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눈물의 얼음’… 에어컨 시대 ‘얼음의 눈물’[이상곤의 실록한의학]〈164〉

시골 동네엔 여름마다 진풍경이 벌어지곤 했다. ‘아이스께끼’라 불린 얼음과자 장수가 마을에 찾아오면 집에 있는 귀한 물건이 모조리 사라졌다. 어린아이들은 달고 시원한 아이스께끼를 먹기 위해 귀중품을 ‘엿 바꿔 먹듯’ 가져다줬다. 그 시절 아이스께끼는 그만큼 귀한 음식이었다. 알고 보면 사카린이나 설탕 넣은 물에 막대기를 꽂아 얼린 싸구려 음식이었지만, 개인 냉장고가 귀하던 시절 아이스께끼는 얼음의 대용 식품이었던 셈이다. 얼음의 어원은 ‘아리다’ ‘알알하다’ ‘앓다’라는 뜻을 가진 퉁구스어계의 ‘아레이’나 ‘아라이’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겨울에 만지면 얼얼하고 아픈 얼음의 촉감에서 비롯된 말일 가능성이 크다. 예부터 한국엔 혹서기에 대비하기 위해 얼음을 저장하는 ‘장빙(藏氷)’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신라시대에 석빙고가 있었다면 조선시대엔 한양에 서빙고와 동빙고가 있었고 궁궐 내에도 내빙고가 있었다. 겨울철 강에서 꽝꽝 언 얼음을 잘라내는 과정을 ‘벌빙(伐氷)’이라 하는데, 손 자세히 보기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