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5년 3월 22일 이율, 사형선고를 받다[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

정조는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올랐기에 왕권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왕실의 외척 세력인 김귀주, 자신의 친위 세력이었던 홍국영까지 처단하며 왕권을 공고히 했다. 단지 왕에 대한 정책을 비난하고 욕설을 했다는 이유로 김하재는 역모로 몰려 집안이 결딴나기도 했다. 흔히 사극에서 조선의 왕은 신하들에게 휘둘리는 무력한 존재로 묘사되곤 하지만, 실제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막강한 존재였다. 따라서 역모는 조선에서 가장 무서운 죄목이었다. 그런데도 허무맹랑한 소리에 휘둘려 역모에 뛰어든 사람들이 있었다. 정조 때 진사 이율은 김귀주의 당으로 찍혀 벼슬길이 막혀버린 사람이었다. 이때 이율의 집에 들락거리던 풍수가 양형이 이율의 불만을 이용했다. 양형은 의술에도 능통해 거부 홍복영과도 알고 지내는 사이였는데, 홍복영은 바로 홍국영의 종제로, 그 역시 집안이 몰락해 세상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중인인 양형역도 조선의 신분 차별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양형과 이율 자세히 보기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