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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小考

조 헌 용(72년 전남 과역 출생, 98년 서울에전 문예창작과 졸업 예정)


배무덤


간척사업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판장(共販場-마을 사람들은 공판장을 부를 때 늘 판장이 라고 했다.)보다는 어촌계 사무실에 더 많이, 자주 모여들었다. 배 들어올 시간이면 만선을 기다리는 아낙이나 조무래기들로 그득하고, 또 배들이 묶여 있는 시간에는 조개를 까는 손들 로 언제나 부산스럽던 판장의 모습은 이제는 여간해서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겨울 양지쪽 에 모여 있던 노인들만 철새처럼 그늘을 찾아 판장으로 자리를 옮겨, 멍석 위에 묵새기고 앉 아 몇은 막걸리 내기 윷판을 벌이거나 몇은 또 그렇게 장기를 두고 있을 뿐이다.

판장을 끼고 이제는 몇 척 남지 않은 배들이 묶여 있다. 해화호 기관방에서 장씨가 얼굴을 남실 빼 들고 노인들을 바라보다가 어촌계 사무실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곳에는 또 사람 들이 우세두세 공고문을 바라보며 모여 있었다. 양복을 입은 무리들은 보상이 나오면서 모여 든 은행이나 보험회사, 증권사 직원들인 듯 싶었다. 장씨는 아랫입술을 감물고 혀를 끌끌 차 더니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감추며 고개를 다시 기관방 안으로 집어넣었다. 옷소매에 묻어 있 던 기름때가 달라붙어 얼굴은 이제 막 어미의 자궁에서 나오는 흑염소처럼 물기 띤 검은 색 으로 얼룩져 있다.

한 손에는 쟁개비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막걸리와 양은 밥그릇을 든, 동철이 판장에 나타 난 것은 그 즈음이었다. 동철은 노인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해화호로 훌쩍 뛰어올라 몸은 밖 으로 둔 채 고개만 기관방 안에 쑥 집어넣었다.

"성님, 지 왔서라. 혜성이는 어디 가고 나잇살 자신 우리 성님이 이 고생이다요잉. 이리 올 라와 막걸리나 한 잔 허십시다."

"동철이 왔는가, 저기 부르찌(船室) 뒤에 가믄 아침에 먹다 남은 막걸리가 반 되나 될 것이 네, 그거이나 한 잔 하고 있으소. 나 이놈만 풀고 갈텐께잉."

"아따, 성님. 낼모레면 갖다 줄 놈의 배는 손 봐서 뭐해 쓴다고 그라요. 내, 저그 칠성호 집 서 복쟁이 얻어 왔응께요 후딱 올라오소잉. 그놈 맛이 삼삼헌 것이 좋습디다."

그제야 장씨는 장갑을 벗어 툭툭 털며, 몸을 기역자로 꺾어 시부저기 좁은 기관방을 빠져 나왔다.

선실 뒤에는 동철이 들고 온 복어와 막걸리, 장씨가 새로 내어놓은 김치로 작은 술상이 마 련됐다.

어류보다는 패류가 주된 수입원인 마을이지만, 좋은 시절에는 담배 인심보다 한결 좋은 것 이 이 마을 고기 인심이었다. 생합이나 피조개 등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비싼 광어나 우럭이 어쩌다 잡힌다 해도 내다 파는 일 한번 없이 두리기 상을 차려 놓고 사람들에게 두루두루 나누어 먹였다. 이 마을 사람이 아니라도 지나가는 이가 있으면 세워 놓고 술잔을 권하던 오 붓한 마을이었고 또 그만그만한 마을 인심이었다. 이렇게 오랜만에 땀을 뻘뻘 흘리며 복을 먹는 것도 91년도 겨울로 들어가던 즈음 시작된 새만금 간척사업 뒤부터가 아닌가 싶다.

마을을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이듬해부터였다. 적지 않은 피해 보상 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았고, 어디서 무얼해서 먹고살았는지 소식도 없던 사람들이 떠날 때처 럼 조용히 얼굴을 나타내곤 했다. 처음 보는 얼굴들도 있었고, 어느 얌통머리 없는 사람들은 사돈에 팔촌까지 전입신고를 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카아, 좋다. 그나저나 성님, 오늘이 벌써 다섯 만디(마=달의 引力에 따라 바닷물의 깊이가 달라지는 정도를 가리키는 '물'의 사투리) 배는 언제 갖다 줄라고 이리 태평이단가요잉."

동철이가 마지막 잔을 새끼손가락으로 휘휘 돌려 마신 뒤, 손으로 김치를 찢어 입안으로 우겨 넣으며 물었다.

"으흠, 으흠...... 쿨룩, 쿨룩, 으흠. 으흠....... 여덟 마까지는 섬에 넣을 수 있다고 하니께, 모 레 일곱 마때쯤에 갈라네, 자네는 언제나 갈랑가?"

담배 연기를 들이 마시던 장씨가 사래라도 걸린 듯 밭은기침을 참아 내느라 한참 동안 숨 을 고른 뒤 말을 받았다.

"지도 그때 가지라 뭐. 근디, 성님. 낼모레 가져다 줄 배는 무엇 한다고 저리 손을 본다 요?"

"손보는 것이 아니고 요 몇 달 앞에 우리 기계가 작살나서 요참 기계를 새로 안 났는가.

이놈이 엄장을 보면 한 이삼년은 끄덕 없이 쓸터인디, 그냥 갖다가 줄랑께 어찌 안까워서 내 바꿔치기 할라고 안하나."

"성님도 참. 아 이제 배들 갖다 주면 언제 우리가 다시 배질을 헐지도 모르는 판국에 그놈 의 쇠덩이 있으면 뭐한다고 그런다요. 그라고 저쪽에서 배를 받음시롱 검사를 헌다는디 동티 라도 나면 어쩔라고 그러요. 안 그래도 우는 아이 달래는 격으로다가 쪼까씩 던져 주는 곶감 이라도 못 챙기면, 그거이 더 손해틸디요."

동철은 곶감이라는 말이 달아나기라도 할 것처럼 우정 명토를 박아 말했다. 보상은 정말 곶감처럼 나왔다. 간척사업이 시작되고 두 해가 지나면서 보상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고, 그 이듬해부터 보상이 지급될 것이라고 했지만 한 달, 두 달 뭉싯거리며 늦어지기만 했다. 2004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바다를 다 막는데는 아직 적어도 서너 해는 더 있어야 할 듯 했다. 그 동안에는 어디서 멍텅구리(동력이 없는 배)라도 한 대 사 와서 기계를 얹고 배질을 할 생각이었다. 문제는 보상이 나오면서 한결 심해진 어업 규제였다. 보상은 10%쯤이 나 20%쯤 조금씩 나오면서도, 새로운 면허 발급과 기존 면허 연장을 중지하는 것은 물론 이 곳 저곳을 어업 통제 지역으로 묶었다. 그렇지 않아도 간척사업으로 바다가 막히면서 강에서 흘러들어 온 흙모래가 쌓여 바다의 오염은 한결 심해지고 그 많던 조개들도 점점 줄어가던 터에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이런 즈음에 배를 새로 구한다 해도 배질을 할 수 있을지 그게 걱정이었다.

"동티는 무슨 동티가 나것는가. 다 쓸데가 있을 것이고, 기계는 저번 거하고 다를 게 없는 것인게 그저 고장이 나서 놀리다가 가져왔다면 되는 것이지. 내일 크레인 불러다가 기계 옮 기고 모레 섬에 들어가면 그만 아니것는가. 헝게 나 배는 자네가 좀 차고 가야 쓰것네잉." 장씨는 동철에게 다짐이라도 받는 듯이 말꼬리를 늘렸다.

"그거이 뭐 어려운 일이당가요. 지야 뭐 성님한테 불똥이나 안 튈까 그거이 걱정이지라." 동철이 몇 잔 술에 간잔지런해진 눈을 비비며 말했다.


"지미, 내일 배 갖다준다고 허더만, 뭐한다고 이런 신새벽부터 이 지랄이라요잉. 나는 인자 배질 안헐텐께 그리 아쇼잉."

배에 있던 기계를 뭍에 내리고 고장난 헌 기계를 다시 배에 실기 위해 낑낑거리며 줄을 묶고 있을 때였다. 어제 저녁부터 보이지 않던 큰아들놈 혜성이였다. 또 어디서 술을 마시고 왔는지 비틀거리 다가오더니 생떼부터 놓는다. 요 며칠 잠잠하더니 어슴새벽부터 술을 먹고 오는 것이 다시 돈 얘기를 할 모양이었다. 이제 배일은 틀린 꼴이라며 동무놈과 장사를 한다 고 보상 받은 돈중에 지금까지 자신이 일한 만큼만 내어놓으라고 했었다. 장씨는 그저 웃어 넘기고 말았었다. 오천만 원이라는 돈이 작은 돈도 아니었지만, 아들이 한다는 장사가 도무 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카페를 한다고 했었다. 물장사 먹는장사가 돈 벌기에는 최고라는 것 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장사라고는 제대로 구경도 해보지 못한 놈이 처음부터 물장사를 한 다는 것은 여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아니었다. 며칠 동안 아비를 설득하지 못한 혜성은 술을 마시고 생떼를 놓기 시작했다. 집 유리창을 부시기도 하고 술김이라고 아비에게 욕을 하기도 했다. 어떤 날에는 아비를 향해 라디오를 던지기도 했었다. 우스운 일이었다. 장씨는 그저 우 습다고 생각할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부모된 마음이라 마누라를 데리고 아들놈이 한다 는 카페에 가보기도 했다. 그 카페 앞에 있는 중국집에서 모처럼 두 내외가 자장면에 짭봉이 었지만 외식을 하기도 했다. 중국집 주인의 눈치를 살피며 2시간여 동안 카페를 살폈다. 들 어가고 나오는 사람이 서넛 있었을 뿐이었다. 돌아와 아들에게 그 얘기를 하고 나서야 며칠 아들은 잠잠했었다.

"니미, 누가 꼰대 아닐라까봐서 이 지랄이여, 지랄이. 기계는 바꿔서 뭐에 쓴다냐잉. 좆도 그렇게 돈 아끼는 양반이 크레인은 왜 불러, 크레인은. 그냥 손으로다가 냅다 집어 올릴 것 인지잉. 뭘 봐, 씨발 새끼야잉. 니기미. 팍 배창시기를 따벌팅께. 눈깔 안 돌려 씨발놈아."

장씨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혜성은 크레인 기사에게 시비를 걸었다. 이른 새벽부터 어쩔 수 없이 나와 일을 하는 것도 못마땅하던 터에 크레인 기사에게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가 아닐 수 없었다.

"뭐, 이런 좆같은 새끼가 다 있단가잉. 니미, 씨발넘이 어디다가 행패여, 행패가. 야, 이눔아 내가 니 아버지 봐서 참을 텐께, 그냥 들어가서 잠이나 잘라잉. 젊은 놈이 그 모냥잉께 동네 에서 밤낮 욕이나 처먹지잉. 내참 아침부터......."

