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내전’에 빠진 美, ‘트럼프 장벽’ 두른다고 안전해질까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긴급성명을 내고 “시민들이 모여 조직을 이루고 목소리를 내는 헌법적 권리를 행사한 것은 미국의 가치가 위태로워졌음을 보여준다”고 경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이라크 등 ‘급진 이슬람’ 테러 위험국가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을 90일간 금지하는 반(反)이민 행정명령 조치를 내린 데 대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적인 반대 움직임에 동참한 것이다. 퇴임한 미국 대통령이, 그것도 퇴임 한달도 되지 않아 신임 대통령의 정책에 반기를 든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미국은 지금 행정명령에 대한 찬성과 반대세력이 둘로 갈려 ‘정치적 내전’ 상태다. 권부 핵심인 백악관과 국무부부터 찬반으로 갈려 정면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민자들이 많은 실리콘밸리 거대 정보통신(IT)기업들은 물론 트럼프 행정부에 요직 인사를 배출한 골드만 삭스를 포함한 월가 금융회사들까지 일제히 반대목소리를 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 발동을 사전예고 했다면 나쁜 놈들이 벌서 미국으로 몰려들었을 것”이라며 눈도 깜짝 하지 않고 반대의사를 표명한 법무장관대행을 전격 경질해버렸다.

　　‘미국 우선주의’를 위해 보호주의로 무역 장벽을 세우기 시작한 트럼프는 멕시코 국경에 ‘물리적 장벽’을 쌓은 데 이어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제도적 장벽’까지 세웠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유럽이 쌓아올린 자유세계의 기본질서를 하루아침에 허물고 있음에도 일단은 ‘세계 대통령’의 힘에 눌려 끌려가고 있는 형국이다. 퀴니피악 여론조사 결과 미국인의 48%의 지지(반대는 42%)를 받는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사실이 더욱 충격적이다.

　제국의 힘은 관용에서 나온다. 로마 제국이 쇠락하기 시작한 것은 로마 시민의 안전을 위해 식민지에 대한 관용을 잃으면서였다고 사가(史家)들을 분석했다. 이중 삼중의 장벽을 두른다고 미국이 안전해진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철저한 반(反)이슬람주의가 또 다른 테러를 부르지 않을까 걱정이다.

　외국인에 빗장을 걸어 잠그고 비밀감옥과 고문을 부활시키는 트럼프의 행보는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한 1930년대를 연상케 한다. ‘선출된 권력’ 히틀러의 폐쇄적 자국 우선주의가 결국 2차대전을 불렀다. 행정명령 서명일이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추모일’이었다. 한국사회도 동지,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으로 가르는 또 다른 트럼피즘(Trumpism)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