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와 관우[임용한의 전쟁사]〈404〉
왕자로 태어난다는 건 극단적인 행복이거나 불행이다. 왕이 되지 못한 왕자는 목숨을 부지하지 못하거나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어렵다. 조선 영조도 연잉군 시절 위태로운 삶을 살았다. 경종이 좀 더 건강했거나 왕자를 봤다면 목숨을 지키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불안을 이기지 못한 연잉군은 관우의 영(靈)을 모시는 관제묘(關帝廟) 중 하나인 동묘를 찾아 점을 치기도 했다. 관제묘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병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세워졌다. 관우는 중국에서 무장들의 우상이고, 출세의 신이며, 상인들의 수호신이었다. 모든 계층에서 추앙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전후 조선에서도 삼국지가 유행하고, 임란 후 상업도 발전하면서 관제묘의 인기가 높아졌다. 연잉군은 더욱이 삼국지의 팬이었다. 왕이 된 뒤 관제묘 근처를 지날 때면 반드시 들러 참배했고, 묘의 상태와 심지어 관우상에 입혀 놓은 의복까지 신경 썼다. 신하들은 영조의 관제묘 참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관우는 장수이니 왕보다 격이 낮다
자세히 보기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