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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수엄마요? 다 그렇게 살지 않나요

Posted June. 09, 2006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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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의 수작 가족의 탄생 관객들은 연기의 달인들을 만나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낀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전 남편의 아이를 키우는 고두심(무신), 자기보다 한참이나 연상인 오갈 데 없는 올케를 거두는 문소리(미라), 엄마의 사랑은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사랑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운 공효진(선경) 등 여주인공들의 공통점은 정에 헤프다는 것. 그리고 이 헤픈 여자들의 정점에 배우 김혜옥(49)이 있다.

대중에게 이름보다 이미지로 더 친근한 연기자들이 있는데 그도 그 중 한사람이다. 이름은 잘 몰라도 얼굴만 보면 아 그 사람하고 아는 체하는 사람이 많다. 그동안 브라운관에서 숱한 조연으로 활동해 온 그는 영부인부터 스토커에 이르기까지 안 해 본 연기가 없을 정도고, 요즘엔 늦은 전성기를 구가 중이다.

30%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된 KBS 1TV 별난 여자 별난 남자에서는 푼수 엄마였고 얼마 전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Dr.깽에서는 아들 달고(양동근)의 말이라면 콩을 팥이라 해도 믿는 천진무구한 엄마였고, 지금 방송 중인 MBC 주말드라마 진짜 진짜 좋아해에서는 검정고시 학력의 서민적인 대통령 영부인으로 출연 중이다. 출연 요청이 끊이지 않아 Dr.깽 종영으로 겨우 한숨을 돌렸는데 7월 방송될 MBC 수목드라마 오버 더 레인보우(가제)로 다시 바빠지게 됐다.

김 씨가 주로 연기하는 엄마는 흔히 생각하는 자식한테 무조건 퍼주는 한국형 모성이 아니다. 자식의 삶보다는 자기 생에 더 충실하고 자식보다 현실감각이 없는 몽상가이며 어디 한구석이 모자라 보이는 푼수 엄마다.

영화 가족의 탄생에서는 아들 둘을 둔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아들까지 낳아 기르면서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딸 앞에서 떳떳하다. 게다가 불치병으로 투병 중이라 언제 죽을지 모르는 딸은 엄마를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지만 너도 나이 들면 알 거다라는 무심하면서도 깊이 있는 시선으로 딸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압권이다.

엄마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대드는 (공)효진이와 싸우는 장면을 찍고 나서 얼마나 펑펑 울었는지 몰라요. 정작 화면에서는 눈물을 참고 목소리도 억제하느라 힘들었는데.

수수한 옷차림에 화장기 없는 그는 얼핏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생활인의 모습이지만, 막상 연기에 몰입하면, 자기 안의 또 다른 김혜옥을 끄집어내는 천의 연기자라는 평을 듣는다. 연극무대에서 다져온 20여 년이 훌쩍 넘는 연기 내공 덕이다.

연극을 하면서 참 좋은 선배들에게 연기 지도를 받았어요. 내가 남에게 어떻게 비칠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 그 자체에만 몰두하는 훈련을 받은 셈이지요. 어쩌면 남들은 이미지 관리다 뭐다 해서 맡기 꺼리는 역할들이 많았지만 저는 그런 건 상관없었어요. 모두 세상 사는 모습들이니까요.

실제로 그의 얼굴에는 표정이 많다. 슬픈 듯하면서도 코믹하고 꽉 차 있는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 있는 허무까지 배어있다. 김 씨는 수줍고 순진했던 철부지가 세상 밖으로 나와 간단치 않았던 삶의 통로를 거쳐 오면서 겪은 경험들이 아마 연기에 녹아 있을 것이라며 나는 연기를 통해 나를 짓누르는 이성의 억압을 풀어헤친다. 합법적으로(?) 마음대로 울고 웃고 사랑하는 연기자는 정말 좋은 직업이라고 말했다.



허문명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