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드보르자크 카니발 서곡, Op.92 |
|
안토닌 드보르자크(1841~1904)는 체코의 작곡가입니다. 그가 살던 시기에 체코는 ‘보헤미아’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고,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는 일찍이 모차르트(1756~1791)가 살았을 때 가장 좋아했던 도시입니다. 빈에서 인기를 얻는 데 실패한 모차르트에게 프라하 시민들의 응원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가 때 이른 죽음을 맞았을 때 가장 슬퍼한 이도 프라하 시민들이었습니다.
드보르자크는 그런 도시에서 음악가의 꿈을 키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디까지나 오스트리아나 빈의 음악가가 아니라 보헤미아의 작곡가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음악에는 보헤미아의 푸른 숲과 들녘에서 땀 흘리는 소박한 농부들의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그가 쉰한 살 때 미국에 건너가 활동하게 되었을 때도 언제나 고향을 잊지 않았고, ‘신세계 교향곡’이나 ‘아메리카 현악 사중주’와 같은 작품을 통해 향수를 녹입니다.
오늘 들을 ‘카니발 서곡’에서도 프라하 거리의 카니발 행렬을 떠올리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카니발은 우리말로 ‘사육제’라고도 하는데요, 그리스도의 수난을 애도하는 사순절에 앞서 짧은 해방의 시간을 정해 먹고 마시고 즐기게 한 데에서 유래합니다.
|
 |
|
슈트라우스 오보에 협주곡 D장조 |
|
19세기 독일 오스트리아 음악가 가운데는 슈트라우스라는 이름의 작곡가가 많습니다. ‘왈츠의 왕’으로 불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일가 때문인데요, 그의 아버지와 요한의 두 동생, 요제프와 에두아르트까지 더해 많은 슈트라우스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과는 상관이 없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라는 작곡가도 20세기 중반까지 중요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는 교향시라는 분야에 집중했습니다. 음악을 가지고 이야기를 묘사하는 관현악을 교향시라고 하는데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이 방식으로 ‘돈키호테’, ‘영웅의 생애’,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같은 걸작을 두루 남겼습니다.
교향시 뒤로 슈트라우스는 오페라에 관심을 갖습니다. 자신의 음악적인 상상력을 실제 무대에서 살려보고 싶었던 것이죠. <살로메>, <장미의 기사>,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와 같은 주옥같은 오페라가 뒤를 잇습니다.
이렇게 묘사 음악에 관심을 갖던 슈트라우스가 만년에 이르러 순수 음악 작품을 쓰게 됩니다. 바로 오늘 들을 오보에 협주곡과 호른 협주곡 2번과 같은 곡이 그 예입니다. 오보에는 가늘고 긴 빨대 모양의 주둥이를 가진 관악기입니다. 오리가 우는 소리 비슷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슈트라우스는 이 악기를 주인공으로 해서 1945년에 협주곡을 씁니다. 빠르고 느리고 빠른 세 악장으로 되어 있고, 악장 사이에는 박수를 치지 않는데요, 이렇게 만년에 이르러 묘사나 극음악에서 벗어나 음악만이 주는 아름다움을 탐구한 슈트라우스의 모습을 잘 간직한 명곡입니다.
|
 |
|
김연준 무곡 |
|
김연준 선생은 교육자이자 시인, 작곡가였습니다. 1914년에 함경북도에서 태어나 2008년에 세상을 떠났는데요, 왕십리에 있는 한양대학교의 설립자이기도 한 분입니다. 직접 시를 짓고 곡을 붙인 ‘싱어송라이터’라고 할 수 있는 분으로, ‘청산에 살리라’, ‘무곡’, ‘비가’와 같은 주옥같은 음악을 작곡해 많은 성악가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무곡’은 마치 동시와도 같이 소박하고 꾸밈없는 시에 붙인 곡으로, 일정한 음수율을 따른 정형시를 수묵담채화처럼 음악으로 풀어냈습니다.
