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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재협상’ 트럼프의 국내용 발언인가, 기선 제압용인가

‘FTA 재협상’ 트럼프의 국내용 발언인가, 기선 제압용인가

Posted July. 03, 2017 07:55   

Updated July. 03, 2017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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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과 미국이 한미 정상회담 공동선언문 발표 이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여부를 놓고 각각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청와대는 두 정상이 재협상에 대해 합의한 바가 없다고 반박했지만, 백악관은 재협상 시작을 위한 절차에 돌입할 뜻을 내비쳤다.

 결과적으로 공동선언문에 한미 FTA 재협상이라는 문구가 포함되지 않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격적 발언이 이어지면서 한미 FTA 재협상은 사실상 불가피해졌다. 한미 양국이 엇갈린 입장을 내놓는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FTA 재협상 터널’의 입구 앞에서 기싸움을 시작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당초 우려했던 안보 문제보다 오히려 통상 문제에서 양국 갈등이 불거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재협상’은 미국 국내용 발언

 2일 통상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진의를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양국 공동선언문에 포함되지 않은 FTA ‘재협상(renegotiation)’을 모두발언과 이후 백악관에서 열린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거론한 배경 파악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30일(현지 시간) 발표된 한미 양국의 공동선언문에는 ‘양국 간 교역 불균형 해소 노력’만 들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자동차가 한국에서도 팔려야 하며, 중국의 철강 덤핑 수출을 허용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자동차와 철강을 불공정 무역의 대표 업종으로 거론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동차와 철강을 콕 집어 불공정무역의 대표 업종으로 거론한 건 우선 ‘러스트 벨트(낙후된 공업지대)’로 대표되는 미국 내 트럼프 지지기반을 달래기 위한 메시지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미국이 한국에 요구했던 건 쇠고기로 대표되는 농축산물과 지식재산권 등 서비스 분야다. 사실상 시장 개방이 완료된 공산품을 거론한 건 철저히 국내용 발언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 등을 활용해 한국과 무역과 관련한 메시지를 쏟아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이 끝난 뒤에는 “여러분도 모두 알다시피 이 무역협정(한미 FTA)은 만기가 다가온다. 사실 2주 전에 만기가 도래했다”고 말했다. 만기가 없는 한미 FTA협정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거짓된 정보까지 동원하는 건 전형적인 기선 제압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 재협상 요구 피할 수 없어

 공동선언문에 FTA 재협상이 직접 언급되지 않은 만큼 ‘재협상에 합의한 바 없다’는 한국 정부의 설명은 틀리지 않다. 하지만 청와대는 정상회담에서 FTA가 의제로 올랐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미국이 한미 FTA 관련 입장을 정리하는 대로 한미 FTA 재협상 요구 압박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2012년 맺어진 한미 FTA 협정문 제16.7조(협의)는 “양 당사국 간의 이해 증진을 위해 각 당사국은 다른 쪽 당사국이 제시한 사항에 관해 협의를 개시한다. 협의 요청을 받은 당사국은 우려사항에 대해 충분하고 호의적인 고려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재협상을 위해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미국 의회에 재협상 관련 서한을 전달하고, 이를 의회가 받아들이는 과정이 시작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이 과정을 모두 끝내 개정 또는 재협상을 요구하면 한국은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협정문 제24.2조(개정)에 “양 당사국은 이 협정의 개정에 서면으로 합의할 수 있다”고 언급된 것이 전부라 재협상 절차 규정이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있다.

○ ‘개성공단’ ‘서비스수지’ 등 재협상 전략 마련해야

 통상 전문가들은 한미 FTA 재협상을 미국이 공식 절차를 거쳐 요구한 것은 아니지만, 의지를 드러낸 만큼 늦어도 내년 초에는 재협상 압박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전 통상교섭실장)는 “현재 미국의 첫 번째 관심사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TFA)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따라 한미 FTA를 향한 압박 시기와 전략도 바뀔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협상 요구를 피하기 어려운 만큼 한국도 미국에 재협상 카드를 요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개성공단 생산 상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하지 않는 조항, 한미 FTA를 체결한 2012년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독소 조항으로 꼽은 투자자 국가 간 소송(ISD) 완화 등이 거론된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농축수산 및 의약품의 한국 적자가 심각해지는 점을 지적할 수 있으며, 갈수록 악화되는 서비스 수지의 균형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건혁 gun@donga.com · 천호성 thous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