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6년 5월 21일 이자겸 유배를 떠나다[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

고려 때 이자겸의 가문은 명문 중의 명문이었다. 가문의 성은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조상이 황실에서 하사받은 것이었다. 이들은 대대로 지금의 인천 지방에서 세족으로 지냈다. 조정에 진출한 이후에는 왕실과 혼맥으로 얽혀 권력을 넓혀 나갔다. 왕건은 수많은 호족과 혼인동맹을 맺어 자신의 정치력을 공고히 했는데, 이후 왕실은 족내혼을 거듭하면서 권력을 외부와 나누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근친혼의 결과로 자손이 귀해지면서 결국 외부에서 혼인 대상을 찾아야 했다. 이때 이자겸의 가문이 그 기회를 잡았다. 문종, 순종, 예종, 인종에 걸쳐 모두 이씨 가문이 왕비 자리에 올랐다. 특히 예종은 이자겸의 둘째 딸을, 인종은 이자겸의 셋째 딸과 넷째 딸을 왕비로 맞았다. 말하자면 인종은 이모와 결혼한 셈이다. 한 집안에서 연달아 왕실과 혼인했으니 이자겸의 권세는 국왕에 버금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인종은 어려서 이자겸의 집에서 자라기까지 했다. 외조부이자 장인인 이자겸에게 대항하기가 쉽지 않았다 자세히 보기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