|
 |
|
벨리니 오페라 <카플레티가와 몬테키가> 中 ‘행복에 겨운 나를 봐요... 오! 몇 번인가 눈물에 젖어’ |
|
빈첸초 벨리니는 1801년에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태어나 1835년 서른네 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노르마>, <청교도>, <몽유병 여인>과 같은 걸작 벨칸토 오페라로 파리에서 승승장구하며 그에 앞서 파리를 열광케 한 로시니의 후계자로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카풀레티가와 몬테키가>는 1830년에 작곡되어 베네치아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배경입니다. 셰익스피어가 영국식으로 옮긴 ‘캐퓰릿’과 ‘몬태규’라는 두 집안을 이탈리아 베로나의 원래 이름대로 쓴 것이죠.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이름도 ‘로메오’와 ‘줄리에타’라는 이탈리아식으로 부릅니다. 벨리니는 이 오페라 전에 <자이라>라는 작품을 발표했는데, 이 십자군 시대 이야기가 흥행에 성공하지 못하자 거기에 썼던 음악을 <카풀레티가와 몬테키가>에 다시 썼습니다. 그만큼 음악은 자신 있었던 셈이죠.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바로크 시대 전통을 따라 이 곡은 두 주역을 모두 여자가 부릅니다. 곧 로메오 역도 여자인 메조소프라노가 노래하는데요, 이런 남장 여자를 ‘바지 역할’이라고 불렀습니다.
‘행복에 겨운 나를 봐요... 오! 몇 번인가 눈물에 젖어’는 1막 2장에서 줄리에타가 홀로 부르는 노랩니다. 그녀는 두 집안의 원한 때문에 로메오와 사랑을 이룰 수 없음을 탄식하며 이 노래를 부릅니다. 그리움과 탄식, 욕망이 어우러진 노래는 셰익스피어의 희곡과는 또 다른 음악의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
 |
|
구노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中 ‘아, 꿈 속에 살고 싶어라’ |
|
샤를 구노(1818~1893)는 19세기 프랑스 작곡가입니다. 프랑스는 일찍부터 이탈리아와 함께 ‘오페라’라는 장르를 크게 발전시킨 나라입니다. 일찍이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은 당대 최고 수준의 공연이 열리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세기 초에 이르면서 침체기를 맞고 파리의 주요 오페라 극장은 로시니, 벨리니, 도니체티와 같은 이탈리아 작곡가들에게 점령당하다시피 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돌려놓은 작곡가 가운데 한 사람이 구노입니다.
우선 구노는 유럽 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을 두 작가의 원작을 오페라로 만들었습니다. 바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과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파우스트>입니다. 구노가 대본을 보는 능력이 얼마나 탁월한지 알게 하는 대목이죠. 셰익스피어와 괴테 모두 프랑스 사람은 아니었지만, 프랑스 작곡가 구노를 통해 오페라 극장에서 가장 사랑받게 되었습니다. 구노는 제자 조르주 비제에게 자신의 작업을 전수했고, 비제는 <카르멘>이라는 걸작으로 프랑스 오페라의 절정을 이룩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영화로도 많이 제작되었죠. 프랑코 체피렐리 감독이 만든 것과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주연한 것이 잘 알려져 있는데요, 극중에서 줄리엣과 로미오가 처음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줄리엣 집에서 무도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줄리엣은 부모가 정해준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하기 싫어서 ‘아! 꿈속에서와 같이 자유롭게 살고 싶어라’라고 노래합니다. ‘줄리엣의 왈츠’라고도 불리는 매혹적인 노래입니다.
