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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밭에서

Posted May. 19, 2021 07:06   

Updated May. 19, 2021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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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네 살짜리 소녀가 학교에 간 첫날이었다. 선생님을 제외하면 누구도 소녀에게 말을 붙이지 않았다. 점심시간이었다. 소녀는 혼자서 도시락을 먹고 교실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난로 옆에 있는 물통의 물을 마시기 위해서였다. 국자로 물을 떠서 마시고 난 뒤에 일곱 살이 채 되지 않은 아이가 교실로 들어오더니 말했다. “나도 국자로 물 좀 떠줄래요?” 물을 떠주자 아이는 조심스럽게 받아 마시고 말했다. “고마워요.” 그 말 한마디에 소녀는 목이 메었다. 자신에게 말을 붙인 것은 그 아이가 처음이었다. 소녀는 울음을 참으려고 열심히 눈을 깜빡였다.

 소녀는 중국인 어머니와 백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였다. 3년 전 세상을 떠난 그녀의 어머니도 한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였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백인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반대에도 유색인 소녀가 학교에 나오자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으로 응수했다. 학교는 백인들만을 위한 것이어야 했다. “저 애가 우리말을 하네.” 영어라는 언어마저 자기들만의 것이어야 했다. 백인들은 인디언들에게서 강탈한 땅에 살면서도 늘 그렇게 주인 행세를 했다. 어른도 그랬고 아이도 그랬다.

 재미교포 작가 린다 수 박의 ‘초원의 연꽃’에 나오는 이야기다. 소설은 미국의 어느 소도시에서 소녀가 겪는 인종차별의 고통을 가슴 아프게 펼쳐 보인다. 작가는 소설에 묘사된 인종차별적인 사건을 거의 똑같이 겪었다. 한국인 이민자가 없던 19세기 말이 소설의 배경이지만 작가가 겪은 인종차별 경험이 곳곳에 투영되어 있는 이유다. 19세기를 훌쩍 넘어 20세기 중반이 되고 다시 21세기가 되었어도 미국은 여전히 인종차별의 나라였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상처를 돌아보며 거기에 허구를 가미했다.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생각의 자양분’이 되기를 바라면서 상처를 소설의 질료로 삼은 거다. 상처의 밭에서 창작의 꽃이 핀 거다.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