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6·첩첩산중의 양반촌 봉화 닭실마을
  글 읽는 소리 들리는 듯


경북 봉화군 태백산맥-소백산맥 양백지간 사이 위치



  경 북 봉화군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양백지간(兩白之間)에 있다. 그래서 높고 험준한 산들이 많다.

구룡산 선달산 문수산 옥돌봉 삼봉산 등 해발 1000m가 넘는 산봉우리만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 또한 이곳은 누대에 걸쳐 세거(勢居)해온 종가와 「양반」이 유난히 많은 곳이기도 하다.

공맹(孔孟)의 도를 숭상하고 엄격한 유교적 질서와 전통을 지켜온 그들은 제 고장을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 자부했다. 「택리지」 를 쓴 실학자 이중환은 이곳을 두고 『외따로 떨어진 촌락이나 보잘것없는 마을에서도 글 읽는 소리가 들렸으며, 해어진 옷을 입거나 좁은 창을 내고 살지언정 모두 도덕과 성리학을 말한다』고 했다.

한마디로 「첩첩산중의 양반고을」인지라, 개발과 변화의 바람이 미약하고 사람들의 성향도 대체로 보수적이다. 때문에 이곳에는 지금도 유교적 전통과 습속을 간직한 양반마을이 적지 않다.대표적인 곳이 안동 권씨 집성촌인 봉화읍 유곡(酉谷)1리 [닭실]이다. 이 마을은 풍수지리상으로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곧 닭이 알을 품은 듯한 지세라고 한다.

「닭실」이라는 지명도 여기에서 나온 것.



소수서원 들러 귀씻고… 오전 약수 들러 목축이고

닭백숙집­민박집 겸한 음식점들 많아

부석사에서 풍기로 가는 길에 지나게 되는 소수서원도 꼭 둘러볼 만하다. 1543년 주세붕(1495~1554)이 세운 이 서원은 오랜 세월 에도 변함없는 옛모습이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그리고 서원을 둘러싼 노송들의 늠름한 기상도 보기 좋다.

성혈사는 소수서원 서북쪽의 소백산 기슭에 자리잡은 아담한 사찰. 단청을 칠하지 않은 건물이라 단아하면서도 깊은 멋이 배어있고, 세칸의 문짝에는 화려한 꽃살문이 조각되어 있다. 특히 물고기를 쪼는 두루미, 연잎에 앉은 개구리, 연꽃 줄기에 매달린 동자상 등 동화 같은 내용이 조각돼 있는 가운데 칸의 양쪽 문살이 아름답다.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의 오전약수는 조선 성종 때 보부상에 의해 발견된 탄산약수인데, 성종이 친히 물맛을 본 뒤 전국 최고의 약수 로 선정했다고 한다. 약수터 주변에는 수정식당(0573-72-2123)을 비롯해 닭백숙집과 민박집을 겸한 음식점들이 많다. 풍기읍내의 서부냉면집(0572-636-2457)은 평양냉면의 맛을 제대로 내는 집으로 유명하다.

이곳에 처음 들어온 안동 권씨는 충재(沖齋) 권벌(1478∼1548)의 5대조였지만 마을이 번창하기 시작한 것은 권벌 이후였다고 한다.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인 권벌은 조광조의 개혁정치에 참여한 사림파의 일원으로, 나중에 의정부 우찬성을 지낸 사람이다. 그러나 기 묘사화와 을사사화 때 파직당하고 귀양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현재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유적들도 기묘사화로 파직당한 권벌이 낙 향해 머무르는 동안 일궈놓은 것이다.

권벌의 종택 울타리 안에는 종가말고도 가전(家傳)된 유물을 보관하는 유물각과 청암정(靑巖亭)이라는 정자가 들어서 있다. 종택은 영남지방의 전형적인 양반집인 「ㅁ」자형의 집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앞에 사랑채가 있고, 사랑채에서 안채로 들어가려면 중문을 지나야 한다. 유물관에는 「충재일기」(보물 제261호) 「근사록」(보물 제262호) 등 권벌이 남긴 각종 책과 문서, 서첩과 서화 같은 귀 중한 유물들이 있다.

종택 서쪽의 작은 쪽문을 나서면 권벌 유적의 정수(精髓)라 할 청암정 구역에 들어선다. 해묵은 느티나무가 커다란 그늘을 드리운 마 당 한쪽에는 세칸 규모의 「충재」(沖齋)라는 서재가 있다. 충재 앞에는 둥그런 인공 연못이 있고 연못 한복판에는 넓은 거북바위가 우뚝하게 솟아있는데, 이 바위 위에 세워진 「丁」자형의 건물이 청암정이다. 서재에서 이 정자로 오르려면 연못 위에 놓인 작은 돌다 리를 건너야 한다.

