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8년 10월 2일 매국노 예군 묻히다[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
나당 연합군이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공격했을 때 의자왕은 웅진성으로 달아났다. 웅진성은 예씨 일족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이들은 백제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생각하고 의자왕과 태자를 체포해 당나라에 바쳤다. 앞장선 사람은 예씨 형제였다. 좌평 예군과 웅진방령 예식진은 이 공으로 당의 벼슬을 받았다. 또 그 후 당에 충성한 결과 예군은 우무위장군(정4품), 예식진은 좌위위대장군(정3품)이라는 높은 벼슬로 승진했다. 예군은 왜에 사신으로 가기도 하고, 신라와 당이 고구려를 정벌하려 할 때 신라에 사신으로 가 고구려 정벌을 위한 합의를 도출했다. 서로 믿기 어려운 처지인지라 인질을 교환하기로 했으나 백제부흥군이 신라군을 계속 공격하자 신라를 정탐하러 온 스파이로 오해받아 2년 동안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다. 나당전쟁에서 패한 당에 신라 문무왕이 화해의 제스처로 포로 석방을 할 때, 예군도 풀려나 당에 갈 수 있었다. 예군은 백제에서 최고위 신분인 좌평이었다. 그런 자가 나라가 멸망의 백척간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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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