"이런 개새끼가 있나잉. 니가 안 참으면 어쩔래, 이 좆같은 새끼야. 글고 니가 뭔디 콩나라 팥나랴 지랄이냐잉. 지랄이. 씨뻘"

혜성이 옆에 있던 돌맹이를 집어 크레인 기사에게 던졌다. 크레인 기사가 돌맹이를 피하자 돌맹이가 그대로 날라가 크레인의 유리창을 깨트렸다. 더 이상 참지 못한 크레인 기사가 혜 성과 몸싸움을 벌였다. 그제서야 계속 줄을 묶으며 곁눈질만 하던 장씨가 그들에게 다가갔 다.

"야, 이놈아. 차라리 이 애비를 죽여라잉. 이 애비를 죽일랑께. 이놈아. 그래 이 좆같은 새 끼야잉. 내가 나 잘 살것다고 이 지랄이다잉. 니미, 이 천하에 노랑신문에 날 놈의 자식을 보 게나잉. 이 노란신문에 날 놈 좀 보쇼잉. 나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것다고 이런다잉. 나 혼 자 잘 먹고 잘 살것다고. 그려 오늘 너 죽고 나 죽자잉......."

싸우는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언제 왔는지 장씨의 마누라도 다가왔 다. 장씨의 마누라가 아들에게 밀려 넘어진 장씨의 모습을 보더니 아들의 멱살을 잡고는 울 음을 터트린다.

"야 이놈아. 그래 나도 죽여라잉. 니 애비, 에미, 모두 죽여라잉. 모두 죽여라, 이놈아잉. 죽 여. 이놈아. 오냐. 나가 오늘 너 한테서 죽을란다. 이제 니놈한테 당하는 것도 아주 징글징글 허다. 니놈들 키울려고 남들은 다 들어가는 늬 속에서도 배질을 혔는디...... 그러다가 한 번은 배에 물이 먹여, 이놈아..... 너무 소리를 질러서 목이 꽉 잠기고 겨우겨우 살아 돌아오면서까 지 참고 참았던 눈물을, 니놈들 보고야 흘렸었는디, 밤새 울었는디...... 이놈아. 죽여라. 죽여 라잉. 왜 목 죽이냐잉. 왜, 왜, 아이구, 내 팔자야, 내 팔자야......."

"아따, 안 말리고 뭐하고들 있소잉. 형수님. 그만 하쇼잉. 지놈도 사람인디 인자 되았소."

"어이, 누가 종금상회서 막거리 몇 병 사오쇼잉. 아따, 우리 성님, 근력도 좋소. 긍께 내가 뭐라요. 그놈의 기계는 뭐 헌다고 그리 욕심을 부리더구만잉."

그제서야 주위에 보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장씨의 마누라를 말리기 시작했다. 겨우 멱 살이 풀린 혜성은 그대로 사람들을 헤치고 사라졌다.


늦은 저녁을 먹은 사람들이 하나둘 종금상회 평상으로 모여들었다. 전남듸젤 김씨가 타박 타박 수박을 들고 나오자, 윗마을에서 오랜만에 내려온 성수가 종금상회로 들어가 냉장고를 열고 막걸리 세 병을 꺼내 왔다.

"아따, 성수 아제. 남자들 입만 입이고 여자들은 주둥이다요. 여그 여편네들한테도 거시기 아이스께기나 하나씩 돌리소잉."

종금이 할머니는 벌써 아낙들 손마다 빙과를 하나씩 들려주며 말했다. 종금상회는 상회라 고 부르기에도 옹색한 편이었다. 막걸리와 빙과를 꺼낸 냉장고도 한 동네 살던 정옥이네가 이사를 가면서 남기고 간 가정용 냉장고를 가게 구석에 세워 놓고 사용할 정도였다. 그래도 처음 이 마을에 가게가 없을 때는 제법 큰돈을 모았었다. 갑자기 영감이 중풍을 얻지만 않았 다면, 그래서 모아 논 돈을 병원 비로 몽땅 털리지만 않았다면, 병치레하는 동안 새로 생긴 커다란 슈퍼들에게 단골만 뺏기지 않았다면 하는 종금이 할머니의 푸념을 가끔씩 들을 수 있었다. 어느 날에는 그런 푸념이 소문이 되어 서울에 사는 아들 귀에까지 들어갔다. 아들은 그 길에 바로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내려왔지만 간접 보상이라도 받아야 한다고 묵새기며 막 걸리가 몇 병, 빙과 몇 개가 고작인 가게를 꾸렸다.

술이 두어 순배 돌 때쯤 얼굴을 나타낸 장씨가 선 하품을 하며 평상에 무람없이 엉덩이를 붙였다.

평상 밑으로 어빡자빡 막걸리 병이 늘어나면서 사람들도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다.

"아닌 밤쥥에 홍두깨라더니 이 밤쥥에 왠 이삿짐이, 이삿짐잉게유."

에멜무지로 묶었는지 이삿짐을 가득 실은 짐차 한 대가 함지 하나를 떨어트리고도 바삐 마을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충청도와 전라도 사투리를 섞어쓰는 서천댁이 말을 꺼 냈다.

"누가 또 이 마을 뜨는 갑지유, 뭐."

성수가 그네의 사투리를 흉내내며 말했다.

"음췽맞게 믈쮱한 대낮 냅두고 이런 밤쥥에 어딜 간데유, 가기는......."

"다 이유가 있응께 그라지요. 말못한 무슨 사연이 있응께요. 모른 척, 마시던 술이나 마시 면 그만 이지라."

장씨가 한숨을 썩으며 술잔을 들었다.

"우수리까정 하나도 없이 털렸다던디 밤봇짐은 뭐할려고 싼단요?"

가만히 듣고만 있던 영남호 각시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다는 아니고 이번 보상은 아직 남아 있당께요. 근디 그 놈들이 사람까지 죽인다고 허는디 발각이 나믄 어찌것소. 이번 보상이 몇 날 늦게 나온다고 허고는 저리 밤봇짐을 싸는 모양입 디다."

"그라요잉. 엄장이 좋아 갖고 덕룡이 그 머스마도 군산에선 그래도 알아주는 건달이라고 허더구만, 그런 놈이 다 도망을 가는 것을 봉께, 아따, 그 두억시니 같은 놈들. 사기노름꾼들 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인가베요잉. 젊은 놈들이 모다 그 모냥인께 참말 큰일이요잉. 그나저 나 혜성이도 돈 꽤나 잃었다던디, 아저씨도 속 꽤나 썩고소잉."

"언놈이 그딴 소리를 하고 다닌다요잉. 나가 자식 농사를 잘못 지어서 혜성이 그놈이 헤실 바실하긴 해도 어디서 노름 짓이나 하고 다니는 놈은 아닌께요. 영남댁도 그런 소릴랑은 입 밖에도 내지마소잉. 어이 성수, 술 잘 먹었네. 배 볼라고 나왔응께 배나 한 번 보고 갈라네."

큰 소리를 버럭 지르고 일어났지만 영남댁이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몇 달 앞에 엄 장 좋은 젊은 놈들 몇이 큰아들을 찾아왔을 때, 장씨는 일의 실마리를 알아버린 터였다. 큰 아들 혜성을 불러 앉히고 물었을 때는 이미 이천 만원이 가까운 돈을 잃은 뒤였다. 남우세스 러운 일, 버르집지도 못하고 다시는 노름에 손대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돈을 내어 주기는 했지만 속이 타는 것을 말 할 수가 없었다.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요즘에야 보상 바람이 불 어 노름을 하거나 장사를 한다고 가끔 생떼를 부리지만, 뱃일을 하기에는 이미 늙어 버린 아 비, 힘든 뱃일을 그만두게 한다고, 대학도 가지 않고 남들 다 마다하는 천한 뱃놈이 되어 오 늘날까지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이천 만원이라는 돈은 하나도 아까운 것이 아니었다. 장사를 알아보고 다닌다고는 하지만, 다시 노름을 하는 지 뱃일은 나 몰라라 하는 것처럼 노름에 한 번 빠지면 그렇게 헤어 나오기가 힘들다는 것이 장씨의 마음을 할퀴었다. 장씨는 노름의 마 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서울을 등지고 이 마을로 흘러든 것이 벌써 서른 해가 지났던가. 어린 나이에 시골에 살기 가 싫어 집을 뛰쳐나왔다. 부산에서 광주로 다시 서울로, 도시로 도시로 흘러드는 동안 마누 라를 만나 혜성이를 낳았다. 그 동안에 미장이에 땜장이, 목수질에 안 해본 것이 없지만 그 래도 그 가운데 장사가 으뜸이라 싶어 손수레 하나를 장만했다. 손수레에 물건을 닥치는대로 싣고, 한쪽 구석에 아직 젖도 다 떼지 않은 혜성이를 싣고는 장씨가 앞에서 끌고 마누라가 뒤에서 밀며 청량리 시장에서 남대문 시장을 목이 터쳐라 외치고 다녀 떠벌이란 별명이 붙 었다. 아이들까지도 떠벌이라고 거침없이 불렀지만 얼굴은 몰라도 떠벌이란 별명을 듣고 물 건을 사주는 사람이나, 손수레에 실린 갓난아이를 이뻐해주며 물건을 사주는 많은 사람들 덕 에 몇 해 지나지 않아 조그만 가게를 장만할 수가 있었다. 그 뒤로 마누라는 가게를 돌보고 장씨는 날품을 팔면서 조금씩 조금씩 더 큰 가게를 장만했다. 그렇게 다시 몇 해가 지나고 이제 참으로 남부럽지 않을 만큼 살게 될 즈음 심심풀이로 시작한 화투가 화근이 되었다. 처 음에는 그저 일원 짜리 화투가 십원이 되고 백원이 되더니 끝에는 만원 짜리 화투가 되었다. 말이 만원이지 요샛돈 십만 원도 넘을 돈이었다. 옆에서 보다 못한 장씨의 마누라가 신고를 했을 때는 그 동안 모았던 돈을 몽땅 털린 뒤였다. 마누라가 신고한 덕에 남들보다 먼저 선 처를 받고 나오면 서야 자신이 사기노름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과 가게를 몽땅 털리고도 모자라 다시 시작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빚까지 얻게 되었다. 우는 마누라를 달래 며 생각한 것이 밤봇짐이었다. 어슴새벽도 이른 새벽에 짐차를 불려 물건을 겨우 처분한 십 만 원을 달랑 들고 이 마을을 찾아 들었다.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이었다. 이제 막 초등 학 교에 들어간 혜성이와 다섯 살난 혜안, 두 아들과 마누라를 앞에 앉히고 자신은 한푼이 아까 워 짐칸에 올랐다. 바삐 서둘려 에멜무지로 묶인 짐들을 비집고 자리를 만들어 앉은 자리라 떨어지는 눈들을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이불을 덮고 그 위에 비닐을 덮기는 했지만 몰려드 는 추위를 이길 수는 없었다. 담배라도 한 개비 피우면 좀 나을 듯 싶어 비닐 밖으로 고개를 빠끔히 내어 보았지만 달리는 차 위에서 불이 쉬 붙을 리는 만무했다. 외려 더 초라한 모습 이 되어 내리는 눈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었다. 겨우겨우 둥개어 담뱃불을 붙였을 때는 흰서 리가 눈썹까지 내려앉은 뒤였다.

