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나 아직 태어나기 전, 아득하여 아는 바 없다네.
하늘이 억지로 나를 태어나게 했는데, 날 태어나게 하여 또 무얼 하려는지.
옷이 없어 날 추위에 떨게 하고, 먹을 게 없어 날 굶주리게 하느니
하늘이여, 그대에게 날 돌려줄 테니, 태어나지 않은 그때로 날 돌아가게 해주오.
(我昔未生時, 冥冥無所知. 天公强生我, 生我復何爲.
無衣使我寒, 無食使我飢. 還你天公我, 還我未生時.)
―‘무제(無題)’ 왕범지(王梵志·약 590∼660)
살다 보면 하늘을 탓할 때가 있다. 태어난 것부터 제 뜻이 아니었다는 듯한 왕범지의 이 항변은 얼핏 웃음을 부른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낳았으면 책임지라는 푸념에 가깝다. 그러나 이 시를 그저 세상살이 푸념으로만 볼 수는 없다. 승려였던 그의 시는 통속적인 말로 불교의 이치를 풀고 세태를 풍자하며 사람을 깨우쳤다. 이 시 역시 겉으로는 하늘을 원망하지만, 그 밑바닥에서는 태어남 자체를 묻는다. 왜 인간은 이토록 쉽게 결핍과 고통 속에 놓이는가. 이런 물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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