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다스동아일보[글마당:그리운 얼굴]

결혼 10년째인 나는 장인어른만 생각하면 고마움에 어쩔 줄을 모른다.

비단, 매년 추수끝나고 양식을 대줘서만은 아니다(딸자식이어도 한번도 쌀을 사먹은 적이 없음). 평생을 고향에서 쌀농사만 지으며(6천평, 20마지기) 4남3 녀를 모두 어엿하게 대학교육까지 시킨 열성에 감격해서만도 아니다. 당신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27살 청상과부되신 홀어머니와 두 살배기 동생을 돌 보며 寒微한 일가를 문중에서 우뚝 서게 한 업적때문도 아니다. 내가 고마워 하고 감격하는 것은 그분은 요즘 세상에 보기드물게 '孝'가 무엇인지를 몸 으로 실천하여 우리에게 無言의 가르침을 주신 까닭이다.

평생 한번도 당신 어머니의 뜻을 거스른 적이 없다한다. 돌아가신 후에도 삼 년상을 치르며 조석봉양했다. 이후 외가 동네어귀에 그분의 성실한 삶을 추 모하여 '孝烈碑'까지 세웠다. 효열비는 성균관장의 인증이 있어야 세울수 있 다 한다. '孝는 百行의 근본'. 만고의 진리 아니겠는가.

나는 초등학교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장인어른의 예를 들을 때 가 많다. 세상이 아무리 달라졌어도 바뀌지 않는 것은 '어버이 은혜' 아닐까. 4년전 농번기방학때 찾은 처가, 뒷논에서 장인어른은 '홀태'(지금은 거의 사 라졌음)로 나락을 훑으고 계셨다. 지금 일흔이 넘으신 나이에도 20마지기를 다 지신다. 참으로 억척이다. 살아 움직일 수 있을 때 농사져서 자식들이 대 처에서 쌀은 사먹게 하면 안되겠다는 신념이다. 구릿빛 노안을 볼 때마다 그 분의 건강한 삶을 읽는다. 거짓없이 성실하게 살아온 늙은 농부의 초상화이 다.

힘을 주려 굳게 다문 입술과 구릿빛 얼굴에 비치는 강인한 의지가 동학농민 전쟁을 일으킨 수많은 농사꾼들의 저력 아니겠는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 면서 고향을 지키는 큰어른의 그림자를 우리는 언제나 뒤따를수 있을까.

오건호<경기도 용인시 모현읍 왕산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