담배 연기가 한숨에 섞여 더운 공기 속으로 스며들었다. 배가 잘 서 있는 것을 보고도 얼 마나 묵새겼는지 발아래 담배꽁초가 제법이다. 인기척에 돌아보니 마누라가 다가오고 있다. 언제 저 사람이 저렇게 늙었나 싶을 만큼 듬성등성한 흰머리가 가로등 불빛 사이로 얼비쳤 다.

"안들어 오고 시방 뭐한다요. 올빼미마냥 이 밤중에 뭔 청승이당가요, 청승이."

말을 마치며 그네가 손에 들고 있던 함지를 바다에 띄어 보냈다. 썰물을 타고 함지는 금세 저만치 떠내려갔다.

"그게 뭣이당가."

"아까 덕룡이 놈이 흘리고 간 함지지 뭐라요. 가져다 쓸라고 했더구만 동티가 붙은 물건을 집안에 들이는 것이 아니라고 물에나 띄어 보내라고 허딥다."

"그려, 저그 저렇게 잘 떠내려가는 것을 봉께, 인자 덕룡이 그놈은 어딜 가든 잘 살것네. 여름이라 이사 가면서 추울 일은 없을 것이고. 참 그놈 노도 없는 것이 잘도 간다, 잘도 가. 우리도 들어가세 그려. 낼은 또 할 일이 많을 것잉께."


밤새 뒤척거리다 어슴새벽부터 자리를 잡고 앉아 담배를 한 갑이나 죽였지만 날은 여전히 어둑했다. 물때(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시간)는 아직 이른데 마지막 담배를 뽑아 문지도 오래 였다.

"성님, 자슈....... 태호성님, 주무셔라."

그냥 앉아 있기가 싱숭생숭해 재떨이를 헤집고 있을 때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바 다에서 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 거의 모두들 너나들이를 하고 살지만 이른 새벽부터 누 군가 싶어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목소리가 다시 문을 넘는다. 동철의 목소리다. 여태껏 자고 있는 줄 알았던 마누라가 벽을 더듬는다. 몇 번을 슴벅이던 형광등이 어스름을 몰고 갔다. "동철인가. 게 섰지 말고 일루 들어오소잉."

"아직 이불도 개기 전인 듯 하구만 지가 어딜 들어간다요. 혹시나 허서 들렸응께 안 주무 시거들랑 뱃머리(선착장)로나 나오셔라."

새벽부터 술이라도 한 잔 했는지 동철의 목소리가 하분하분 젖어있다. 장씨는 이불 속으로 다시 몸을 숨기는 마누라에게 볼가심거리나 만들어 내오라며 선착장으로 나갔다. 판장 한쪽 구석에서 담배불이 슴벅이며 반짝거렸다.

"동철이, 담배 한 대 주소. 물때도 일은디 뭐한다고 이리 일찍 나왔는감?"

"긍께 말예요잉, 성님. 잠이 옵디요. 잠이 통 안 옵디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는디 보다 못 헌 마누라가 쐬주를 한 병 내오길래 옳커니, 요거이나 먹고 자믄 쓰것다허고 한 병을 죄 다 먹어도 잠은 안 오고 이리 날만 죽이고 나왔당께요. 니미 참. 인자 이 지겨운 배질은 안 혀도 된다고 좋아혔뜨만 왜 이리 맘이 짠허다요."

"왜 아니 것는가. 반평생을 바다에 묻혔는디 인자 무얼해서 먹고살아야 할거나?......"

"글도 성님은 지보다는 나응께요. 떡허니 시내ㅇ다가 대감집이나 한 채 마련했지요, 글고 큰아들 몫으로 아파트는 또 어찌구요. 성님 말대로 성님이야 반평생이지만, 지야 어디 반 평 생인감요. 지야 한 평생이당께요. 여그서 열 대여섯부터 배질을 혔는디 지도 인자 낼모레믄 환갑인디요. 환장헐놈의 환갑이당께요. 근디 지는 요, 성님. 지는 집도 절도 없이 쫓겨나게 생겼응께 이를 어쩌면 좋타요잉. 니기미."

"......"

장씨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뭉싯거렸다. 이곳에 이사를 와서 처음 오른 배가 동철의 신 광(新光)호였다. 그때는 바다 어느 구석에도 조개들이 넘쳐 났다. 한 이틀 배질을 하면 배 하 나 가득 조개를 싣고 들어오곤 했다. 신광호 뱃동사(선원) 삼 년만에 집보다 먼저 작은 배부 터 한 척 장만했다. 배가 불러오던 마누라가 꾼 태몽을 들은 사람들은 저마다 딸아이가 틀림 없는 꿈이라고 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 이름을 해화(海花)라고 짓고, 그 아이 이름 을 따서 배이름도 해화호라고 했다. 해화호를 타고 바다로 나가던 첫날, 뱃동사 아닌 선주가 되어 키를 잡던 첫날, 배를 남산만하게 불린 마누라가 선착장에 나와 손을 흔들어주는 모습 을 보며, 장씨는 꼭 저만큼, 마누라의 부른 배만큼, 남산만큼 돈을 벌어 보리라 생각했다. 몇 달이 지나 마누라는 해화라는 이름이 전혀 어울리지 않은 고치 단 아들놈을 낳았다. 마누라 는 이름을 바꾸자고 했지만 장씨에게는 그러기라도 하면 커다란 동티가 붙을 것처럼만 여겨 졌다. 미우나 고우나 이미 지어 논 이름이었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그 아이에게 다시는 허 투루 살지 않겠다고 깊은 다짐까지 했던 터였다. 그 다짐 때문인지 남들보다 허리띠를 조금 더 조이며 살았고, 남들보다 더욱 열심히 살았다. 마누라는 아직 몸을 다 풀기도 전에 남자 들도 힘든 뱃일을 하겠다고 나섰다. 처음에는 말리기도 했지만 그네의 고집도 대단했다. 내 외가 그 험한 뱃일을 하면서 죽을둥살둥 아등바등 살아서 두 해가 지나지 않아 달세로 들어 간 집을 제것으로 만들었다. 또 몇 해가 지나 더 큰배를 지어 내렸다.

다른 사람들 모두 그렇게 집 장만하고 배 내리는 것은 아니었다. 흔전만전 돈 써도 다음날 배질 한 번이면 다시 돈을 만질 수 있는 까닭에 사람들이 돈을 아주 쉽게 여기는 동네였다. 동철은 그나마 배 한 척에 집 한 채나마 있다지만 이 마을에서 나서 자란 사람도 아직 달세 를 면하지 못한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다.

어느새 어스름이 물러나고 뿌옇게 날이 밝아 왔다. 장씨는 배를 가져다주는 것이 꼭 한 삶 을 바다에서 보낸 사람들에게 어둠만은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이렇게 지금 밝음이 어스름을 이기는 것처럼 조그만 참고 있다 보면 다시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런 믿음 이 일어나면서 장씨는 어제 바꿔치기한, 판장 한구석에 오두마니 비닐을 덮고 있는 기계를 한참 동안이나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여보. 동철 아제랑 들어와서 식사허셔라잉."

장씨의 마누라가 뒤듬바리의 걸음으로 다가왔다.


해화호를 묶은 신광호가 뿌우뿌우 기적을 울리며 물길을 헤쳤다. 처음 해화호의 키를 잡던 날처럼 장씨의 마누라가 선착장에 나와 동철과 장씨를 배웅했다. 이제 그네는 손을 흔들지 않고 그저 희읍스름한 눈으로 뭍에서 멀어지는 배를 바라볼 뿐이다. 장씨가 어여 들어가라는 손짓을 보냈다. 그제야 그네가 소매를 들어 눈을 비비더니 등을 보였다.

배가 구미(곶이 길게 뻗고 후미지게 휘어진 곳)를 지나 방파제를 지나고 참바다에 나아가 자 동철이 신광호를 세웠다. 장씨가 무슨 일인가 싶어 배를 붙이고 신광호에 옮겨 탔다. 장 씨가 신광호에 오르자 아침상에서도 쓴 소주를 연거푸 털어 넣은 동철이 간잔지런해진 눈을 비비며 말했다.

"성님, 뭔 일이당가요잉. 배가 말을 하나도 안 들어번지네요잉. 성님이 창나무좀 잡아야 쓰 것는디요. 괜찮지라."

"아침참부터 무슨 웬수라고 쓴 쐬주를 그리 마시더구만. 어여 들어가서 눈 좀 붙이소."

구미를 지났으니 해화호야 그저 따라오겠지만,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이제 이렇게 배를 가져다주면 이 해화호를 다시는 부리지 못한다는 마음이 바투 찾아 들었다. 배를 가져다주는 신시도까지라도 해화호에 남고 싶었지만, 동철의 간잔지런해진 눈을 보니 그러기는 틀린 꼴 이었다. 앞배가 가는 데로만 뒷배를 맡겨도 좋을 넉넉한 바다, 그 바다만을 다시 한 번 느껴 보아야 할 듯 했다.

해가 떠오르는지 멀리서 까치놀이 반짝였다. 까치놀이 이는 쪽으로 가면 개야도가 있을 터 였다. 지금이야 멀리 조그마한 산 하나를 보고도 그곳이 어디인지 알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까침바우를 찾지 못해 개야도로 간 적이 있었다. 마누라를 배에 태우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생긴 욕심 때문이었다. 남들은 밤샘 작업해서 배 하나 가득 조개를 싣고 왔지만 장씨는 아직 뱃길이 서투른 탓에 밤샘 작업을 할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그날 따라 허탕만 짚고 다녔는 지 잡히지 않던 조개가 썰물 때가 다되고 날이 저물 무렵에야 그물 가득가득 잡히기 시작했 다. 기름 값도 안 빠지겠던 터라 장씨는 욕심을 부려 밤샘 작업을 마음먹었다. 배 하나 가득 조개를 잡아들였다. 장씨가 배에 오르고 그 동안에 잡았던 양(量) 가운데 가장 많은 양이었 다. 장씨는 기쁨이 넘쳐 났지만 날이 밝아 오면서 안개가 뿌옇게 바다에 내려앉았고 주위에 배들이 한 척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밤새 그물을 끌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느 라 다른 배들을 신경 쓰지 못하면서 그들과 떨어진 모양이었다. 아직 뱃길도 서투른 장씨는 안개까지 내려앉자 그만 그물을 거두고 돌아갈 채비를 서둘렀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느 쪽이 까치바위 쪽인지를 알 수 없었다. 밤샘 작업에 서투른 뱃길마저 잃었다. 그저 뭍이 보이는 곳까지 에멜무지로 배를 몰고 있는데 해가 떠오르는지 배 옆구리를 끼고 까치놀이 얼비쳤다. 장씨는 동네 이름이 까치바위라는 생각에 안개 속에 얼비추는 까치놀을 따라 뱃머리를 돌렸 다. 안개는 점점 심해져 까치놀마저 사라졌다. 문득 장씨는 자신이 타고 있는 배가 너무 작 고 힘이 없다고 느껴졌다. 안개 속을 헤매다가 커다란 유조선에 부딪혀 산산조각난 시체를 아직 찾지 못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대로 바다에서 죽는 것은 아닌지, 아직 어린것들을 두 고, 부모 떠난 죄가 이렇게 앙얼이 되어 돌아오는 것인지, 장씨는 그 동안 10년이 넘게 찾아 가지 않은 고향을 찾아가리라 마음먹었다. 마누라는 그저 말없이 조개를 고르고 있었다. 자 신을 믿는 것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껍데기를 고르는 그네를 보며 장씨는 어떤 희망이 가슴속에서 뭉클 떠올라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안개 속으로 멀리 희미하게 뭍이 보였 다. 속도를 높이고 배의 기적을 울렸다. 뿌우뿌우. 뿌우뿌우. 산 모양을 보니 까치바위가 틀 림없이 보였다. 배가 뭍에 가까워지면 서야 장씨는 그곳이 전혀 낯선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 었다. 뭍에서 배 몇 척이 해화호 곁으로 다가왔다. 안개 사이로 흐린 불빛들이 해화호를 둥 글게 에워쌌다. 그제야 장씨의 마누라도 일손을 멈추고 장씨 곁에 다가왔다. 그네의 눈이 하 분하분 젖어 있었다. 저쪽 배에서 늙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거 어디 배요.

