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가사시간, 남편 월급 아닌 ‘아내 임금’이 좌우했다

황수영 기자ghkdtndud119@donga.com2025-11-24 13:29:38

맞벌이 가구일수록 충분한 소득이 확보되면 남편의 가사·육아 참여가 늘고 출산 여력도 커진다는 한국은행 분석이 나왔다. ChatGPT 제작
여성 임금 상승→노동참여 증가→출산 감소라는 전통적 관계 대신, 여성 소득이 높을수록 남편의 가사·육아 투입이 늘고, 맞벌이 가구의 출산 여력도 함께 커지는 새로운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저출산의 핵심 변수가 단순 ‘여성 노동 증가’가 아니라 ‘남녀 임금격차·시간 제약’이라는 제도적 요인이라는 점에서 정책적 시사점이 크다.
최연교 한국은행 통화정책국 관리총괄담당(팀장급)은 20일 ‘한은 소식’ 기고문을 통해 국가데이터처(통계청)의 2019년 생활시간조사 미시자료를 분석한 결과, 여성의 임금·근무시간이 높아질수록 남편의 가사·육아 시간이 증가하는 패턴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는 “여성 임금이 오르면 출산율이 떨어진다”는 통념과 다른 흐름이다.
분석 대상은 무자녀 가구 또는 20세 미만 자녀가 있는 맞벌이 1000여 가구다. 자녀 수가 많고 자녀 연령이 낮을수록 가사·육아 시간은 자연스럽게 증가했다. 반대로 직장에서의 근무시간이 길수록 가사노동 시간은 감소해, 시간 자원이 가사·육아의 절대 조건임이 드러났다.
또 배우자의 근무시간이 길어지거나 임금이 높을수록 본인의 가사노동 시간이 늘어나는 경향이 나타났다. 즉, 부부가 서로의 노동량과 소득 구조에 따라 ‘협상적 가사 분담 조정’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다만 최 팀장은 “부부의 성향, 체력, 협상력 등 가사 분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을 변수로 포함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 남편의 가사시간, ‘본인 소득’ 아닌 ‘아내 임금·근무시간’이 결정
남편은 자신의 임금·근무시간이 가사노동 시간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보이지 않았다.
반면 아내 임금이 높아질수록 남편의 가사시간이 늘고, 남편이 일찍 귀가할수록 아내의 가사노동 시간은 줄어드는 구조가 관측됐다.
즉, 남편의 가사·육아 참여는 아내의 임금과 노동시간이라는 외생 변수에 의해 좌우되는 성향을 보인 것이다.
● 임금격차 줄어들면 남편 참여↑…출산율도 함께 오른다

OECD 국가 중 한국이 남녀 임금격차 1위(왼쪽), 남편의 가사·육아 분담 비중이 높을수록 출산율이 높아지는 상관관계 그래프(오른쪽). 한국은행 기고문 일부 발췌
이 같은 분석을 바탕으로 최 팀장은 남녀 임금격차가 줄어들면 남편의 가사·육아 참여가 더 활발해지고, 이는 자연스럽게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우리나라는 출산율뿐 아니라 남녀 임금격차도 OECD 회원국 중 가장 크다”며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약 70% 수준으로, 선진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격차”라고 지적했다.
● ‘여성 임금↑ 노동참여↑ 출산율↑’이 가능한 이유는?
최 팀장은 최근 고소득 국가일수록, 여성의 노동참여율이 높을수록 출산율도 함께 높아지는 현상에 주목했다.
과거에는 ‘여성 임금 상승 → 노동 공급 증가 → 출산 감소’라는 공식이 뚜렷했지만, 최근에는 이런 관계가 약해졌다는 것이다.
그 배경으로는 충분한 소득이 확보되면 가사노동을 시장에서 구매할 수 있고, 일·육아 병행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즉, 시간 제약을 줄이는 사회적 환경이 갖춰지면 여성 임금 상승이 출산 감소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 “여성 임금 격차 축소 + 남성 칼퇴근 문화가 출산율의 열쇠”
최 팀장은 “취미, 자기계발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일수록 ‘시간 제약’이 출산 선호의 점점 더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며 “앞으로 우리나라도 여성 임금격차 축소와 남성의 칼퇴근 문화 확산이 출산율을 높이는 핵심 열쇠”라고 결론지었다.
황수영 기자 ghkdtndud119@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