변모했다.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성화는 배로 영국해협을 건넜고,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선 비행기를 타고 건너왔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 라디오 신호로 이동했다. 아테네에서 출발한 신호는 인공위성을 통해 캐나다로 전달된 뒤 몬트리올에서 레이저빔으로 불을 붙였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선 해양 생태계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자 다이버가 바다 속에서 성화를 옮겼다.

그러나 이번 베이징 올림픽처럼 성화가 숨바꼭질을 한 적은 없다. 3월 24일 그리스를 출발한 성화는 130일 동안 6대륙 13만7000km를 거쳐 올림픽 개막에 맞춰 중국에 도착한다. 하지만 방문 도시에서 성화를 맞이하는 것은 따뜻한 환영 인파보다 중국의 티베트 탄압에 항의하는 시위대였다. 파리에선 성화 불씨가 3번 꺼졌고 샌프란시스코에선 성화 봉송주자가 창고 건물로 쫓겨 들어갔다. 국제여론이 악화되면서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개막식 불참을 선언했다.

티베트의 종교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독립이 아니라 혼()과 문화를 보존하는 자치()라고 말한다. 중국과는 뿌리가 다른 티베트 고유의 문화와 정신을 인정해 달라는 요구다. 그는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고 싶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정한 성화 봉송의 주제는 화해의 여정(journey of harmony)이다. 그런데 화해라는 구호와는 달리 소수민족의 인권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데 대해 세계 여론이 나빠지면서 중국의 성화 봉송은 시위대를 피하는 장애물 경주가 돼가고 있다.

정 성 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