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봄밤에 나는 십 년 넘어 가지 못한 아버지의 무덤을 생각했네[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46〉

삼만 리 너머 그 무덤 있어 몸 가지 못하니 어느 날 몸안에 봉분 하나 들게 내버려두었네 봉분을 두고 나니 눈 밖으로 나올 불같은 화도 다 안으로 들어갔네 봉분을 두고 나니 입으로 나올 진탕 같은 말도 다 안으로 들어갔네 봉분이 부풀어오르는 꿈을 꾼 봄밤이 있네 깨어나 목을 축였네 (중략) 서녘은 내 몸안에 있는가 내 마음 안에 있는가 봉분처럼 부풀어오르며 새들은 골똘히 생각했네 물은 달았네 아, 전생의 식구를 다시 본 듯 아렸네 ―허수경(1964∼2018) 십여 년도 더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불현듯 보고 싶었다. ‘보고 싶다’는 건 말 그대로 당신을 보고 싶다는 뜻이다. 당신의 얼굴을 마주하고 실없는 농담을 하고, 예전처럼 무엇이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마음이 작아지지 않아 부치지도 못할 편지를 썼다. 보고 싶다고. 그러나 사무치게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전생의 한 귀퉁이를 슬쩍 들춰보고 싶은 마음처럼, 그렇게 보고 싶다”고 썼다. 얼마 뒤 허수경 시인이 떠나고 8년 만에 자세히 보기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