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10·상주 ‘남장사’
  돌장승 홀로 반기는 고즈넉함


  오래 전부터 경북 상주 남장사(南長寺)에 한 번 가보기를 별러왔다. 그곳 초입에 세워진 돌장승을 언젠가 사진으로 본 적이 있는데, 그 해학적인 형용이 매우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입구에 장승이 세워져 있는 절들 은 대개 절집다운 고즈넉함과 인심이 살아 있어 적어도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나름의 경험칙(經驗則)도 작용했다. 창녕 관룡사, 나주 불회사, 순천 선암사, 남원 실상사, 함양 벽송사 등이 그러했고 상주 남장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음산 자락의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상주 남장사



상주 시내에서 남장사까지는 시오리 길. 상주 삼백(三白) 중 하나가 곶감이라더니, 절 의 들머리에 위치한 남장동마을 주변은 온통 감나무밭이다.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감 들이 노랗게 익어가는 늦가을이면 가히 장관 을 이룰 법하다. 남장사의 명물 돌장승은 감 나무밭이 끝날 즈음의 길섶에 홀로 서 있다.

남장사입구에
세워진 돌장승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왕방울눈에 뭉뚝한 주 먹코, 꽉다문 일(一)자형의 입술 아래로 삐죽 이 나온 팔(八)자형 송곳니, 그리고 턱밑에 고추처럼 매달린 수염. 이런 장승의 모습에 행인들마다 절로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짓고는 있지만 오히려 만만해 보인다. 게다가 길죽하고 울퉁불퉁한 자연석을 다듬어 얼굴만 간략하게 새겨놓은 까닭에 남근석(男根石)이나 기자석(祈子石)처 럼 보이기도 한다.

마을 동구의 입석(立石)이 라면 모를까, 사찰의 호법(護法) 장승으로는 왠지 어울리지 않을 법한 형용이다. 짐작컨 대, 지배층으로부터 배척당하던 불교가 토속 신앙을 적극적으로 포용함으로써 민중 속에 뿌리내리고자 했던 당시의 시대상황이 반영 된 듯하다. 장승의 몸통에 새긴 「하원당장 군」(下元唐將軍), 「임진 칠월 입」(壬辰 七月 立)이라는 각자(刻字)로 보아 1832년에 「상원주장군」 (上元周將軍) 과 함께 세워진 것으 로 짐작된다.

돌장승을 뒤로 하고 다시 길을 얼마쯤 오르 면 노음산(725m) 중턱의 녹음 짙은 숲 속에 들어앉은 남장사에 이른다. 절을 둘러싼 산 이 그리 높지도 크지도 않은데도 절 주변에 는 아름드리 나무가 울창하고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계류도 제법 풍부하다. 막 잎이 돋아 나기 시작한 절 앞의 느티나무 아래 앉아 있노라면 심산유곡에 들어온 듯한 적막감마저 돈다.

1716년에 이만돈이라는 사람이 쓴 「남장사 사적기」에 따르면, 이 절은 신라 흥덕왕7년 (832)에 진감국사가 장백사(長柏寺)라는 이름 으로 창건했다고 한다. 고려 때인 1186년에 는 각원국사가 지금의 터에 절을 옮겨짓고 이름을 남장사라 바꿨으며, 고려말까지 꾸준 히 번성했다.

조선초에는 억불정책으로 한때 사세가 위축되기도 했지만, 사명대사가 이곳 의 보광전에 주석한 뒤부터 선교(禪敎) 통합 의 도량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어 1635년에 중창했고, 오늘날까 지도 절 전체의 옛 모습이 비교적 잘 간직되 어 있다.

남장사는 전체의 모습을 한눈에 가늠하기 쉽 지 않다. 절의 영역이 극락보전 영역과 보광 전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이다. 아래쪽의 극락보전 영역은 건물도 몇채 되지 않 는데다 마당이 넓직해서 시원스럽다.

