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1인자의 적들’ 어디로 갔을까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 시 서기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면서 절대 권력에 대한 도전과 숙청이 반복돼 온 현대 중국의 권력 투쟁사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1954년 ‘가오강(高崗) 사건’은 사회주의 건국 이후 첫 당내 권력 투쟁으로 꼽힌다. 가오강은 공산당이 1941년 중앙 서북국을 조직할 때 서기를 지냈다. ‘동북왕’이라 불릴 정도로 세를 과시했다. 한때 마오쩌둥(毛澤東)의 후계자로도 거론됐다. 하지만 자신의 공로를 지나치게 앞세우면서 당내 2인자였던 류사오치(劉少奇)와 갈등을 빚었다. 지방 권력을 쥐고 있던 데다 ‘소련파’라는 점도 스탈린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 마오쩌둥의 견제를 불러온 요인이었다. 결국 반당(反黨) 혐의로 1954년 관직에서 물러난 뒤 자살했다. 류사오치는 마오쩌둥과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대한 철학이 달랐다. 1962년 중앙과 지방의 지도간부 7000명이 참석한 회의(7000인 회의)에서 대약진운동 이후 발생한 대기근에 대해 “3할은 천재(天災)이고 7할은 인재(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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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