|
 |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3번 d단조, Op.30 |
|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는 19세기 프레데리크 쇼팽과 프란츠 리스트를 잇는 걸출한 피아니스트 작곡가였습니다. 그는 키가 190센티미터가 넘고 손 한 뼘이 보통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었습니다. 그런 타고난 신체조건으로 피아노를 자유자재로 다루었고, 러시아의 깊은 숨결을 작품에 녹여내어 20세기 전반기에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후 미국에 이주한 뒤 이 나라에서 피아니스트라고 하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라흐마니노프를 뜻했을 정도였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앞선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성공을 발판 삼아 새로운 협주곡을 쓰게 됩니다. 이후로 많은 피아니스트들에게 궁극의 이상이 되는 음악이죠. 세 번째 피아노 협주곡은 데이비드 헬프갓이라는 피아니스트의 삶과 예술을 그린 영화 ‘샤인’을 통해 특히 유명해졌습니다. 호주의 피아니스트 헬프갓은 자신의 숙명의 작품으로 이 협주곡을 택했고, 완벽한 연주를 위해 밤낮으로 노력했습니다. 마침내 연주가 있던 날 지나친 몰입 끝에 그는 연주 중에 정신을 잃고, 그 뒤로는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요양원에서 지냅니다. 그만큼 초인적인 실력을 필요로 하는 음악이 이 협주곡입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을 선배인 요제프 호프만에게 헌정했지만, 그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 다는 이유로 연주는 하지 않았습니다. 라흐마니노프가 1909년에 막 완성된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들고 미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첫 연주는 월터 댐로시가 뉴욕 필하모닉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습니다. 몇 주 뒤에 열린 두 번째 연주에서 지휘자는 유명한 작곡가이기도 한 구스타프 말러였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말러와의 연주를 매우 소중한 것으로 오래도록 추억합니다. 이 여행으로 그는 미국에서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
 |
|
라이네케 플루트 협주곡 D장조, Op.283 |
|
카를 라이네케는 1824년에 태어나 1910년에 세상을 떠난 음악가입니다. 그는 독일 음악계에서 슈만과 브람스를 잇는 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지휘와 작곡, 교육 분야에서 두루 활동했는데요, 특히 플루트를 위한 곡으로 유명합니다.
플루트는 금속으로 되어 있지만 목관악기로 분류됩니다. 원래 나무로 되어 있던 것이 19세기 들어 개량되면서 금속으로 된 악기가 주를 이루지만, 20세기 후반에는 다시 플루트 본래의 음색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무 악기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라이네케는 이런 변화 가운데 있었던 작곡가입니다. 그는 밸브를 달아 어려운 테크닉을 소화할 수 있게 된 플루트를 위해 현란한 음악을 작곡합니다.
물의 요정 운디네를 소재로 한 그의 플루트 소나타가 대표적입니다. 오늘 들을 플루트 협주곡은 그의 말년인 1908년에 작곡되었습니다. 이미 후배인 브람스가 죽은 지 10년도 지난 때였고, 많은 젊은 작곡가들이 새로운 경향의 음악을 내놓고 있었지만, 라이네케는 차분하게 지난 세월을 돌아봅니다.
1악장은 브람스가 작곡했던 교향곡들을 떠올리게 하는 악상이고, 두 번째 느린 악장은 조금은 슬프고 불안한 느낌으로 시작합니다. 첼로 독주와 대화하는 플루트의 노래는 19세기 초의 오페라 작곡가 벨리니나 도니체티의 단조 아리아처럼 들립니다. 마지막 3악장에서 플루트는 화려한 드레스로 갈아입고 무도회를 준비합니다. 소나타 ‘운디네’에서 사람이 되지 못하고 슬프게 물거품으로 사라졌던 인어아가씨는 여기서 사랑을 찾고 새로운 인간의 삶을 시작하는 듯합니다.
