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새롭게 부는 황실열풍

Posted July. 12, 2006 03:01   

中文

10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박물관 2층 특별전시실. 한 관람객이 대형 사진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사진 속에는 또렷하지만 슬픈 눈망울을 한 덕혜옹주가 일본 전통 의상인 기모노 차림으로 서 있었다. 이는 덕혜옹주가 13세 때인 1925년 일본으로 강제 유학을 떠나기 직전에 찍은 사진.

다음 달 19일까지 서울대박물관에서 열리는 마지막 황실, 잊혀진 대한제국 사진전이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곳엔 110여 점의 대한제국 황실 관련 사진이 전시돼 있다.

전시장을 찾은 김민지(23여) 씨는 덕혜옹주의 어린 시절 모습과 일본식으로 치러진 고종황제의 장례식 사진이 인상 깊었다며 몰락한 황실의 아픔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전시를 기획한 선일(39) 학예연구원은 다른 전시보다 관람객이 많고 연령대도 다양하다며 특히 중장년층에 인기라고 전했다.

최근 각 포털 사이트에선 얼짱 왕자라는 제목의 흑백사진이 화제다. 사진의 주인공은 고종황제의 아들인 의왕(의친왕18771955)의 둘째 아들 이우 공.

사진 아래에는 일본에서도 조선말을 쓰고 황성옛터를 불렀던 호걸로 일본인과 결혼시키려는 일제의 압력을 거부하고 박영효의 손녀 박찬주와 결혼했다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누리꾼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원빈을 닮았다, 기개가 황손답다 등 외모와 인품을 칭송하는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이우 공은 1945년 원자폭탄 투하 당시 나가사키에서 피폭돼 33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황실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커지는 현상에서 주목할 것은 젊은층의 참여가 두드러진다는 것. 한국을 입헌군주제 국가로 가정한 MBC 드라마 궁이 큰 인기를 모았던 데다 일제강점으로 인해 지워진 역사에 대한 호기심과 향수 때문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풀이하고 있다.

드라마의 원작인 만화 궁을 쓴 박소희 작가의 팬카페 회원은 무려 9만3000명에 이른다. 상징적 황실을 복원하자고 주장하는 다음 카페 대한황실재건회와 우리황실사랑회의 회원은 4500명이 넘는다.

대한황실재건회의 운영자인 이종엽(32) 씨는 잘못 알려진 황실 역사를 바로잡고자 2001년 카페를 만들었다며 오프라인에서도 역사 세미나를 열거나 궁궐 답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작가도 이 카페 출신.

황실 신드롬 속에서 의왕의 손녀인 이홍(31) 씨가 최근 탤런트로 데뷔하기도 했다. 부친은 노래 비둘기 집으로 유명한 이석(65) 씨. 이홍 씨의 본적은 서울 종로구 세종로 1번지로 바로 경복궁이다.

이홍 씨처럼 대중 앞에 자신을 드러낸 황실 자손도 있지만 대부분은 국외에 거주하거나 국내에서 은인자중하고 있다.

의왕의 손자로 국립고궁박물관 연구자문위원인 이혜원(51) 씨는 조부는 슬하에 13남 9녀를 두셨지만 대부분 일제에 의해 일본에서 살다가 돌아가셨다며 그분들의 삶은 암울한 근현대사의 한 단면이라고 말했다.

문화평론가 서정신(40여) 씨는 황실에 대한 높은 관심은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이라는 가정법적 사고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며 영국과 일본 등 외국 황실문화에 대한 긍정적 관심이 한국 황실로 옮겨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설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