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지안 고구려비

Posted April. 16, 2013 05:51   

中文

고대 비석에 새겨진 글, 즉 비문()은 고대인들이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보내는 편지다. 비문을 해독한다는 것은 글은 있었으나 책으로 기록을 남기지 않은 시대의 사람들 얘기를 듣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이들과 통신하는 데는 버퍼링(buffering)도 발생한다. 비문은 긴 세월을 거치면서 자연 풍화되거나 탁본을 뜨는 과정에서 훼손돼 보이지 않거나 애매모호해진 글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날조의 여지가 생긴다.

고구려 장수왕이 414년에 세운 광개토왕릉비의 비문 중에 이라는 부분이 있다. 일본인들은 남연서()라는 위조 고서를 만들어 능비사본전문이라는 것을 끼워 넣고 를 으로 못 박았다. 그럴 경우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 백제를 치고 신라를 힘으로 굴복시켜 신민으로 삼았다는 뜻이 된다. 일본 학자들은 세 글자를 불명확하게 놔두는 지금도 역시 그런 식으로 해석해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삼는다.

우리나라 학자들은 도해()의 주어를 왜가 아니라 문장 밖의 고구려로 본 뒤 왜가 신묘년에 도래하자 (고구려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를 치고 신라를 구원해 신민으로 삼았다고 해석한다. 광개토왕릉비의 비문은 보기 드문 명문인데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왔다면 는 가 빠진 가 돼야 옳은 문장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광개토왕릉비가 있는 중국 지린() 성 지안() 현에서 또 다른 고구려비가 발견됐다. 중국 측 공식 연구서는 광개토왕이 세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고구려비라고 주장했다. 장수왕이 427년에 세웠음을 뜻하는 정묘()라는 글자를 판독했다는 내부 반박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중국 측 공식 연구서를 작성한 학자들은 그런 글자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안 고구려비가 중국 왕조와의 밀접한 영향 관계에서 나온 것임을 강조했다. 일본인들의 광개토왕릉비문 날조를 경험한 우리로서는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이 혹시 고구려비를 왜곡할지 모른다는 걱정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송 평 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