|
 |
|
훔멜 바순 협주곡 F장조, WoO 23, S63 |
|
요한 네포무크 훔멜(1778~1837)은 고전주의 시대에 활동했던 작곡가입니다. 훔멜은 모차르트의 제자로 그의 아파트에 기숙하며 배웠습니다. 그것이 뒤에 베토벤에게는 무척 부러운 일이었습니다. 또 하이든의 후계자로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궁정악장으로 활동했습니다. 베토벤보다 여덟 살 어렸던 그는 당시 빈에서 베토벤과 피아노 실력을 겨룰 수 있는 유일한 작곡가였습니다. 베토벤이 1827년에 세상을 떠날 때 아내와 함께 그 곁을 지켰던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훔멜은 1805년 무렵에 목관악기 가운데 가장 낮은 소리를 내는 바순을 위해 협주곡을 썼습니다. 라이문트 그리스바허라는 빈 황실 악기 제작가를 위해 쓴 이 곡은 앞서 나온 모차르트의 바순 협주곡, 그리고 얼마 뒤에 나오는 카를 마리아 폰 베버의 협주곡과 더불어 바순을 위한 보석 같은 협주곡 가운데 하나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베버도 모차르트와는 처가 쪽으로 친척인 작곡가였으니, 모차르트 문하에서 이 악기를 위한 음악이 여럿 작곡된 것이죠.
빠르고 느리고 빠른 악장의 구성은 고전주의 협주곡의 전형이고, 베토벤을 연상케 하는 관현악의 반주도 박진감 있습니다. 오늘날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훔멜도 분명 모차르트와 베토벤 사이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졌던 작곡가임에 분명합니다.
|
 |
|
도니체티 오페라 <람메르모르의 루치아> 中 ‘내 조상의 무덤이여... 나는 죽음의 품에 안겨 있다’ |
|
도니체티는 슈베르트와 같은 해인 1797년에 태어난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입니다. 그는 후배인 빈첸초 벨리니와 함께 ‘벨칸토’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벨칸토의 뜻은 ‘아름다운 노래’인데요, 고도의 기교를 가진 성악가를 필요로 하는 음악입니다. 당대에 마리아 말리브란, 폴린 비아르도와 같은 뛰어난 벨칸토 성악가들이 벨리니와 도니체티, 로시니를 발판 삼아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특히 도니체티는 <사랑의 묘약>, <돈 파스콸레>, <연대의 딸>과 같은 코믹 오페라에서나 <람메르모르의 루치아>, <마리아 스투아르다>와 같은 비장한 곡에서 모두 빼어난 음악을 들려주었습니다.
오페라의 무대는 18세기 초 스코틀랜드입니다. 애슈턴 가문과 레이븐스우드 가문은 서로 반목하는 사이이나, 두 가문의 루치아와 에드가르도는 애틋한 연인입니다. 누이를 아르투로와 정략 결혼시키려던 루치아의 오빠 엔리코는 에드가르도에게 복수를 다짐합니다. 두 사람은 가문의 비극적인 반목에도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사랑하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그러나 결국 오라비의 강요와 속임수에 아르투로와 결혼하는 루치아. 뒤늦게 결혼을 저주하는 에드가르도를 보고 루치아도 자신이 희생되었음을 압니다. 엔리코와 에드가르도는 이튿날 피할 수 없는 결투를 하기로 합니다. 신혼 첫날밤 루치아는 남편을 죽이고 광란의 아리아를 부르다 숨을 거둡니다. 에드가르도는 결투를 기다리며 ‘내 조상의 무덤이여...나는 죽음의 품에 안겨있다’라는 슬픈 노래를 부르던 중 루치아가 죽었다는 얘길 듣고 자결로 뒤를 따릅니다.
|
 |
|
임긍수 강 건너 봄이 오듯 |
|
송길자 시인의 시에 중견 작곡가 임긍수가 붙인 ‘강 건너 봄이 오듯’은 KBS신작가곡으로 위촉되어 작곡된 뒤 소프라노 조수미가 불러 큰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근래 작곡된 한국 가곡 가운데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곡으로, 수수하고 소박한 시어를 중후한 관현악과 화려한 이탈리아풍의 선율에 실어 깊은 호소력을 갖습니다. 소프라노, 테너 할 것 없이 많은 성악가들이 즐겨 부르는 애창곡이 되었습니다.
