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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근씨가 말하는 북에서의 30년

Posted January. 09, 2006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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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올리기도 싫은 북한에서의 비참한 삶을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겠습니까.

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신천동 납북자가족모임 사무실. 고소장의 수신자란에 적힌 북한 조선노동당이란 글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이재근 씨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저인망 어선 봉산22호의 선원이었던 이 씨는 1970년 4월 29일 서해 연평도 근해에서 조업 중 동료 26명과 함께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됐다. 당시 납북된 동료 가운데 19명은 7개월 만인 11월 29일 어선과 함께 송환됐으나 이 씨 등 8명은 북한에 강제 억류됐다.

그는 북한에서 대남적화통일을 위한 간첩 양성기관인 중앙당 정치학교에 입교해 2년 6개월간 남파간첩 특수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사상 불량으로 대남공작부서에 배치되지 못한 이 씨는 25년간 함경남도 함주군 선박전동기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이 씨의 북한에서의 삶은 지옥 그 자체였다. 단 하루도 북한 당국의 감시와 억압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는 식량난을 견디다 못해 북한에서 결혼한 아내와 아들 등 일가족 3명과 함께 1998년 8월 북한을 탈출했다.

이 씨는 북한에서 간첩교육을 받으며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다음 날 오전 2시까지 한순간도 쉬지 못했다며 특히 수영훈련 때는 나를 강제로 물속에 밀어 넣고 24시간 이상 방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북송된 비전향 장기수들이 피해 보상을 요구했다는데 그들은 남한 정부의 인도적인 조치에 의해 편안하게 고향에 돌아갈 수 있었지만 납북자들은 지금도 고향에 돌아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다며 그들과 우리를 비교할 수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병기 윤완준 weappon@donga.com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