까침바우서 왔는데요.

근디 여기는 뭐 파먹을 것이 있다고 왔당가?

이번에는 사뭇 도전적인 젊은 목소리가 날카롭게 날아들었다. 바다를 향하던 불빛들이 일 제히 방향을 틀어 장씨를 겨냥했다. 영문을 몰라 장씨가 무르춤하는 사이 저쪽에서 다시 늙 은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혼자요.

예, 제가 아직 뱃길이 서툴러 길을 잃었습니다.

길을 잃기는 무슨 놈의 길을 잃었당가잉. 쥐새끼 같은 놈덜, 기어이 잡았응께, 내 니놈들은 초를 칠것이여잉. 우리게가 전복을 어떻고롬 키운 것인디 그걸 도적질을 헌당가잉.

그제야 장씨는 지금 자신이 도둑으로 몰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배를 붙여 확인하는 길 이 으뜸이라 싶어 늙은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뱃머리를 돌리는 순간 뒤에서 무언가 날아 와 마누라 곁을 스치고 선실 유리창을 깨고는 떨어졌다. 마누라가 소리를 버럭지렀다.

아악.

......

도둑은 무슨 도둑이라고 그래요. 그저 길을 잃었을 뿐이래도요.

저쪽에서 대답이 없자 그네가 다시 앙칼진 목소리로 쏟아 붙였다. 저쪽에서 다시 늙은 목 소리가 들렀다.

거 내외지간이요. 돈에 무슨 웬수가 졌다고 여자까정 배를 태운다요....... 어이 기문이 불 거두세나. 보아하니 도적은 아닌 듯 하이....... 이보슈. 미안허게 됐슈다. 요즘 우리게에 전복 도적놈들이 하도 극성을 부려나서 실례를 혔으니 이해하쇼. 우선 뭍으로 올라갑시다. 안개 속에서 이런 다고 길을 찾는 것은 아닝께, 내 사죄혀는 의미로다가 안개 걷히면 길을 안내 허리다.

그들을 따라 들어간 곳이 개야도였다. 마주보고 있을 때와는 달리 뭍에 이르자 사람들은 장씨 내외에게 너무나도 따뜻한 대접을 무람없이 베풀었다. 안개가 걷혔다. 까치바위가 보이 는 곳까지 길 안내를 하던 그들 배가 전복이 담긴 포대를 하나 던지고는 사라졌다. 돌아와서 야 장씨는 까치바위라는 이름이 까치놀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옛날에 이 마을이 모두 바다였을 때, 작은 섬 하나를 까치바우라고 불렀다. 뭍이 되어 마 을이 생기면서 동네 이름도 까침바우가 되었다고 했다. 장씨는 옛날 바다였던 곳이 지금은 뭍이 되어 사람들을 보듬었듯이, 지금의 바다가 뭍이 되어 사람들을 보듬고 살아갈 것을 믿 었다. 그러나 옛날 바다가 뭍이 된 것은 사람들의 손에 의해 이렇게 마구잡이로 이루어지지 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이 자연으로부터 변하고 또 자연으로부터 이루어져야 옳 은 것이지 이렇게 바다를 오염시키고 사람들을 내몰면서 변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여의도의 백 사십배가량의 땅이 새로 생기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왜 여의도의 백 사십배가 량의 바다를 잃는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땅이야 뿌리고 가꿔야 하지만 바다는 욕 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어처구니없이 성난 파도에 맞서 싸우지 않고 자연의 순리대로만 살아 간다면 모자람이 없이 함께 나누어준다는 것을 왜 모르는 것일까?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이었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지금 이렇게 뱃길을 내어 주는 바다가 막히는 날까지라도 뱃일 을 하면서 바다와 더불어 살고 싶었다. 아니 장씨는 믿고 있었다. 벌써 배를 가져다주고도 까침바위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바다는 그들 가슴에 살아 있었고 높은 사람들이 아무리 뭐라 해도, 바다가 그들 눈에서 뭍으로 바뀌는 날까지 그들은 바다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아직 바다 밑에는 노랑조개가 피조개가 생합이, 배꼽이, 소라, 골뱅이, 아다리, 꼬막이 그들의 믿음처럼 자라고 있었다.


빗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더니 시나브로 굵어졌다. 동철이 그 소리에 일어났는지 하품을 하며 선실을 빠져나왔다.

"성님, 어디쯤이라요."

"지금이 은하해순께 한 삼십 분만 가면 쓰것네."

"엥, 은하수라구라구잉. 그러믄 지가 지은 죄가 많아 그만 죽었는가베요잉. 성님. 근디 인자 죽었응게 물은 저리가라고 허소잉. 어찌 별은 하낫또 없고 물만 보인다요. 어이치, 물, 물렀 거라."

"옛기 이 사람. 가라면 자네 혼자 가지 나는 왜 끌고 가나."

"아따, 우리 성님은 욕심이 없는 것이 없구만요잉. 돈 욕심. 자식 욕심. 집 욕심. 삶 욕심. 어구구, 주꿀텅 영감이 다 되아갖고 먼 욕심이 그리 많다요잉. 갑시다. 가. 죽음이 좋습디다. 성님도 잠깐 죽어 보쇼잉. 꿀맛이더만. 지가 창나무 잡을라요...... 아이구 은하수라 그란지 저 그 까마귀가 보인다. 성님, 날치딘요. 날치. 아흐 여그 옛날이믄 지금 삼치가 좋을 땐디요잉. 인자 가을이 올란갑네요잉."

엉너리를 놓으며 동철이 키를 넘겨받았다. 은하해수(銀河海水)는 물이 잔잔해서 별이 그대 로 담긴다는 곳이었다. 고군산군도가 바람을 막아 거센 파도도 이곳에서는 잠시 숨을 죽여 서, 갈 길을 잃은 배들이 이곳에서 닻을 내리고 파도가 약해지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배는 은하해수를 벗어나 고군산군도로 접어들었다. 야미도와 신시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94년도에 완공되었다던 야미도와 신시도를 잇는 제 3방조제가 보였다. 그 길 위로 흙차들이 부지런히 오고가고 있다.

"성님, 저거 좀 보소잉. 아따 그 긴 길을 다 막어버렸소잉. 선유도 쪽이라고 허더만 인자 돌아가야 쓰겠네요잉."

"그러야 쓰것네. 어이 동철이 인자 얼마나 가야 하겠나."

"그저 가면 이십 분이면 되는디, 돌아강게 한 사십 분이나 걸리것어라. 성님, 이놈의 배가 미쳤어라, 니기미 좆도 잘 다리는 듯 허요잉."

"어이 동철이 우리가 회두리라고 하더만 저그 배들도 신시도로 가는 갑네잉."

야미도를 지나고 신시도에 바투 가까워지면서 배들이 우세두세 신시도를 향하는 것이 보 였다.

"어이 동철이 저것이 뭐당가. 당최 첨보는 물건일세 그려."

섬에는 가지런히 묶여 있는 배들이 보였고, 산 한쪽 모퉁이에는 크레인 두 대가 장승처럼 버티고 서서 배들을 들어올리기도 하고 부시기도 하면서 서 있었다. 그 밑으로 배들의 잔해 가 어빡자빡 쌓여 있었다.

"어매, 저, 저거이 뭐, 뭔 일이당가요잉. 경매한다고 허더구만 비, 빌어먹을 놈덜, 저 아까운 배들을 그, 그냥 저리 부스는 갑네요잉."

동철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더듬적더듬적거렸다. 장씨는 빗속을 뚫고 고물 쪽에 서서 해화호를 바라보았다. 날치 몇 마리가 계속 빗속을 날아다니더니 한 마리가 그만 해화호에 떨어졌다.

"어이 동철이, 배 좀 세우소잉...... 어이 동철이, 배 좀 세우랑께."

넋을 놓고 있던 동철이 무르춤하며 속도를 줄였다. 장씨가 해화호에 묶인 줄을 당기더니 해화호로 건너가 날치를 바다로 던지고 닻을 내렸다. 동철이도 무슨 일인가 싶어 해화호로 건너왔다.

"성님, 뭔 일인디 닻을 다 놓는다요잉."

"......"

"성님?"

"어이 동철이 지금이 삼치 좋을 땐디 우리 삼치나 몇 마리 잡아서 쐬주나 한잔하세."

"아따, 성님도. 바다 속에 들어가라요. 무슨 수로 삼치를 잡는다요잉."

"내, 버림치로 나 둔 것이 어디 있을 것잉께. 자네는 건너가 쐬주나 따소잉."

장씨가 선실로 들어갔다 나오며 납덩이가 촘촘히 박힌 삼치 낚시를 가지고 나왔다. 다시 신광호로 건너온 장씨는 창나무(키라는 말로 쓰이기도 하지만, 얇은 물에서 치를 대신해서 방향을 트는 대나무를 가리키기도 한다.)를 선실에서 바다 쪽으로 뻗게 해 묶었다. 쓸 수 있 는 낚시는 두 개뿐이었다. 장씨가 낚시 한 개를 창나무에 묶었다. 그제야 생게망게 바라보던 동철이 다가와 낚싯줄을 고르고 창나무에 묶었다. 장씨가 이물 쪽으로 가서 해화호에 묶인 줄을 풀자 동철이 신광호의 속도를 최대한 높였다. 삼치를 잡는 낚시에는 미끼가 필요 없다. 그저 형광 색으로 위장한 낚시바늘이 빠르게 달리면 삼치란 놈은 그것이 먹이 인줄 알고 달 려와 물었다. 바다가 오염되면서부터 가을 한철 주된 수입원이던 삼치는 점점 그 양이 줄어 들었고, 원양어선이 참치를 잡기 시작하고는 더 이상 고급어가 아니었다. 바다를 맘껏 누비 며 달리던 삼치잡이는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모습을 감추었다.

