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인사이트]원수와 손잡는 용기, 사람을 지키는 책임

조직이 생존 위기에 몰렸을 때 리더는 어디까지 명분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결단을 실행한 실무자가 모욕을 뒤집어쓸 때 최고결정권자는 그를 끝까지 지켜낼 수 있는가. 1697년 조선 조정에서 벌어진 ‘청나라 곡물 도입’ 논쟁은 이 두 질문을 정면으로 묻는다. 을해년(1695년)부터 병자년(1696년)까지 한반도를 강타한 ‘을병 대기근’은 내부 역량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재난이었다. 조정은 왕실 재정을 줄이고 비축미를 풀었으며, 신분과 관직까지 팔아 재원을 마련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남은 선택지는 하나, 외부에서 곡식을 들여오는 것뿐이었다. 문제는 그 상대가 삼전도의 굴욕을 안긴 ‘청나라’라는 점이었다. 당연히 조정 내에 반대 여론이 거셌다. ‘큰 나라와 무역하면 작은 나라가 손해 본다’는 경제 논리도 있었지만, 본질은 ‘오랑캐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수 없다’는 자존심이었다. 교착을 푼 것은 대사간 박태순의 두 번째 상소였다. 그는 곡물 도입을 구걸이 아니라 “서로 있는 자세히 보기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