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편의 예심 통과작 가운데 심사자들이 토론에
붙인 것은 `공존의 조건'`망각'`늙은 비둘기똥'`우리들의 작문교실' 이렇게 4편이다. 언어,구조와
제시,주제,효과의 네 측면을 따지는 것은 어느 소설심사에서나 대체로 적용되는 일반적 심사기준이며,우리의
경우라 해서 유별난 잣대가 있을 리 없다. 다만 본심은 예심과 달리 단 `한 편'만을 골라야 하고
그 한 편의 선택이 "그래, 그만하면 당선작이 되겠어"라는 독자 동의를 얻을만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에
예심 때보다는 훨씬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하고,이 종합 판단에서는 위에 말한 네 측면에서의 고른 성취도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변두리 다세대 주택 임대자와 임차인들 사이의 이야기를 쓴 `공존의 조건'(심규보)은
세태의 한 자락을 흥미롭게 펼쳐 보이면서도 소설이 사건 또는 인물의 차원에서 보여주어야 할 모종의
`변화'를 제시하지 않는다. 제목이 말하는 `공존의 조건'이 무엇인가도 거의 오리무중이며 암시의
내용도 허약하다. 치매노인들을 다룬 `망각'(정운광)은 기억을 상실했을 때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극히
중요하고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었지만 치매병동의 일일 보고서 수준을 넘는 통합적 `서사'의 층위를
성취하지 못하고 있다. `늙은 비둘기똥'(안휘지)은 뛰어난 언어 기량을 과시하면서도 그 기술 수준이
그에 어울릴 수준의 서사적 사유를 동반하지 않는다. 매우 아쉽게도 이 응모작은 기술이 쓸만한 곳에
쓰여야 하고 기술 이상의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요청을 잊고 있다. 소설을 `왜 이렇게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만족시킬만한 어떤 강점을 이 응모작은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 심사자들의 판단이다. 그러나
이상의 세 편 응모작들은 기대해볼 만한 미래 작가들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들의 작문교실'은
성장기의 두 소녀 이야기다.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는 깔끔하고 신선한 작품이다. 서사를 조직하고 전개하는
기량이 기성 작가의 수준을 능가할 정도로 탁월하다. 이 작가는 혼자 엄청난 양의 훈련을 거쳤거나
아니면 이야기꾼의 재능을 타고 났는지 모른다. 이실직고하면,본심 심사장에 들어서는 순간 두 심사자들은
`삼국지' 적벽대전에 나오는 고사의 경우처럼 서로 마음 속에 "이거다"라며 품고온 `당선작'부터
꺼내놓았는데 그것이 이 작품이다. 성장의 비밀이 제시되는 결미 부분의 제시를 다소 서두른 느낌이
없지 않지만, 이런 부분은 작가가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 전에 약간 손질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