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같은 얼굴을 한 사회는 정의일까… ‘얼굴의 정의’라는 착각[강용수의 철학이 필요할 때]
《개성을 지운 평등주의의 허상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타고난 얼굴도 시간이 지나면 경험과 생각에 따라 조금씩 변한다는 뜻이다. 사람은 각자 고유한 자신만의 얼굴을 갖고 태어난다. 부모의 유전자가 결합해 만들어진, 세상에 하나뿐인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기형을 안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아름답고 잘생긴 얼굴로 태어난 사람도 있다. 태생적 조건에 따라 얼굴의 아름다움과 추함이라는 큰 차이가 생겨난다.》 소설 ‘얼굴의 정의(Facial Justice)’는 영국 작가 레슬리 하틀리가 1960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특권과 시기심을 없애기 위해 아름다운 얼굴을 지닌 사람도 없고, 못생긴 사람도 없도록 얼굴을 외과적으로 수술한다는 내용을 다룬다. 수술을 주도하는 건 핵 전쟁 이후 지상에 들어선 독재 정권이다. 인류 파괴에 대한 집단적 죄책감을 안고 있는 정권은 외모로 인해 질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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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