"성님, 늦것는디라. 저그 여객선이 야미도에 닿았응께요잉."

삼사 십분 달렸지만 삼치 한 마리도 낚지 못하고 동철이 말했다. 그저 아침에 장씨의 마누 라가 쌓아 준 곁두리만 축내며 소주를 비우고 있을 뿐이었다. 해는 이제 그들 머리 꼭대기에 올라 있었다. 여객선을 타고 군산으로 가서 버스를 탈 생각이었으니 아직 시간은 있었다. 야 미도에 닿은 여객선이 야미도를 거쳐, 신시도를 돌아 무녀도, 선유도를 거치고 장자도를 돌 아 곶라도에서 방축도, 말도를 돌아오는 시간이 두 시간 가량 걸렸다. 신광호가 해화호를 끌 고 신시도까지 가는데 삼십 분, 서류 검사와 배 검사를 합친 시간이 삼십 분쯤 걸린다고 했 으니 아직 한시간 정도 시간은 있는 셈이다. 조금 여유를 가진다고 해도 아직 삼십 분 정도 를 더 있어도 좋을 듯했다.

"뭐가 그리 급하나잉. 신시도가 박산(博山)이라고 하더만 무덤이더구만 배무덤. 자네는 무 덤으러 가는 것...... 어이 동철이 잡혔네잉. 잡혔어. 저기 보소. 고무줄이 팽팽하게 늘어났네 잉."

장씨가 동철을 타박하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삼치가 잡혔는지 알기 위해 달아 놓은 고 무줄이 늘어나 있었다. 장씨가 낚싯줄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잘 따라오던 낚싯줄 이 점점 무거워졌다.

"아따, 그놈 엄청 큰놈인갑네잉. 어이 동철이, 나 혼자는 안되것네. 자네도 이리 와서 좀 땡 기소잉."

한참을 둥개던 장씨가 동철을 불렸다. 동철이 달려와 낚싯줄을 잡아당겼다. 저만치에서 삼 치 한 마리가 낚싯줄에 걸려 다가왔다. 딸려 오지 않으려고 바다를 뛰어오르는 것을 보니 여 간 큰 것이 아니었다.

"크다, 커. 성님. 참말로 크요잉. 아직 저런 놈이 남아있네요잉. 얼싸, 좋다. 성님, 성님. 앞 으로 배질을 더 할 수 있을랑가요." "틀림없을 것이네. 안글면 나가 미쳤다고 기계까정 바꿔치기 했당가. 틀림없을 것이구만."

"성님 말이 맞을 것이요잉. 저러코름 큰 고기가 아적 이 바다에 있는디, 곶감 몇 개 던져 주고 가기는 어디를 가라고 헌다요잉. 나도 좀더 묵새길라요. 성님 틀림없지라."

"틀림없당께 그러네. 아 이 사람아 말힘 쓰지 말고 줄이나 바로 땡기소잉. 얼차."

겨우겨우 둥개며 배 앞에까지 삼치를 끌어 당겼다. 삼치는 삼치대로 이리저리 몸을 뒤틀었 다. 이제 배 위에만 올리면 끝이다 싶은데 삼치가 펄쩍 하늘로 뛰어오르더니 그대로 바다 속 으로 들어갔다. 낚싯줄을 바투 당기던 둘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오래된 낚싯줄이 서 로 당기는 힘을 견디지 못하고 끊어진 모양이었다.

"니기미, 참. 다 잡았는디, 아까워서 어척헌다요잉. 허허허. 니기미 참. 성님, 괞찬어라." "아이쿠, 하하 고놈 참 큰놈이었는디. 아깝네잉. 아까워. 허허."

장씨도 동철도 그저 허탈하게 웃고 있었지만 눈자위가 하분하분 젖어있었다. 장씨는 그것 이 빗물 때문이라고 여기고 싶었다.


신시도


이곳은 섬입니다. 당신, 상상이 되십니까?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오면 바다가 한눈에 들어 오는 집에 저는 지금 머물고 있습니다. 언제가 당신이 말한 바다가 있고 언덕이 있고 그 언 덕 위에 집이 있으면, 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좋을 거라는 그런 집입니다. 저는 지금 마루에 나와, 서로 어우러져 장난치는 갈매기 몇 마리를 보고 있습니다. 너울쩍거리는 모습이 매우 여유로운데, 한 마리가 날쌔게 바다를 향해 날아 내립니다. 다시 하늘로 날아오를 때는 물고 기 한 마리가 갈매기 부리에 물려 있겠지요. 물고기, 물고기, 저 푸른 바다에서 꼬리치며 몰 려다니다가 자신도 모르는 어느 순간에 누군가의 먹이가 되어 하늘을 날게 될 물고기를 생 각하는데, 왜 당신이 떠오르는지 편지를 씁니다. 아니 사실은 당신이 떠오른 게 아니고 제 모습이, 그래요 제 모습이 떠오른 것이었답니다.

당신의 전화번호는 제 호출기 안에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제가 아무런 말없이 당신 곁을 떠나고 오래도록 연락을 하지 못했는데, 당신도 제 소식이 궁굼했나요. 당신은 기 계 속에 잡히는 것 같아서 싫다던 호출을 제게 해주었습니다. 당신에게 전화를 걸어야 하는 데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자신이 없습니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할지는 이제 저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이렇게 아무 말없이 훌쩍 소식을 감춘 저를 나무라시겠지 요. 당신에게 연락을 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으로 며칠을 보내고서야 저는 아직 우리가 살 고 있는 이 땅에 편지라는 게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냈습니다. 편지라면 제가 아무런 말 없이 떠난 것에 대한 핑계를 해볼 수도 있을련지요.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펜을 들었는데...... 바로 쓰지도 못하고, 또 오래 지나 이 섬에 와서야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는군요.

당신을 떠난 지 벌써 한 달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처음엔 이렇게 오랫동안 당신을 떠날 생 각은 아니었습니다. 당신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무작정 군산행 고속버스를 탔습니다. 왜 당신처럼 저도 당신을 좋은 동무로만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왜 당신이 누군가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한번도 해보지 않았을까요? 이제 제 마음의 푸른 빛이었던 당신이, 다시 좋은 동무가 될 수 있을 때쯤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이지요. 슬며시 파란 대문을 밀고 들어섰 을 때는 벌써 새벽 두 시가 넘어 있었는데도 잠귀가 밝으신 아버지께서는 거 누구요, 안방에 서 또륵 똑 똑 똑 형광등이 켜졌습니다. 저는 손에 든 양주를 내밀지도 못하고 말했지요. 아 버지 저 왔습니다. 아직 아버지에게 저는 어린애에 불과한 모양입니다. 막내 왔냐, 니가 이 밤중에 기별도 없이 어쩐 일이다냐, 느자쓴게 날 밝으면 이야기허고 우선 자거라. 아버지는 제 방에 불을 넣어 주시고는 다시 안방에 들어가셨습니다.

제 어릴 적 기억이 묻어 있는 곳에서 저는 우리의 어린 날을 생각해 냈습니다. 무슨 남자 애 이름이 계집애 같아, 야. 너 남자애 맞아. 당신이 처음 제가 다니는 학교로 전학 와서 저 에게 했던 말을 기억합니다. 그때는 당신도 참 말괄량이였다는 생각에 소리 없는 웃음을 지 었습니다. 해화. 그래요, 당신이 아니라도 해화라는 저의 이름 때문에 많은 놀림을 받으며 자 랐습니다. 물론 그때마다 아버지에게 투정도 많이 부렸답니다. 그런 날이면 아버지는 목마를 태워 주시며 저를 달래곤 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이제는 저의 목에 목마를 타야 할 것만 같은 작은 모습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조금 있다가 다시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머무 르는 이 집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가, 벌써 몇 번째, 아 저녁 안 먹고 뭐 햐. 그럽니다. 그러 고 보니 밖이 꽤 어두워져 있군요.


이제 일곱 시를 조금 지났는데 별이 총총총,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하늘입니다. 지금쯤 당신이 있는 서울 하늘에는 별이 몇 개나 떠 있을까요? 넷, 다섯, 아니면 하나도 보이지 않 나요. 이상한 일입니다. 문득, 이곳의 별들이 서울에서는 다 죽어 없어졌다는, 그곳에서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생각입니다.

머무르는 곳이 다르면 느끼는 것도 다르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래요, 그 말 은 사실이었습니다. 당신이 제게 옛일을 물을 때면 으레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사실 머 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그저 당신이 제가 다니던 국민학교(일제의 잔제라며 당신은 싫어하시 겠지만, 초등 학교라고 적을까 하다가 그냥 국민학교라고 적습니다. 제가 다니던 곳은 국민 학교가 틀림없으니까요)로 전학을 왔다가 다시 몇 해가 지나고 전학을 갔다는 것만이 생각날 따름이었습니다. 당신의 아버지가 군인이었고 그래서 전학을 자주 다녀야 한다는 당신의 말 이나, 가끔 군용 비빔밥을 얻어먹으러 당신 집에 놀러 갔던 일이 있다는 것, 늘 건빵을 가지 고 다닐 수 있는 당신이 부러워서 나중에 크면 군인이 되어야겠다는 어린 날의 생각들을, 사 실이지 저는 이곳에 와서야 떠올립니다. 오래 참았던 눈물이 왈칵, 두볼을 순식간에 적시듯 그렇게 머릿속을 비집고 나오는 기억 때문에 저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침을 맞았습니다. 여섯 시 즈음이었나요, 언제나처럼 시누대가 가득 심어진 뒤란에서는 새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노랫소리가 왜 그날은 그렇게 구슬프던지 그때 아버지가 부르지 않았다면 아마 눈물을 흘렸을지도 몰랐을 겁니다. 아버지는 제가 밤새 잠 못 이룬 걸 알고 있었습니 다. 큰방으로 건너 오라 하시더니, 뭐가 잘 안되냐? 라고 물으시던군요. 무어라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저는 그저 촬영차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믿지 못하는 눈치였 습니다. 그러나 더는 묻지 않으시더군요. 대신 서두르지 말라는 말씀과 함께 밤새 뒤척이는 것 같더니 좀더 자 두라, 하셨습니다.

참 오랜만에 꿈도 없는 단잠이었습니다. 저녁을 먹으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일어났으니까 요. 저녁을 먹고 아버지와 산책을 나갔는데, 영감님, 영감님, 주위 사람들이 아버지를 부르는 그 소리가 왜 그렇게 낯설던지요. 이 섬에 들어와야겠다는 생각은 그날, 문득 들었습니다. 당 신, 새만금 간척사업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군요. 그 사업이 끝나는 2004년이면 서 해바다 어느쯤은 뭍이 됩니다. 그리고 뭍이 된 바다에서 사람들은 농사를 짓거나, 공장을 만 들거나 집을 짓겠지요. 당신, 기억하시는지 모르지만 우리 집은 조그마한 조개잡이배를 부립 니다. 아니, 부렸었다고 해야 옳겠군요. 새만금 간척사업에 따라 배들은 보상을 받고 이 섬에 들어와 소각되거나 그 중에 상태가 좋은 것들은 경매를 해서 다른 곳으로 팔려 나간다고 합 니다. 우리 배, 아버지의 배는 어떻게 됐을까요? 소각이 되었거나 다른 곳으로 팔려 나갔거 나 무슨 상관이냐고...... 그래요, 무슨 상관이냐고 말을 하겠지만...... 우리 배의 이름은 해화호 입니다. 해화호, 장해화, 해화호, 장해화, 무슨 상관이냐고...... 그래요, 해화호는 제 이름에서 딴 이름입니다. 아니 제 이름이 해화호에서 딴 것이라고 해야 옳을까요?

