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시[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36〉

이건 늦은 시들. 시라는 건 십중팔구 대단히 늦기 마련이다, 뱃사람이 보낸 편지가 그가 물에 빠져 죽은 후에야 도착하듯. 손쓸 수 없이 늦은, 그런 편지들과 늦은 시들은 비슷비슷해서 마치 물속을 헤치고 다다르는 듯해. 이미 지나가버린 일들. 전쟁, 눈부신 시절, 욕망에 빠져들었던 달밤, 작별의 입맞춤. 그 무엇이든 시는 해안으로 쓸려온 표류물. 혹은 저녁 식사에 늦듯, 한 발 늦는 것. 차갑게 식거나 다 먹어치운 낱말들뿐이지. (중략) 춤을 추기에는 대단히 늦어버렸다. 그래도, 당신이 할 수 있는 노래를 불러라. 빛을 더 밝혀라. 계속 불러라, 노래를, 영원히. ―마거릿 애트우드(1939∼) 사랑을 노래하는 시는 사랑이 끝난 뒤에 태어난다. 슬픔을 노래하는 시는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서 움튼다. ‘사건’이 꼭대기에서 내려왔을 때, 시인이 시차를 두고 ‘다른 방식의 말하기’를 시도할 수 있을 때에야 시가 태어날 수 있다. “마치 물속을 헤치고 다다르는” 늦된 언어처럼, 시는 뒤늦게 도 자세히 보기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