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짓다[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505〉
짓는 것 중에 으뜸은 저녁이지짓는 것으로야 집도 있고 문장도 있고 곡도 있겠지만지으면 곧 사라지는 것이 저녁 아니겠나사라질 것을 짓는 일이야말로 일생을 걸어볼 만한 사업이지소멸을 짓는 일은 적어도 하늘의 일에 속하는 거니까사람으로선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을매일같이 연습해본다는 거니까멸하는 것 가운데 뜨신 공깃밥을 안고 누군가를 기다리는이 지상의 습관처럼 지극한 것도 없지공깃밥이라는 말 좋지무한을 식량으로온 세상에 그득한 공기로 짓는 밥저녁 짓는 일로 나는 내 작업을 마무리하고 싶네짓는 걸 허물고 허물면서 짓는저녁의 이름으로―손택수(1970∼ )남편이 은퇴를 준비한다. 세상에서 지워질 일만 남았다. 결국 무에서 왔으니 무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남편은 소멸을 두려워하지 않고 준비한다. 그의 말을 통해 나는 가르침을 얻었다. 새로운 것을 알려주는 이는 모두 나의 스승이다. 남편의 말에 내 스승이 살듯 이 시 속에도 나의 스승이 살고 있다. 짓는 것 중에 으뜸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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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