|
 |
|
차이콥스키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 中 ‘어디로, 어디로 가버렸는가’ |
|
러시아는 이탈리아나 오스트리아 독일에 비해 한참 뒤인 19세기 후반에야 자신들의 음악을 일으켰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중심으로 활동한 ‘5인조’ 작곡가(발라키레프, 퀴, 보로딘, 무소륵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와 모스크바에서 활동한 표트르 차이콥스키(1844~1893)가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5인조가 민족적인 소재와 음악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알렸다면, 차이콥스키는 서유럽의 음악 양식을 받아들이는 데도 적극적이었습니다. 오페라<예브게니 오네긴>은 이런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던 시기인 1879년에 작곡되었습니다.
러시아의 문호 푸시킨의 소설에 붙인 <예브게니 오네긴>은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농밀한 드라마를 담고 있어 이탈리아의 선배 베르디의 중후한 오페라를 연상케 합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인공인 귀족 오네긴은 자유분방한 호남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시골 소녀 타티아나의 마음을 거절합니다. 절망한 타티아나는 이내 다른 귀족과 결혼합니다. 그 사이 오네긴은 오해로 말미암아 친구 렌스키와 결투를 하게 됩니다. 렌스키가 오네긴을 기다리며 나의 청춘은 어디로 갔는가 하며 부르는 노래가 ‘어디로, 어디로 가버렸는가’입니다. 결국 렌스키는 오네긴과 결투 끝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인생을 환멸하며 세상을 떠돌던 오네긴이 돌아왔을 때 타티아나는 성숙한 여인으로 거듭나 있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때는 늦었습니다.
결투를 앞둔 남자의 비장한 노래, 이탈리아의 도니체티와 러시아의 차이콥스키가 각각 어떻게 다르고 또 비슷하게 표현했는지 들어보면 재미있겠죠.
|
 |
|
슈포어 클라리넷 협주곡 제1번 c단조, Op.26 |
|
루이 슈포어(1784~1859)는 앞서 들은 훔멜과 비슷한 연배의 독일 음악가입니다. 훔멜이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다면 슈포어는 바이올린의 명인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베토벤이 1827년에 죽은 뒤에 슈만과 멘델스존, 리스트가 성인이 될 때까지 낭만주의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슈포어는 원래 이름은 루트비히였지만, 프랑스식의 ‘루이’로 바꿔 불렀습니다.
슈포어는 많은 곡을 썼지만, 오늘날 그를 작곡가로 기억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작품은 네 곡의 클라리넷 협주곡입니다. 두 번의 콘서트에서 플루트와 오보에, 바순에 이어 클라리넷까지 대부분의 목관악기를 다루었는데요, 프로코피예프라는 작곡가의 음악 동화 ‘피터와 늑대’를 보면 이 악기들의 특성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먼저 플루트는 명랑한 작은 새를 맡습니다. 오보에는 까불이 오리, 바순은 엄하지만 자상한 할아버지구요, 끝으로 클라리넷은 민첩하고 넉살좋은 고양이입니다.
훔멜이 바순 협주곡에서 모차르트, 베버와 영향을 주고받았듯이 슈포어의 클라리넷 협주곡도 두 작곡가의 음악과 경쟁합니다. 특히 슈포어의 협주곡은 베버와 마찬가지로 요한 지몬 헤름슈테트라는 당대 제일의 클라리넷 주자를 위해 작곡한 것인 만큼 탁월한 기교를 요구합니다.
더욱이 여기서 클라리넷이 맡는 현란한 노래는 도니체티나 로시니의 벨칸토 오페라에서 받은 영향을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빠르고 경쾌한 1악장과 3악장에서는 <세비야의 이발사> 가운데 피가로나 알마비바 백작의 재치와 기개를, 느리고 서정적인 2악장에서는 애타게 사랑을 기다리는 로지나나 루치아의 모습을 떠올려 봐도 좋겠죠.
|
 |
|
글 정준호 (음악칼럼니스트, KBS 클래식FM 'FM 실황음악' 진행자)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