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같은 생활이 계속되고 있던 중에 내게 말을 걸어 온 애가 위니이다.
"아직 모르고 있겠지만...... 넌...... 내 짝이 될 애야."
라며, 그 애의 말은 시작되었다.
"우리 반 애들은 전부 합쳐서 서른 넷이야. 그러니까 네가 결석하는
동안엔 서른 셋이었어. 서른 셋을 둘씩 둘씩 짝 지우면 하나가 남지 않니?"
나는 그 애의 숫자 계산을 또박또박 따라가 보았다. 맞는 계산이었다.
틀림없이 하나는 남게되지.
"그 하나가 바로 나야."
"...............?"
"선생님이 그러셨어. 결석하는 애가 나오면 같이 앉으라고."
더 이상 말 안 해도 알 것 같았다. 그 애는 따돌려졌던 거다.
외톨이인 채로 또 하나의 외톨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엔 왜 하필 위니가 따돌려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뚱뚱하지도
않았고 눈에 띄게 못 생기지도 않았다. 잘 안 씻어서 냄새가 나는 애도 아니고 남의 물건을 집어
간 적이 있다는 소문이 있는 애도 아니었다.
가난한 아이가 따돌려지는 일이 흔히 있지만 위니는 전혀 가난하지
않았다. 가난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상당한 부자임에 틀림없다. 위니의 아빠는 당뇨병에 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는 의사 선생님이고 위니의 엄마는 연극배우이다. 결혼하기 전엔 자기도 굉장한 사람이었는데
결혼하고 위니를 낳는 바람에 모든 게 엉망이 되었다고, 위니와 위니의 아빠를 몹시 미워하는 아줌마이다.
물론 도시락에 개구리를 넣어 둔다든지 숙제장을 감춰버리는 엄마는 아니다. 위니의 엄마는 어른이니까
좀 더 복잡하고 꾀 많은 방법으로 위니를 괴롭힌다. 예를 들어 한밤중에 일어나 울음을 터뜨리거나
방문을 잠그고 이틀 씩 밖으로 나오지 않는 그런 짓을 곧잘 한다. 그러면 위니의 야단스런 이모들이
나타나서 문을 열어달라고 통사정을 한단다. 그리고 위니를 무릎에 앉혀놓고 엄마는 특별한 사람이야,
위니가 어른스럽게 엄마의 친구가 되어주어야해, 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릴 늘어놓는 거다. 남들은
그런 위니 엄마를 가엾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 생각에 그건 위니를 괴롭히려는 속셈이다. 얼핏
봐서는 그런 속셈이 드러나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못 살게 구는 것. 그것이 위니 엄마의 꾀이다.
그러나 한 가지 다행스러운 일은 그런 아줌마도 요즘은 잠잠해졌다는
점이다. 다시 무대에 오르는 건 잊어버리기로 하고 대신 연극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있어서 예전보다
더 바쁘다고 한다. 그러니 더 이상 그런 쓸데없는 꾀를 부리지는 못하겠지. 어쨌든 위니의 아빠는
아빠대로 대단히 중요한 일을 하고 엄마는 엄마대로 잡지에 나고 그러는 걸 보면 위니는 절대로
가난할 리 없다. 겉으로 봐서는, 위니는 따돌려질 애가 아니라 차라리 소공녀에 나오는 레비니어
같이 굴어도 될 애였다.
그러나 사흘도 못 되어서 나는 위니의 문제점을 눈치 챌 수 있었다.
그 애의 경우는 고집이 세다는 게 문제였다. 그것도 아주 철딱서니 없고 말도 안 되는 걸 가지고
죽기 살기로 우기는 거다. 이름만 해도 그렇다. 당연히, 위니의 진짜 이름은 `위니'가 아니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자 출석부에 올라있는 이름은 따로 있다. 그런데 한사코, 위니는 `위니'로
불리고 싶어했다. `위니'라고 부르지 않고 그 애의 진짜 이름으로 부르면 대답도 안 한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 안 할 땐 안 한다. 하는 수 없이, 만사 포기하는 심정으로 `위니'라고 부르면
그제서야 들은 체를 한다. 아이들은 화를 내며 그 아이를 점점 더 따돌렸다. 결국에는 위니고
뭐고 간에 도대체 그 아이를 상대하려는 애도 없었다. 멀쩡한 진짜 이름은 따로 모셔두고 별 것도
아닌 가짜 이름을 가지고 야단을 피우는 위니를 나 역시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위니가 원하는 대로 `위니'라고 불러 줄 수밖에. 생각해 보면 누구나 자기가 불리고
싶은 이름으로 불릴 권리는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름이란 부르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고
위니 자신의 것이니까.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위니'는 위니가 좋아하는 만화 주인공이다.
(그렇다고 위니 더 푸우의 그 위니는 아니다) 우리의 위니는 멋쟁이 소녀탐정 위니이다. 겉으로는
평범한 여학생으로 살아가지만 위니는 보통의 아이가 아니다. 명탐정이다. 값비싼 보석이 감쪽같이
사라졌을 때, 유명한 그림이 가짜와 바꿔치기 되었을 때, 또는 예수님의 일기장만큼이나 중요한
비밀 서류가 마이크로 필름에 찍혀서 새어나가려 할 때에 우리들의 위니가 나타난다. 때론 재치를
발휘해서, 때론 미모를 이용해서 위니는 범인을 찾아낸다 (위니는 다른 어떤 만화 주인공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다리도 길고 머리도 길다). 하지만 그런 위니도 평소엔 보통의 아이들과 달라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소녀탐정 위니의 정체를 아는 건 오직 한 사람, 룸메이트 `펄' 뿐이다.
주근깨 투성이에 커다란 안경을 쓴 펄.
위니는 나를 펄이라 부른다.
위니와 펄 노릇을 한 지도 한 달쯤 지난 후에 나는 위니를 엄마의
가게에 데려갔었다. 위니에게 꼭 보여 주고 싶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가게에 도착하기 전에 나는 두 가지 점에 대해서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첫째, 가게에 있는 건 도넛이든 음료수든 얼마든지 먹어도 좋은데 단, 돌아다니면서 먹지는 말
것. 왜냐면 엄마가 질색하니까. 엄마한테 좋은 인상을 주고 싶겠지? 둘째, 그럴 리도 없겠지만,
혹시라도 말야, 아빠 얘기는 꺼내지 말 것. 왜냐면 내가 싫으니까.
위니는 궁금해했다.
"왜 아빠를 싫어하는 거야?"
"이 바보, 아빠가 싫은 게 아니고 아빠 얘기가 싫은 거야."
"왜?"
"엄마가 걱정할까봐."
"뭘?"
"아빠가 없다는 걸 알면 네가 날 특별한 애로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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