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시미어 100[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29〉
따듯한 나라에서 만든 스웨터를 샀다 주문하자마자 벨이 울려 나가보니 삐쩍 곯은 염소 한 마리가 추위에 떨고 있었다 털이 다 깎이고 군데군데 찢어진 상처에서 피가 났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전화로 항의했지만 연신 사과만 할 뿐 해외 직배송이라 다시 보내는 데 시간이 좀 걸립니다 문밖의 염소는 억울한 표정으로 문짝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우선 집에 들여 마시멜로를 띄운 핫초코를 마시게 한다 가만히 내 눈치를 보더니 식탁에 앉은 채로 존다 내 스웨터는 남쪽 섬에서 짜이는 중이다 염소 털에 파묻힌 직공들은 땀이 흐르는 한여름 속에 있다 나는 애인도 없고 새 옷을 사서 따듯한 겨울을 보내려던 것뿐인데 히말라야에서 온 난민과 방을 같이 써야 한다 냄새나고 코를 고는 염소 한 마리와 ―차성환(1978∼ ) “나는 애인도 없고 새 옷을 사서 따듯한 겨울을 보내려던 것뿐인데” 일들이 일어난다. 우리가 무심함으로 무장한 사이에 누군가는 “털이 다 깎이고 군데군데 찢어진 상처”를 입는다. 우리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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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