우리 집이 이곳 군산에 터를 잡은 것은 제가 태어나기 몇 해 앞이었다고 합니다. 누구나 그러한 날들이 없겠습니까만은 서울에서 제법 잘 살았던 우리 집은 아버지의 노름으로 그야 말로 돈 한푼 없이 도망오듯 이 땅을 밟았다고 하더군요. 그때부터 아버지는 배를 탔습니다. 군산, 정확히 말해 군산에서 한시간 남짓 더 들어가야 하는, 까침바우에서 아주 작은 배를 타는 선원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고 제가 태어날 때쯤에는 억척 같이 일했 던 아버지 덕으로 우리도 배를 한 척 사들였다고 하더군요. 제 위로는 형이 둘 있습니다. 혜 성, 혜안이 그들의 이름입니다. 우리 형제들은 혜자 돌림입니다. 제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 꾸웠던 태몽은 틀림없는 딸아이 꿈이었답니다. 이제 딸을 보고 싶으셨던 아버지께서는 바 다의 꽃이라는 뜻을 가진 계집아이의 이름까지도 지어 놨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의 이름 도 혜자를 넣은 혜화가 되었을까요? 우리 배, 그래요, 제가 태어날쯤 처음 갖게 되는 우리 배를 아버지는 저의 이름처럼 해화호라고 붙였다고 하더군요.

......아, 그러고 보니 당신, 지루하시겠군요. 제가 당신에게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당신 기 분이 나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말고 당신을 떠날 수밖에 없는 제 마음을 당신께 어떻 게 설명할까요? 이런 핑계를 대지 않고 말입니다.

저는 제 이름의 배가 이 섬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지난날처 럼 다시 한 번 사진 속에 이미 쓸모가 없는 폐선(廢船)을, 이제는 허물어지고 쓰러졌을 우리 아버지의 배, 해화호를 찍고 싶었습니다. 물론 제가 태어날 때 처음으로 해하호라는 이름을 가졌던 배가 소각을 위해 지금 이 섬에서 들어온 배는 아닙니다. 배의 수명은 글쎄요, 이곳 에서처럼 조개를 잡는 작은 나무배들은 한 십년쯤됩니다. 그때의 해화호는 폐선이 되고 다시 더 큰배를 짓고, 다시 더 큰배를 내리면서 (육지에서 만들어져 바다로 내려가는 까닭으로 내 린다고 합니다.) 모든 배들에게 해화호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렇게 팔리고 소각된 배들이 벌써 다섯 척이 넘었는데, 이제야 해화호가 내 이름으로 되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또 무슨 까닭인지?...... 해화호를 사진 속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뒤로 열병처럼 이 섬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이 섬에 들어오는 여객선이 군산 항 여객 터미널에서 아홉 시 에 있다는 것을 알아낸 뒤로는, 사진기를 들고 이 섬에 들어오려고 할 때마다 이상하게도 폭 풍주의보가 내려 배가 결항을 했답니다. 그렇게 세 번의 결항을 끝으로 겨우 이 섬에 들어왔 을 때는 이 섬에 들어와야겠다고 마음먹은 지 이 주일이나 지난 뒤였습니다.


잠이 들었나 봅니다. 햇살에 눈이 부셔 일어납니다. 참 맑은 아침입니다. 오늘은 소각장에 갈 수 있을련지요. 이 섬에 들어온 지도 벌써 보름이 넘었습니다. 이 섬으로 들어오는 배는 옥도 훼리호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더군요. 옥도 훼리호를 기다리는 군산 항에는 <서해안 개 발의 핵심>이라는 문구를 가진 커다란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 안내판에는 앞으로 육지가 될 바다를 그려 놓고 있더군요. 비응도에서 변산 반도까지를 잇는 거대한 이 공사는 1조 3천억 원의 사업비가 소요된다고, 1991에서 2004년까지가 공사 기간으로 세계 최고의 방 조제가 건설되는 것이라고 남색 글자로 또렷하게도 적혀 있더군요. 이 섬도 안내판에서는 섬 이 아닌 뭍으로 그러나 여전히 신시도(新時島)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섬이라는 이름 을 가진 뭍이 다른 나라에도 있을까를 생각할 때쯤 개표가 시작되었습니다.

옥도 훼리호가 군산을 출발해 이 섬, 신시도로 오는 한시간 사십여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자신이 없군요, 그 아름다운 풍경을 당신에게 꼭 설명하고 싶은데, 그 바닷길을, 그 래요, 바닷길이라고 해야 옳겠군요. 당신 지금 웃고 있는지요. 바다에 무슨 길이 있느냐고...... 길, 길, 이미 만들어진 길에 너무 익숙해진 탓이라 이런 표현을 쓰면서 저도 한참을 웃었는 걸요. 어디 길뿐인가요. 보이는 것에만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닌지, 사진을 찍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제가 이런 말을 한다고 당신 또 웃고 있을지...... 제가 바닷길이라 이름 지 은 길은 옥도 훼미리호가 바다를 가르며 앞으로 나아갈 때, 배 뒤로 바다가 갈라지며 생기는 갈기를 말합니다. 길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고 뒤를 돌아보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바닷길은 꼭 배의 넓이 만큼만 배가 지나간 자리를 따라서 만들어집니다. 그 길 위로 갈매기 가 날고 멀리 작은 섬들이 보이고 그 뒤로 하늘선이 보이는데, 그 풍경이 얼마나 아름답던 지, 당신 저의 이 부족한 표현력을 용서하시길, 저도 당신처럼 소설을 썼더라면.......

마을로 들어오는 십분쯤의 길은 좁고 길었습니다. 길 옆으로 보이는 바닷가에는 모래 대신 자갈밭을 이루고 있더군요. 당신이 기억하신다면 좋겠군요, 우리가 어려서 놀던 막갈 같이 (언젠가 서울에서 막갈 맞추기라고 했다고 놀림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막갈이 무슨 말이냐 고, 제 설명을 듣고 난 뒤에야 사람들은 비석 세우기라고 하더군요.) 넓적한 자갈들이 이루고 있는 바닷가라니, 저는 그 바닷가로 내려가 꼭 그만 그만한 자갈들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그 중 하나를 주워 주머니에 넣고 마을로 들어왔습니다.

군산 항에서 보았던 안내판과는 달리 신시도는 아주 작은 섬이었습니다. 섬을 통틀어 집은 서른 채쯤 됩니다. 여관이나 민박집이 있을 거라는 저의 생각은 빗나갔습니다. 그래도 처음 엔 그러한 사실도 모른 채 가방을 메고 이 작은 섬을 이곳 저곳 돌아다녔습니다. 열시 사십 분쯤에 저와 다른 몇 사람을 이 섬에 내려 준 옥도 훼리호가 다음 목적지를 돌아 다시 이 섬에서 한 시 삼십분에 군산으로 출항한다는 방송이 나올 때도, 한 시가 넘고 다시 한 번 오 늘 떠날 손님은 빨리 표를 구입하라는 방송이 나올 때도, 내일부터는 다시 폭풍주의보가 내 릴 거라는 그래서 결항이 될 거라는 방송이 나올 때도, 저는 민박을 구해 볼 생각으로 느릿 하게 이 섬의 작은 마을을 살피고 돌아다녔습니다. 민박은 생각보다 구하기가 힘들었습니다. 하긴 사람 보기도 힘이 들었으니 말입니다. 집이 서른 채쯤 된다는 사실은 이미 말씀드렸구 요, 그 서른 채의 집에 사람들이 한 사람씩만 살아도 이 섬에 있는 사람들의 수는 서른이 되 어야 하는데, 글쎄요, 제가 있는 동안 이 섬에서 보아 온 사람은 예닐곱 정도의 사람뿐입니 다. 제가 머무르는 이 집의 주인 할머니와 조그만 구멍가게를 지키는 아주머니와 초등 학교 를 다니는 그 가겟집의 아이, 그리고 볕이 좋은 날이면 해바라기 좋은 곳에서 어김없이 볼 수 있는 할아버지 두분. 일 학년에서 삼 학년까지 사 학년에서 육 학년까지 한반으로 되어 있는 건물 뒤편으로 아직 뽑히지 않은 배추를 보며 신기해하는 저에게 배추를 뽑아 주며 내 년에는 학생이 두 명 늘어 여섯 명이 된다고 좋아하던, 학생 수가 네 명뿐인 신시도 초등 학 교의 선생님 한 분, 그리고 저....... 제 기억이 맞다면 저와 함께 이 섬에 내린 사람들만 해도 열 명은 족히 될 터인데 일곱 사람이라니요. 배가 떠나고 민박을 구하지 못한 제가 하나밖에 없는 구멍가게에서 민박을 부탁하면서야 이 섬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 까닭을 알게 되었습니 다. 이 섬도 새만금 간척사업이 진행되면서 보상이 나왔다고 하더군요. 사람들은 이제 더 이 상 고기를 잡을 수 없는 이 섬을 떠나 군산에 집들을 샀다고 합니다. 저와 함께 내린 사람들 은 이 섬에 있는 집을 잠시 둘러 본 뒤 다시 군산으로 나갔다고 하더군요. 그런 까닭으로 아 마 민박 구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가겟집 아주머니는 그래도 이곳이 박산이었고, 아직 사 람 사는 곳인데 어디 몸둘 곳 없겠느냐고 오히려 저를 위로하며 이집의 할머니에게 전화를 해주었습니다.

할머니는, 이제 막 삶은 감자를 내 놓고 간 할머니는 군대간 손자를 기다린다고 합니다. 할머니 역시 군산에 집을 하나 장만했다고 합니다. 남편도 아들도 며느리도 바다에 잃은 할 머니는 바다를 보면 구역질이 나온다고 어서 어서 이 섬을 떠나야지, 떠나야지, 노래를 부르 더니 막상 보상이 나오고 군산에 집을 장만하고도 이 섬을 떠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군에 간 손자 놈이 이리로 올텐데 어디를 가느냐고 말을 한다지만 사실은 태어나서 시집 들고 아들 낳은 이 섬을 떠날 수 없는 것이라고 가겟집 아주머니는 말합니다. 당신, 당신이 철들고 당 신의 아버지가 군을 제대할 때까지 늘 옮겨만 다니던 당신은 할머니를 어떻게 생각하실련 지.......


