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5년 10월 21일 평순, 죽음을 면하다[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
형조(刑曹·사법과 범죄자의 형벌 집행 등을 맡아 보던 관청)에서 의원 평순(平順)을 참형에 처해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가 올라왔다. 평순은 동지중추원사 설순(偰循)을 치료하다 뜸을 잘못 놓아 그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러나 세종은 “참형은 과하다”며 곤장 100대를 명하고, 그 형벌마저 속(贖·돈으로 형벌을 대신함)으로 대체하도록 했다. 사형이 사실상 벌금형으로 바뀐 셈이다. 세종은 “평순의 죄는 참형에 해당하지만, 평순은 귀화한 사람의 아들이니 긍휼히 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평순은 일본에서 귀화한 평원해(平元海)의 아들이었다. 평원해는 대마도 출신의 승려로 의술이 뛰어나 전의박사(종8품)에 임명됐다. 조정은 그에게 정착할 땅까지 하사했다. 그는 실력을 인정받아 12년 만에 전의감의 책임자인 판전의감사(정3품)에 올랐다. 태종의 주치의로 활약한 평원해는 왕에게서도 극찬을 받았다. 태종은 그를 이렇게 칭찬했다. “네가 의(義)를 사모해 귀순한 뒤 내가 잠저(潛邸·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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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