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피 한방울로 대장암 정확히 진단.. 한국 기술로 개발

피 한방울로 대장암 정확히 진단.. 한국 기술로 개발

Posted May. 25, 2016 07:37   

Updated May. 25, 2016 07:46

中文

 퇴근 후 삼겹살에 소주 한잔 마시는 것이 삶의 낙인 한모 씨(58)는 요즘 ‘대장암 공포’를 겪고 있다. 지난해 말 아버지가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손쓸 새도 없이 유명(幽明)을 달리 했다. 그는 암 가족력(歷)과 매끼 고기를 먹는 식습관 때문에 스스로 ‘나도 대장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항문 내시경검사를 받기가 두려워 검진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한 씨와 같은 사람들에게 희소식이 있다.

 국내 바이오기업 에이티젠의 홍기종 박사(50)팀이 개발한 대장암 진단키트가 24일(현지 시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미국소화기질환학회에서 ‘올해 주목할 만한 6가지 의학적 발견’ 중 하나로 선정됐다. 주목할 만한 6가지 의학적 발견은 미국의 소화기암 관련 4개 학회가 심사와 토론을 거쳐 선정했다.

 홍 박사팀이 개발한 진단키트는 검사받는 사람의 혈액 한 방울(1mL)로 대장암을 진단한다. 과거 개발된 진단키트는 혈액의 암 유전자(DNA)를 찾아내 발병 위험도를 추정하는 방식이어서 이미 암에 걸린 사람이라도 암을 일으키는 돌연변이 유전자가 없다면 찾아내기 어려웠다.

 홍 박사 등 한국의 과학자들이 개발한 이 진단키트는 대장암과 싸우는 혈액 내 면역세포(NK세포)의 양을 측정하기 때문에 수검자의 유전적, 생물학적 상태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실제 이들은 진단키트의 검사 정확도를 알아보기 위해 캐나다 몬트리올 HMR 병원 연구팀과 함께 일반인 762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진단키트를 활용해 대장암 환자 18명을 발견했다. 762명 중 실제 대장 내시경,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 등으로 대장암 확진을 받은 환자는 21명으로, 87.5%의 정확도를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국가 암 검진 사업의 하나로 50세 이상 성인에게 대장암 1차 선별검사인 ‘분변잠혈(糞便潛血) 검사’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분변잠혈 검사는 조기 대장암 환자를 제대로 가려내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진행된 대장암은 커질 대로 커진 종양이 대장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출혈이 일어나는데 조기 대장암이라면 출혈을 일으킬 정도로 종양이 크지 않아 분변잠혈 검사에서 발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암 전문가는 이에 따라 대장 내시경검사를 권하고 있다. 윤용식 서울아산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의료계에서는 정확도가 30% 안팎에 그치는 분변잠혈 검사 대신 대장 내시경검사를 권하고 있지만 두려움 때문에 위 내시경에 비해 검진율이 상당히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미국소화기질환학회 측은 “홍 박사팀의 진단키트가 80%가 넘는 정확도를 보인 것을 높이 평가해 올해 주목할 만한 의학적 발견으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오진율이 높은 기존 분변잠혈 검사와 부담스러운 대장 내시경검사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홍 박사는 “진단키트를 활용하면 반드시 대장 내시경검사를 받아야 하는 사람을 골라낼 수 있다”며 “팀이 개발한 진단키트가 한국인의 대장암 생존율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