오늘이 눈이 오는 군요. 마을이 하얗게 흰눈으로 덮였습니다. 마을 뒷산에는 나무마다 아 름다운 눈꽃이 가지가지 피웠습니다. 소각장으로 가려면 뒷산을 넘어야 한다기에, 사진기를 들고 아무도 지나지 않은 하얀 눈길에 발자국을 남기며 얼마쯤이나 산을 올랐을까요. 토끼 한 마리가 깡총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그 토끼를 쫓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토끼가 사라지고 나서야 저는 제가 꽤 깊은 산속에 들어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 다. 돌아가려고 할 때는 이미 발자국이 이리저리 엉켜 어느 쪽으로 가야 마을로 가는 길인지 소각장으로 가는 길인지 알지 못하고 한참을 헤매였습니다. 지금까지의 제 삶도 그렇게 엉킨 발자국을 따라 헤매고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발자국만 사진 속에 담아보았습니다. 다행히 산이 그리 깊지 않아 몇 시간이 지나고 다시 마을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며칠이나 지났는지요. 무슨 열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자다가 일어나고 자다가 일어나서 밥 먹고 또 자고 그렇게 며칠이 지났습니다. 어제는 초등 학교 선생님이 다녀갔다고 합니다. 약 국이 없는 이 작은 섬에서 며칠간 방안에서 나오지 않는 이방인 걱정에 할머니는 제 머리를 짚어 보았다고 합니다. 열이 있었는지, 초등 학교 양호실에서 가지고 온 구급약을 먹고 다시 잠이 들었다고 하는데, 꿈을 꾸듯 왜 제게는 그렇게 아련하기만 한지. 오늘은 낚시를 다녀왔 습니다. 이 섬에 들어왔던 첫날을 기억하는지 선생님은 배추를 한 포기 안고 제 방에 찾아왔 습니다. 몸은 어떠냐고, 바람이나 쐬자는 선생님 뒤에는 낚싯대 몇개를 어깨에 멘 가겟집 아 이가 있었습니다. 바람을 쐬자는 말이 헛치레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려는 듯 마을에서 십 여 분 걸어간 낚시터에는 바람이 몹시도 불었습니다. 사람은 셋인데, 그 바람 속에서 고기를 잡 아 올리는 것은 수범이라는 이름을 가진 가겟집 아이뿐인 걸로 기억합니다. 아직도 머리에 열이 있는지, 저를 장형이라고 불러 주던 선생님도 물고기를 낚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군 요. 그저 바다에서 올라오는 도다리며, 아나고며, 광어를 회치는 모습만이 기억날 뿐입니다. 저를 장형이라고 부르는 선생님은 저보다 한 살이 위더군요. 작은 섬의 선생님이라 그런지 그의 얼굴에는 환희와 고독이 묻어 있었습니다. 그런 고독이 저에게 선생님을 김형이라고 부 르기 어렵게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처음 낚시터에 와서 통성명을 한 뒤로 이제 말을 트자 는, 그래서 장형이라고 부르겠다는, 자신보고는 김형이라고 부르라는 선생님에게 저는 싱싱 한 횟감과 함께 소주가 몇 잔 얼큰하게 돌고 나서야 김형이라고 불렀습니다. 김형, 김형, 제 가 처음으로 타인을 향해 형이라는 호칭을 붙여 불러 보는 이 어색한 이름은, 당신과 내가 서로 한 학교를 다녔었다는 동창이라는 것을 알고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서로에게 반말을 하게 된 뒤, 다시 이렇게 당신이라는 말로 편지를 써야 하는 것처럼 어색했지만 그래도 다정 합니다. 처음에 김형은 아직 내 몸살이 다 낳지 않았다면 술을 권하지 않더니, 자신의 제자 가 술을 마시는 것을 나에게 보이고는 더 이상 저를 말리지 않았답니다. 그래요 수범이, 이 제 초등 학교 5학년인 수범이는 제법 어른스럽게 고개를 돌려 가며 선생님 앞에서 소주를 마셨습니다. 저는 머쓱해 있는데 김형은 오히려 저를 보고는 씩 웃더군요. 아, 저도 그랬던가 요. 제가 아주 어릴 적 낚시를 무척 좋아하는, 서울에 사시는 작은아버지가 놀려 오면 함께 낚시를 떠나는 수발은 저의 몫이었답니다. 저도 그 즈음에는 낚시를 무척이나 좋아했었습니 다. 그때는 오늘의 수범이처럼, 작은아버지가 잡지 못하는 아나고나 숭어를 제 낚싯대로 올 리곤 했습니다. 그런 날, 작은아버지가 소주를 드시다 놓고 다시 낚싯대를 잡으면, 작은아버 지 몰래 소주를 마시곤 했는데...... 새만금 간척 사업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마 을 앞바다에는 기름이 뜨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집에 내려온 저는 여느 때처럼 낚 싯대를 어깨에 메고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물고기들이 살이 오르는 가을인데도, 다른 때보다 더욱 많이 낚이는 가을인데도, 바닷가는 한적했습니다. 물고기 몇 마리가 저의 낚싯대에 잡 히고 나서야 사람들이 없는 까닭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등이 굽은 물고기라니요? 옆 구리에 오돌톨한 혹이 자신의 몸집만큼 나 있는 물고기라니요? 이 섬도, 아직 싱싱하고 깨끗 한 물고기가 올라오는 이곳도 얼마 안 있어 등급은 물고기가 낚싯대에 올라오겠지요. 그 때 쯤이면 김형도 수범이도 낚시하는 법을 잊어버리겠지요. 그리고 그 때쯤이면 박산(博山)이었 던 이 마을 전설도 사라지겠지요.

박산은 전설에서, 바다 한 가운데 신선이 사는 산이라고 합니다. 조선 헌종때였다고 합니 다. 어느 여름날, 서해를 항해하던 프랑스 군함 2척이 폭풍에 난파당해 이곳에 정박했다고 합니다. 1000명이 조금 못되는 선원이 이섬에 내려,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전라감사에게 부탁 하고 배 한척을 빌려서는 중국에 구조를 요청했답니다. 이 섬이 박산으로 불린 것은 이때의 일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상하게 생긴 사람들이 갑자기 마을에 들어닥치자 사람들은 섬의 뒷 산으로 피난을 했답니다. 마을 사람 중에는 그들이 귀신이라는 사람이 있고, 또 다른 사람들 은 신선이라고 했답니다. 결국 마을 촌장은 횃불을 들고 그들의 야영지로 다가갔답니다. 그 들은 귀신이 아니어서 불을 보고도 피하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멀리서 온 신선이 틀림없다면 정성을 다해 보살폈다고 합니다. 한달쯤 뒤에 그들은 중국으로부터 보내진 구조 선을 타고 떠났다고 합니다. 그때 그 프랑스 선원들은 마을 사람들이 그들에게 보여준 따뜻 함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선물을 놓고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선물이 들어있던 궤에서 똑딱똑딱 거리는 물건이 있어, 사람들은 그들이 처음부터 신선을 알아보지 못한 대가로 귀신 을 가두어 놓고 떠난 것이라하여, 어느날 큰 재앙이 있을 것이고 그 살풀이를 위해 당굿을 벌이기도 했답니다. 수교 이전에 이미 수교 아닌 수교가 있던 이 섬이, 이제는 한국사 최대 의 토목공사가 벌어진다고 말하던 김형은 우리는 좋은 나라에 살고 있냐고 세계에서 간척사 업을 하는 나라는 덴마크와 한국뿐인데 얼마나 자랑스럽느냐고 말하며 그 알 수 없는 웃음 을 짓어보이더군요. 그 모습이 떠오르는 군요. 영감님 소리들 듣던 아버지의 쓸쓸한 얼굴이 떠오르는군요.


이제 당신과 저의, 저의 속마음을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당신이 다니는 출판사에서 사진 을 찍기 전까지 저는 줄곧 폐선들을 찍고 다녔습니다.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이래 제가 찍어 온 거의 모든 사진들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사진을 찍겠다고 생각하던 것이 중학교 삼 학년 때였을 겁니다. 작은 배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리 풍족한 생활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겨울은 왜 그리도 춥던지, 바다가 꽁꽁 얼기도 했습니다. 그 해 겨울 중학교 졸업을 얼마 앞두고 저와 동무 몇이 교무실 복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습니다. 방학 전에 내야 하는 수업료를 내지 못한 탓입니다. 다음날 틀림없이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은 일어나도 좋다고 했는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람은 저와 저의 바로 옆집에 살던 승철이 둘 뿐입니다. 다음날 저는 학교에 가지 않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배를 나가던 시절이라 집 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다음날도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놀고 있는데 아버지 말소리가 들 립니다. 배가 고장이 나서 일찍 들어 온 것입니다. 저는 슬며시 농 뒤로 숨어 들어갑니다. 그 농 뒤에 숨어 들어가 있던 시간은 고작 한시간 남짓이었는데, 그 시간이 왜 그리 길고 길던 지요. 그 긴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먼지를 뿌옇게 먹은 낡은 사진첩 때문이었습니다. 소리 나지 않게 넘긴 사진첩 속에는 아직 육지에 올라 있는 해화호가 있습니다. 해하호 앞에 는 젊은 날의 어머니와 포대기에 쌓인 갓난아기가 있습니다. 저는 단번에 그 사진 속의 갓난 아기가 저의 어린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백일 사진은 물론 돌 사진도 한 장 없는 저는 그 사진이 왜 그렇게 마음이 들고 기분이 좋았던지, 쥐새끼 한 마리가 제 얼굴 위 로 지나가고 재채기를 참지 못해 그만 들키고 말아 학교에 안 갔다고 매를 맞으면서도 그 사진을 가슴에 꼭 안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저를 한참이나 때리고 난 어머니는 그 자리에 앉 아 한참을 우셨습니다. 이놈아 그런다고 학교 안가면 써. 그래, 배도 안 고프던. 뭐 먹고 싶 어. 아무거나 말해 엄마가 다 사줄게. 울음을 그친 어머니 말을 듣고 너무 좋았던 제 어린 마음이란 다음 번에도 학교 안 가서 매 맞고 맛있는 것을 얻어먹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 다. 제가 어머니에게 먹고 싶다고 한 것은 짬뽕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제가 가장 맛있게 먹어 본 것은 자장면이었습니다. 어린이 날이거나 학교 체육대회 때 함께 가지 못하는 어머니가 오백원짜리 지폐를 한 장을 손에 쥐어 주시며, 엄마 못 가서 미안해. 짜장면 사 먹어, 하시곤 했습니다. 체육대회 때면 늘 그렇게 자장면을 시켜 먹는 동무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 동무 놈들은 무슨 일을 하며 살고 있을까요? 어느 체육대회가 열리는 날 다른 동무들보다 백원이 더 있는 동무 하나가 다들 자장면을 시키는데 혼자 짬뽕을 시켰습니다. 그날 동무들과 함께 얻어먹은 짬뽕 국물은 왜 그렇게 맛있던지, 그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곱빼기를 먹는 아들을 보며 또 아무말 없이 우셨습니다. 밤이 늦어셔야 술이 얼큰하게 취해 들어오신 아버지는 제게 처음으로 용돈을 주셨습니다. 수업료와 함께 받은 오천원짜리가 얼마나 노랗 게 보이던지 저는 그때부터 노란색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이 애비가 못나서 니들이 사람 대접도 제대로 못 봤고, 죽일 놈 그러면 연락이라도 줄 것이지 이 어린것이 무슨 잘못이라고 무릎을 꿀린 대냐 죽일 노옴 죽일 노옴. 애비가 못난 탓이다. 이 애비가 애비 노릇 못한 탓 이다. 애비가 죽일 놈이다. 이 애비가 죽일 놈이다. 아버지의 눈가에 맺힌 이슬방울이....... 고등학교 특별활동 시간에 사진기가 없는 학생은 저뿐인데도 저는 한 달에 한 번이나 할 까 말까 하는 그 시간을 좋아했습니다. 담당 선생님은 그런 제 모습이 가여운 것인지 기특한 것인지 어쩌다 촬영이라도 나가는 날에는 제게 선생님의 사진기를 빌려주시곤 했습니다. 그 때는 폐선들만을 찍어야겠다는 생각도, 이렇게 사진으로 밥을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하 지 않았습니다. 단지 사진 찍는 것이 좋았던 것이지요. 어느 날 저는 누군가가 저와 어머니 그리고 해화호를 찍은 것처럼 이번에는 제 손으로 해화호를 찍고 싶어지더군요. 그러나 이미 그 옛날의 해화호는 바닷가 한쪽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낡은 사진 속에 또렷이 남아 있던 파 란색 글씨의 해화호라는 글씨는 물론이고 고물[船尾]이나 이물[船頭]조차 알기 힘든 배가 제 가 태어날 때 샀던 해화호라는 사실을 알게 된 저는 아무 생각 없이 그 폐선을 사진 속에 담았습니다. 이제 그 사진이 해화호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군요. 그 뒤로 무슨 신이라도 들린 듯 저는 제가 살던 마을이나 다른 바닷가를 찾아 폐선들을 사진기에 담았던 것입니다. 무슨 까닭이 있던 것도 아닌데 그렇게 쓰러지는 배들을 사진 속에 부지런히 담았습니다. 한 때는 넓은 바다에서 부지런히 고기를 낚아 올렸을, 이제는 쓰러진 모습으로만 바다를 꿈꾸는 배들 은 제 사진 속에서 잠드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가요? 옛 생각 때문인지, 낮에 먹은 소주 탓 인지, 아직 낫지 않은 몸살 탓인지 다시 제 몸에 열이 퍼집니다. 밤도 꽤 늦었군요. 졸음이 옵니다.


