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헤엄[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3〉
할머니는 말했다 파도가 두려워지기 전까진 파도를 두려워하지 마라 세상이 무서워지기 전까진 세상을 무서워하지 마라 할머니의 뼛가루를 바다에 뿌린 뒤로 자주 바다로 나가 헤엄을 쳤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추위와 더위를 가리지 않고 할머니가 남긴 말을 이해해보려고(중략)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보다 죽은 자의 청력을 믿었다 하얗던 수영복이 더는 하얗지 않은 게 부끄럽지 않았다 마루 틈에 코를 박고 숨을 쉬면 할머니 몸 냄새가 났다세상이 무서워지기 전까진 세상을 무서워하지 마라 사랑이 끝장나기 전까진 사랑을 끝장내지 마라 검은 암초에 부딪혀 뺨이 찢겨도 질긴 해초가 종아리를 휘감아도 두렵지가 않았다 세계를 곱게 빻은 빛 가루가 할머니라면 그것이 훨 훨 한줌처럼 가볍다면 도무지 세상이 무서워지지 않았다 ―정다연(1993∼ )할머니는 어디로 갔을까? 혼잣말할 때가 있다. “할머니는 10년도 전에 돌아가셨지 않느냐”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그 얘기가 아니거든요, 할머니는 사라졌지만 분명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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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