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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75세 신인이 받은 아쿠타가와 상

[오피니언] 75세 신인이 받은 아쿠타가와 상

Posted January. 18, 2013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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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배경은 전국시대의 일본. 한 사무라이가 단도에 찔려 숨지는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수사에 나선 관청은 피살자의 아내와 그녀를 겁탈한 산적, 현장을 목격한 나무꾼을 불러다 조사하지만 진술이 서로 엇갈린다. 정당한 결투 끝에 사무라이가 죽은 것이라고 말하는 산적, 순결을 잃은 자신을 멸시하는 남편의 눈빛에 놀라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니 이미 죽어 있었다는 아내, 실수로 사무라이가 자신의 칼에 찔렸다고 증언하는 나무꾼. 여기에 아내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자결했다는 사무라이 원혼의 목소리를 전하는 무당이 등장하면서 사건은 더 미궁에 빠진다. 진실이란 말하는 사람의 처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인간의 이기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세계적인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19101998)의 영화 라쇼몽의 줄거리다.

1951년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이 작품을 통해 일본 영화의 존재는 서구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라쇼몽의 원작소설을 쓴 사람은 35세 나이로 요절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18921927). 일본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그는 일찍부터 수재 소리를 들었고 도쿄대 영문과 재학 시절에 첫 소설을 발표했다. 막연한 불안을 이유로 자살하기 전까지 10년 동안 150편의 작품을 남겼다. 고전과 옛날이야기를 세련된 심리 드라마로 풀어낸 그의 소설은 일본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주목받았다. 그를 기리기 위한 아쿠타가와 상은 1935년 제정됐다.

이 상은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신인()문학상으로 꼽힌다. 해마다 1월과 7월 두 번에 걸쳐 수상자를 발표한다. 수상자 중에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오에 겐자부로와 국내에도 잘 알려진 무라카미 류 등 일본 문학을 빛낸 작가가 수두룩하다. 재일동포로는 이회성(1972년), 고 이양지(1989년), 유미리(1997년)에 이어 2000년 현월 씨가 이 상을 받았다. 수상자 명단을 보면 극우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의 이름도 들어 있다. 일본 극우단체에서 정치인의 우익적 성격을 평가한 결과에서 1위를 차지한 그는 태양의 계절이란 소설로 1956년 이 상을 받았다.

그제 148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자로 75세의 구로다 나쓰코 씨가 선정됐다. 역대 최고령 수상자란 점에서 화제다. 수상작 ab산고는 실험성이 강한 작품으로 심사위원들은 작가의 나이와 상관없이 매우 신선하고 훌륭하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그는 와세다대를 졸업한 뒤 국어 교사와 사무원 등을 하면서 글쓰기를 했으나 본격적으로 소설에 도전한 것은 은퇴 이후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인생 2막에 새롭게 도전한 나쓰코 씨 같은 노년의 신예 작가들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고 미 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