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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금 파라다이스

Posted April. 09, 2013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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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본 아이덴티티에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은 스위스 비밀계좌를 통해 자신의 흔적들을 찾아 나간다. 맷 데이먼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에서 볼거리 중 하나는 스위스 은행의 비밀 영업방식이다. 스위스 은행을 포함한 조세피난처들은 고객 비밀 보호와 탈세()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조세피난처 가운데 버진아일랜드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둔 국제탐사언론인협회가 이곳에 재산을 숨겨둔 유명 인사들의 명단을 빼내 폭로했기 때문이다.

필리핀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딸, 이고리 슈발로프 러시아 부총리의 아내,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의 전 부인, 마하티르 모하맛 전 말레이시아 총리의 아들이 명단에 올랐다. 버진아일랜드는 중남미 서인도제도의 섬나라. 한국인이 투자한 기업이 80여 개나 있는 데다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한 편법 상속이 적발된 사례도 있어 국세청도 명단 파악에 나섰다.

버진아일랜드는 콜럼버스가 1493년 발견한 섬이다.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웠으면 탐험대가 처녀 섬(Virgin Islands)이라고 불렀을까. 버진아일랜드는 영국령 30여 개, 미국령 40여 개 섬으로 이뤄져 있다. 이 중 버진 고다(뚱뚱한 처녀라는 뜻)라는 섬은 불룩하게 생겼다 하여 콜럼버스가 직접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조세피난처는 버진아일랜드 말고도 바하마 버뮤다 사모아 세인트루시아 등 수십 곳이 있다.

영국 신문 가디언은 조세피난처들에 숨겨진 재산을 32조 달러, 약 3경5968조 원으로 추산했다. 이런 곳들은 법인세 소득세 등이 없거나 아주 적어 부자들에겐 세금 파라다이스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산호섬으로 유명한 휴양지들이라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지하경제와의 전쟁을 선포한 후 부자들 사이에 화폐개혁이 가까웠다는 소문이 퍼지고 금괴도 잘 팔린다고 한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주장했던 새 정부의 한 공직 후보자도 해외에 재산을 숨겼다는 의혹으로 낙마했으니 앞으로 버진아일랜드 명단이 어떤 풍파를 일으킬지.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