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오피니언]트루먼쇼 북한

Posted January. 23, 2013 07:21   

中文

아주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는 30세의 보험회사 직원이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익사()를 목격하는 바람에 물을 극도로 무서워하는 것을 빼면 평온한 삶을 살고 있다. 결혼 생활도 남부럽지 않다. 그런데 난데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방송촬영용 조명등은 그의 순탄한 삶에 큰 파문을 던진다.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는 부랑아가 돼 나타나 뭔가를 말하려다 끌려가고, 불현듯 등장한 첫사랑 여인의 입을 통해 충격적인 진실을 듣는다. 넌 거대한 인공도시에 배치된 5000개의 카메라를 통해 전 세계 17억 시청자에게 30년간 생중계된 트루먼 쇼 주인공이야.

1998년 발표된 영화 트루먼 쇼는 누구나 진실이라고 믿는 현실 세계가 실제로는 모두 조작된 것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태어나면서부터 철저히 만들어진 삶을 살아온 주인공의 이름을 트루먼(true진실한+man사람)이라 지은 것은 기막힌 반어법()이다. 강남스타일로 세계적 스타가 된 싸이는 한 인터뷰에서 쉽게 말하면 영화 트루먼 쇼 같아요. 이거 지금 몰카(몰래카메라)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라고 말했다. 전 세계인이 자신의 말춤에 들썩거리는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영원히 깨어나고 싶지 않다는 솔직한 심정을 토로한 것이다.

미국 정부의 명시적 반대에도 북한을 방문(710일)했지만 빈손으로 돌아와 쓸모 있는 바보(useful idiot)란 비아냥거림을 들었던 에릭 슈밋 구글회장 부녀()의 방북기가 화제다. 딸 소피 슈밋은 자신의 블로그에 북한은 나라 전체가 거대한 트루먼 쇼 같았다고 썼다. 19세 소녀가 북한의 현실을 정확히 묘사한 것 같아 공감이 간다. 소피는 평양 체류기간에 북한 당국이 허가하지 않은 어떤 사람과도 대화할 수 없었다며 내가 보고 들은 것을 곰곰 생각해 볼수록 그것이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점점 더 확신을 잃었다고 말했다. 북한을 처음 찾은 소피에게도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것이 조작된 현실이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였나 보다.

북한이 자랑하는 김일성대학의 전자도서관도 소피가 보기엔 포툠킨 빌리지였다. 새로 병합한 크림 반도 시찰에 나선 러시아 예카테리나 여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리고리 포툠킨이라는 주지사가 여제의 배가 지나는 강둑에 종이로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 눈가림을 했다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소피는 모든 컴퓨터에 사람이 앉아 있지만 모니터를 바라볼 뿐 방송 카메라가 비춰도, 시끄럽게 소리쳐도 미동도 없다고 적었다. 혹시 이 사람들도 마네킹이 아니었을까라는 소피의 농담은 깜찍하면서도 정곡을 찌른다. 작정하고 북한 체제를 비난한 소피는 평양을 다시 방문할 뜻이 없는 모양이다.

하 태 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