청암정은 삼면이 트인 여섯칸짜리 마루와 두칸의 작은 마루방으로 이뤄진 건물인데, 마루가 주변의 담보다 높게 올라앉아 주변의 조망이 매우 활달하다. 아마도 정자의 기능 외에 감농(監農) 「초소」로서의 역할도 고려한 것 같다. 청암정에서는 마을앞 들녘이 한눈에 들어와 풍류나 시회를 즐기면서도 들에서 일하는 「아랫것」들을 감독하기가 어렵지 않았을 듯하다.

권벌 종택의 옆으로 흐르는 내를 따라 하류 쪽으로 얼마쯤 가면 석천정(石泉亭)이다. 풍광이 수려한 냇가에 자리잡은 이 정자는 충 재의 큰아들인 청암 권동보가 1535년에 지었다고 한다. 건물 규모가 34칸에 이를 정도로 매우 커서 정자라기보다 누각처럼 보인다.

이 건물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개울가의 빼어난 경치를 누각 안으로 최대한 끌어안았다는 점. 개울가에 축대를 쌓은 다음 그 위 에 건물을 올렸는데, 개울가 쪽에는 담을 세우지 않아 누각의 문을 모두 열어제치면 선경(仙境) 같은 자연이 한눈에 들어온다.

석천정 초입에서 부석사 방향으로 가계천과 나란히 달리는 915번 지방도를 따라 10여리쯤 가면 물야면 북지리 구산마을에 이른다. 이곳의 수월암(水月庵)이라는 작은 암자에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국보 제201호)이라고 불리는 높이 4m쯤의 거대한 신라시대 마애 불이 있다. 높이 5m폭 4m의 바위를 파서 만든 커다란 감실(龕室) 안에 여래불이 고부조(高浮彫)로 새겨져 있다.

몸 전체가 매우 입체적으로 조각되어 부처가 바위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느낌을 준다. 넓고 큼직한 얼굴은 양감(量感)이 두드러지고, 안온한 낯빛이 푸근하다. 어깨는 좁고 움츠린 듯하지만 전체적으로 당당해 보이는 풍채에서 부처의 위엄 이 엿보인다. 그러나 감실의 윗부분이 떨어져 나간데다 불상도 자연적인 마모와 풍화가 심해 본래모습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점이 못내 아쉽다.

북지리에서 16km쯤 떨어진 부석사도 지나칠 수 없다. 부석사를 한번도 가보지 못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부석사는 열번, 스무 번을 가봤어도 또 찾아가 볼 만한 곳이다. 눈길을 끄는 유물이 워낙 많기도 하거니와 절이 주는 느낌도 계절마다, 그리고 아침저 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장중한 무량수전(국보 제18호)의 배흘림기둥을 눈여겨보는 이는 많아도, 그 안에 봉안된 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45호)이 진흙으로 만들어진 불상임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또 안양루 계단을 오를 때 네모진 시야 안으로 들어오는 석등(국보 제17호)이 인 상적이었다는 사람은 많지만, 그 석등의 화사석(火舍石)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살상이 조각되어 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 해본 사람은 별로 없다.

부석사에는 이처럼 그 가치와 아름다움을 미처 알지 못하고 지나쳐버리기 쉬운 것들이 수없이 많다.

◇추로지향

예절이 바르고 학문이 왕성한 곳. 「鄒」는 맹자의 출생지, 「魯」는 공자의 출생지다.

◇양반고을

경상도 북부지방에 권문세가들이 유난히 많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먼저, 신라 때부터 천년넘게 살아온 토착세력들이 적지 않았다. 거기에다 여러 지방의 사족(士族)들이 오랑캐와 왜구의 침탈을 피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이곳은 피란처로서의 조건을 두루 갖추 고 있기 때문이었다.

서-북쪽으로는 양백(兩白)의 높고 험한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처져 있어 전란을 피하기가 쉽고, 외진 곳 에 멀리 떨어져 있어 중앙 정부의 감시와 수탈을 덜 당했다. 또한 산을 등지고 있어 땔감을 마련하기가 쉬웠으며, 마을과 들녘마다 내가 흘러 농업용수가 넉넉했다.

그래서 난을 피해 외지에서 들어온 사족들도 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눌러앉아 번성했다.

◇배흘림기둥

배흘림기둥이란 아래쪽 3분의 1쯤 되는 부분을 가장 불룩하게 만든 기둥. 높은 기둥은 위아래의 굵기가 같으면 사람의 눈은 착시를 일으켜 기둥의 위쪽이 아래쪽보다 더 굵게 보인다. 그렇게 되면 기둥이 앞쪽으로 쏠릴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바로 그런 착시현상을 막기 위해 애초부터 기둥 아래부분을 위쪽보다 더 불룩하게 만든 것.

우리나라 고건축물 중 가장 두드러지게 표현된 배흘림기둥은 강릉 객사문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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