반면에 위쪽의 보광전 영역은 여러 채의 건물들이 올망졸망하게 모여있어 정겹고도 아늑하다. 이처럼 하나의 절집이 다른 분위기의 두 영역으로 나뉜 덕택에 서로 분위기가 다른 두 절집을 한번에 둘러보는 듯하다.

남장사의 본전(本殿)인 극락보전은 1635년에 지어진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 인데, 가운데 문짝의 꽃살문이 돋보인다. 단청이 두텁긴 하지만 사방연속무늬의 파란색 문살 위에 점점이 떠 있는 적청황백(赤靑黃 白)의 꽃송이가 화사하기 그지 없다.

남장사 보광전

그리고 이 전각 뒤쪽의 축대 위에는 갖가지 초목들 이 심어져 있어 늘 아름다운 화원(花園)을 이룬다. 화원 사이로 난 운치있는 돌계단을 올라가면 다시 삼문(三門·사찰의 누문)을 지나 보광전 영역.

극락보전이 세워지기 전까지 이 절의 본전이 었던 보광전에는 나옹화상이 14세기에 조상 했다는 철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990호)이 모셔져 있다. 이 불상은 높이가 1.33m로 등 신대에 가까운 좌상이다. 그러나 상체가 길어서 다소 불안정해 보인다. 더욱이 철불이 면서도 몸 전체를 개금(改金)한 바람에 철불 특유의 강렬하면서도 날카로운 맛이 없다.

또한 비로자나불의 수인(手印)인 지권인(指 拳印)은 대체로 곧추세운 왼손의 검지손가락 을 오른손이 위에서 움켜쥐고 있는 모양인데, 이 불상은 그 반대인 점이 특이하다.

이 철불 뒤에는 금분(金粉)을 입힌 목각탱 (木刻幀)이 있다. 여덟장의 나무를 잇댄 목판 위에 관세음 대세지 나한 사천왕 비천 등 모 두 24구의 보살과 신장(神將)들이 두드러진 돋을새김으로 아미타불의 좌우에 정연하게 배치됐다.

전체적으로는 매우 부드러운 인상 이지만 신체의 세부묘사가 정교하지 못한데다, 일률적으로 표현된 얼굴과 표정에서는 별로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남장사의 부속 암자인 관음선원에도 조선 중기에 제작된 목각탱이 하나 있다. 이 목각탱은 관음선원의 관음전 안에 봉안된 관세음보살상의 후불탱으로 1694년에 조성됐다.

남장사 관음선원의 목각탱(보물 제923호)

이 목각탱은 예천 용문사에 있는 것과 함께 우리나라의 목각탱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수작으로 꼽힌다. 가운데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네명의 보살, 석가모니의 2대 제자인 아난과 가섭, 호법신인 사천왕들이 외호(外護)하는 형상으로 조각되어 있다.

비파와 보탑(寶塔)을 든 두 천왕의 머리 위쪽에는 구름을 타고 모여드는 타방(他方)의 부처들을 새겨놓았다. 전체적으로 질서정연하지만 사천왕의 자유로운 몸짓과 기묘하게 웃는 불제자의 표정이 친근감과 개성을 느끼게 한다. 크기는 보광전의 목각탱보다 작지만 파격의 미와 생동감은 훨씬 돋보이는 작품이며, 보물 제923호이다.

상주에는 남장사말고도 고색(古色) 짙은 문 화유적이 여럿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 상주시내 남산공원의 석각천인상 (石刻天人像 · 보물 제661호) 을 꼽을 만하다. 이 천인상은 용화전이라는 전각 안에 보관된 두 개의 판석(板石)에 조각되어 있다. 왼쪽의 주악천인상 (奏樂天人像)은 몸과 얼굴을 왼쪽으로 살짝 돌린 채 비파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인데, 자세가 자연스러운데다 옷주름이 매우 섬세하고 사실적이다.

