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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더이상 문혁은 없다

Posted May. 13, 2006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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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검색어는 관련 법규를 위반할 수 있습니다. 중국인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검색엔진 바이두()에 (문화대혁명)을 쳐 넣으면 이런 경고 문구가 뜬다. 문화대혁명 자체를 알지 못하도록 글자까지 봉쇄한 것이다. 검색만으로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니 무시무시하기까지 하다.

중국 정부, 문화대혁명 글자까지 봉쇄

중국 전역을 뒤흔든 문화대혁명의 40주년(16일)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지만 중국 정부는 쥐죽은 듯 고요하다. 정부의 공식행사는 물론 흔한 사회단체의 행사 하나도 없다. 신화()통신 등 중국의 언론매체는 12일까지 문혁에 관한 기사는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고 있다.

문혁에 관한 서적 출간이나 영화, 드라마 제작도 모두 금기사항이다. 베이징()의 사진작가인 위쥐싱()은 지난달 문혁 사진전을 열려다 포기했다. 당국의 봉쇄 조치 때문이었다.

서방의 한 외교 분석가는 이 같은 중국 정부의 전방위 단속에 대해 아직 문혁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데다 자칫 잘못하면 마오쩌둥()에 대한 재평가로 이어져 국론분열을 일으킬 수 있는 등 위험요소가 적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서민들, 그때가 더 살기 편했던 시절

베이징()에서 택시를 모는 쑹쯔밍(50) 씨는 10일 문혁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어느 때가 더 좋으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때가 더 살기 편했다고 잘라 말했다.

당시엔 국가가 주는 12위안으로 모든 게 해결됐는데 지금은 한 달에 2500위안씩 벌어도 항상 쪼들린다는 것이다. 게다가 언제 직장에서 쫓겨날지 몰라 항상 불안하다.

갈수록 커지는 빈부격차와 천정부지()의 주택 가격을 보면서 서민들은 소박했지만 의식주 걱정은 없던 당시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듯했다. 문혁에 대한 향수는 아직도 식을 줄 모르는 마오의 인기에서도 찾을 수 있다.

평가는 아직도 평행선

지난해 10월 사망한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 바진()은 1986년 6월 문혁 박물관 설립을 주장하면서 자신의 추악함을 직시할 수 없는 민족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영화 패왕별희()를 제작한 첸카이거() 감독은 내 인생의 중요한 경험들을 문혁 시절에 얻었다고 말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비롯한 제4세대 지도부는 이전의 2, 3세대 지도자보다 마오 쪽으로 기운 듯하다.

문혁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 사상의 궤도에서 이탈한 것으로 마오 사상과는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1981년 6월 11기 제4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문혁은 당과 국가, 인민에게 건국 이래 가장 심각한 좌절과 손실을 안겨 준 마오의 극좌적 오류라고 정리했다.

중국 사회과학원의 한 교수는 문혁은 이제 외면이나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종대 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