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렁이[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2〉

내 지렁이는커서 구렁이가 되었습니다.천 년 동안만 밤마다 흙에 물을 주면 그 흙이 지렁이가 되었습니다.장마 지면 비와 같이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뒤에 붕어와 농다리의 미끼가 되었습니다.내 이과 책에서는 암컷과 수컷이 있어서 새끼를 낳았습니다.지렁이의 눈이 보고 싶습니다.지렁이의 밥과 집이 부럽습니다.―백석(1912∼1996)서울에 살 때는 잘 보이지 않던 지렁이가 파주에선 자주 보인다. 어떤 지렁이는 너무 커서 ‘흡!’ 숨을 들이마신 뒤 비켜 간다. 도대체 이 많은 지렁이는 어디에 있다 나오는 걸까? 백석은 지렁이가 “장마 지면 비와 같이 하늘에서” 내려온다 한다. 지렁이가 흙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하늘에서 비처럼 떨어진다니, 놀라운 상상력 아닌가? 빗줄기와 지렁이의 기다란 몸이 닮은 것도 같다. 이 시는 백석의 시집 ‘사슴’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은, 어린이를 위해 발표한 동시다. 백석이 자랑하듯 말하는 “나의 지렁이”는 장차 커서 구렁이가 된다. 참으로 스케일이 큰 허풍에 미소가 자세히 보기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