또한 콧날이 오뚝하고 입 술이 도툼한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감돌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오른손으로 연 꽃을 받쳐든 오른쪽의 공양천인상(供養天人像)은 화관을 쓴 머리에 이목구비가 단정하 지만 주악천인상보다 생동감이 떨어진다.

이 천인상이 조각된 판석은 통일신라말에 조성 된 거대한 석탑의 기단부나 몸돌을 이루는 부재(部材)였던 것으로 보인다.

낙동강이 빚어낸 절경 ‘경천대’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상주에는 강변 풍광 이 빼어난 데가 많다.

그 중에서도 사벌면 경천대(擎天臺) 부근의 낙동강 풍광이 으뜸 이다. 넓고 깨끗한 모래밭과 깎아지른 절벽 이 한데 어루러져 경관도 매우 아름답거니와 갖가지 위락시설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상주 제일의 휴양지로도 꼽힌다.

상주땅은 아니지만, 상주 시내에서 승용차 편으로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예천시 용궁 면 향석리에도 낙동강이 이뤄놓은 장대한 경 관을 감상하기에 좋은 데가 있다. 장안사라 는 작은 절을 지나 넓은 산길을 약 200m쯤 오르면 태극으로 굽이치는 낙동강 물길에 갇 힌 향석리 의성포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 다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강변 절경지 중의 하나가 부용대 절벽에서 바라본 안동 하회마을의 전경인데, 이곳은 그보다 훨씬 장엄하고 감동적인 경관을 보여준다.

상주 시내에는 팔레스장(0582-536-2700)을 비롯해 깨끗한 장급 여관이 많지만 남장사 부근에는 이렇다할 숙박시설이 없다. 상주 삼백(三白)의 하나인 상주쌀은 조선시대에 왕실에 진상될 정도로 찰지고 맛이 좋기 때문에 상주의 어느 음식점에 가더라도 일단 밥맛만큼은 믿을 만한다.

§ 참조하세요

삼백(三白)

상주 지방에서 나는 세가지 특산물을 일컫는 말로, 그 색깔이 모두 희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원래는 쌀 목화 누에고치를 일컬었으나 목화 생산이 끊긴 뒤로는 목화 대신 곶감을 삼백의 하나로 꼽고 있다. 해마다 10월에 열리는 상주문화제에서는 삼백아가씨 선발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목각탱(木刻幀)

불전(佛殿)의 본존불 뒤에는 대체로 비단이나 종이에 그려진 후불탱화(後佛幀畵)를 두지만 드물게 목각탱을 두는 경우도 있다. 목각탱은 여러 장의 나무를 잇댄 목판에 여러 불보살들을 부조(浮彫)로 새긴다는 점이 불 화(佛畵)와 다를 뿐, 등장하는 불보살들의 배 치와 구성은 불화와 대동소이하다. 이런 후 불목각탱이 언제부터 조성됐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현재에는 조선 중기 이후에 제작된 작품이 10여점 남아 있다. 그 중에서도 상주 남장사를 비롯해 문경 대승사, 예천 용문사, 남원 실상사 약수암의 목각탱이 유명하다

아난과 가섭

아난(阿難)은 석가모니의 종제(從弟)이자 십 육 나한(羅漢)의 한 사람이다. 견문이 넓고 기억력이 좋은데다 석가모니의 상시자(常侍者) 였기 때문에 석가모니가 열반한 뒤에 펴 낸 대부분의 경전이 그의 기억력을 빌어 결 집됐다고 한다. 아난다(阿難陀)라고도 한다. 가섭(迦葉)은 원래 브라만교를 믿는 부호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불교에 귀의한 뒤에는 용 맹정진하여 두타행(頭陀行·의식주에 대한 탐욕과 번뇌를 버리고 청정하게 불도를 수행 하는 일)의 제1성자가 됐다. 마하가섭이라고 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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