저는 지금 <삼포 가는 길>을 듣고 있습니다. 가끔 들리는 지지지 먼지 끓는 소리가 대금 소리와 듣기 좋게 어울러집니다. 지금쯤 세 주인공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요? 당신이 가 장 좋아한다는 소설, 이제는 김영동 작곡집에서 듣는 이 <삼포 가는 길>을 저는 T.V에서 보 았답니다. 이 곡도 아마 그때 만들어졌나 봅니다. 괄호 속에 T.V 문학관 주제곡이라고 쓰여 있는데 제가 본 T.V 어느쯤에서 이 음악을 들었던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이제는 이름도 잊은 세 주인공이 만나는 장면이었던지, 기차를 타고 서로의 갈 길을 찾아 떠나던 장면이었 던지...... 지금쯤 배를 잃은 아버지는 어느 삼포를 찾아 헤매고 있을는지...... 당신과 저는 또 어떤 삶을 찾아 떠나야 할지. 당신을 처음 보았던, 아니 국민학교 때 헤어지고 난 뒤에 다시 보았던 그때 생각이 납니다.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는 밥 먹고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제가 폐선 찍기를 잠시 접고, 고정 수입이 되는 출판사의 사진일을 위해 찾아간 곳에서 어딘 지 낯익은 당신을 처음 보았습니다. 출판사 일을 하고 어쩌면 이제 다시는 폐선들을 찍지 못 할 거라는 불안감에 열게 된 전시회에서 당신은 팜플렛을 보며 제게 물었습니다. 군산이 고 향이시군요. 어느 초등 학교를 나오셨나요. 선연 국민학교를 나왔다는 제 말에 당신의 그 반 가워하는 얼굴이 아직 제 머릿속에 이렇게 한 장의 사진처럼 선명합니다. 그래, 어쩐지 많이 들어본 이름이더니, 나 기억나. 왜 삼 학년 때 전학 왔다가 육 학년 때 다시 전학 간, 나 유 선영. 그래요, 당신이 유선영이라는 것은 이미 저도 알고 있었지요. 처음 출판사를 찾아가던 날 인사를 했으니까요. 그러나 사실 저는 그날 당신이 저와 같은 동창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당신이 반가웠던 것처럼 저도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고향을 생각 할 수 있는 동무가 생겼다는 마음에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었답니다. 그 반가움이 커져서 이 렇게 당신에게서 저를 떠나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제대로 사진을 배우 겠다고 전문 대학에 입학하며 서울에 올라온 지도 벌써 다섯 해가 넘었는데 가끔은 사무치 도록 고향이 그립고 외로웠지만 잘도 참아 왔는데, 아마 당신을 만나고서야 저는 고향을 생 각할 수가 있었나 봅니다. 어쩌면 이제 그저 좋아서 찍는 사진이 아닌 먹고살기 위한 사진에 서 느끼는 쓸쓸함을 당신이 달래 줬는지도 모릅니다. 왜 당신의 남자를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나 모릅니다. 당신의 따스함 때문인 느껴야했던 제 욕심때문이겠지요. 언젠가 당신이 작 업실로 쓰고 있던, 보일러가 고장난 그 아파트에서 먹던 따듯한 저녁이 생각납니다. 이제 당 신과 함께 따듯한 저녁을 먹을 수 없겠지요. 이제 얼마지 않아 입춘도 지나고 봄이 오면 당 신이 이름 알려주던 꽃들도 피겠지요. 산과 들에 절로 자라나는 녹색의 가늘고 긴 줄기에 자 줏빛 줄이 있는 흰 꽃이 종처럼 피어 봄이 오는 소리를 보미보미 알린다던 까치무릇도 필터 인데 그 꽃을 보며 당신도 제 가슴 긴 겨울에 봄꽃으로 피웠다고 말 했을 때, 당신이 보이던 그 희미한 웃음을 어리석게도 왜 사랑의 답이라 생각했을까요? 그 뒤에 당신이 제게 보여주 던 따스하던 친절들을 모두 다 사랑이라 여겼던 이 미련함이라니요? 지금 생각해보면 당신 은 어떤 사람들에게도 늘 친절했습니다. 까치무릇을 닮았던 당신, 그 꽃이 지고 다시 그 꽃 이 필 때쯤이면 제 가슴속의 당신도 지워질런지.......


섬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오는 길입니다. 열이 아직도 채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래 도 군산에 나가 병원에 한 번 들러 봐야 할 것만 같습니다. 무슨 큰 병을 얻은 것처럼 붉은 열꽃이 제 몸 이곳 저곳에 피어 있습니다. 아마 제 몸도 까치무릇처럼 봄이 오는 것을, 당신 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김형은 학기 중에 한 번 들러 이곳 학생들 단체 사진을 한 장 부탁한다고 그러더군요. 그러마고 약속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제가 다시 이 섬에 들어올 수 있을지 아련하기만 합니다. 이제 소각장에 가서 해화호를 찍는 일만 남았 습니다. 아직 배가 들어올 시간은 세 시간 남짓 남았으니 천천히 다녀오면 될 듯 합니다. 그 러나 제 마음은 벌써 그곳에 갈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제 몸에 핀 열꽃 때문이라는 핑계 를 만들지만 사실은 그게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마 이 섬에 들어오면서부터 저는 그곳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려웠던 것이겠지요. 어쩌면 당신을 떠나야 했던 일들이 저를 이곳으로 몰고 왔는지도 모르는 일이겠군요. 이곳에 와서야 깨닫습 니다. 가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멀어지는 것이 있음을. 가야 하지만 갈 수 없는 곳이 있음을 이곳에 와서야 어렴풋이 깨닫습니다. 어떻게 갈 수가 있을까요. 다른 곳으로 팔려 갔다면 그 래도 좀 나으련만 아직 해화라는 이름을 달고 저 죽을 날을 기다리는 모습을 어떻게 볼 수 가 있을까요. 다시 지어지는 새 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바다가 뭍이 되는 까닭으로 쓸 쓸히 쓰러지고 있을, 아버지에게는 한 삶 든든한 꿈이었고 저에게는 고향 같은 그런 배를. 저와 같은 이름을 달고 있는 배가 그렇게 쓰러지는 것을 어떻게 제 사진 속에 담을 생각을 했던지 이제는 다른 폐선들도 다시는 사진 속에 담을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지난 날 제가 찍었던 많은 폐선들도 이제는 제 손에서 벗어나야겠지요. 당신이 살고 있는 서울에 가면 그 동안 찍었던 배들을 아직도 깨끗하고 푸른 바다에 나가 곱게 화장(火葬)이라도 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는 무슨 모습들을 제 사진 속에 담아야 하나요? 아직은 알 수 없는 답이지만 당신이 잊혀질 때쯤이면 그 답을 얻을지도 모르겠지요. 사람 사는 모습을 좀더 솔직하게 글 속에 담고 싶다던 당신, 좋은 글 쓰시길...... 처음, 다시 좋은 동무가 될 수 있다는 미련한 생 각도 이렇게 제 마음 속에서 지웠습니다.

이제 그만 이 길고 지루한 편지를 접어야 할 것 같습니다. 며칠 뒤 웨딩드레스를 입은 당 신의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련지, 당신의 두볼에 핀 보조개가 아른거립니다. 늘 행복하 시길..... 부디.


까침바우


어른들은 참 이상하다. 우리에게는 서로 사이 좋게 지내라고 하면서도 왜 어른들끼리는 서 로 싸우고 욕하는 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내 이름은 장한빈이다. 선연초등학교 4학년, 반은 하나뿐이니까 우리 학교에 다니는 모든 학생들은 다 1반이다. 주소는 전라북도 군산시 옥서면 선연리 81번지. 말이 군산시지 군산 시내에서는 10번이나 5번 버스를 타고 한 시간쯤은 들어와야 하는 촌 동네다. 하지만 뭐, 촌 동네라고 해서 그리 불편한 일은 없다. <라이온 킹>이나 <홍길동>같은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없는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것도 조금만 기다리면 비디오 집에서 빌려다 볼 수 있다. 버스가 서는 곳은 하제다. 언제가 선생님이 하제라는 말이 내일이라는 말의 순 우리말이라고 알려준 적이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동네 사람들은 오늘이 아닌 내일에 살고 있는 거다. 버 스에서 내려서 2.3분쯤 걸어가면 우리 집이 있는 까침바우가 나온다. 나는 우리 마을이 참 좋다. 내일에 살고 있는 것도 멋있고, 밤이면 내가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별을 맘껏 살펴볼 수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마을의 이름이 너무나도 멋있는 것 같다. 까침바우는 까 치바위에서 온 이름이라고 한다.

지금, 저기 멀리 수평선 너머 바다를 모두 땅으로 만드는 새만금 간척사업처럼 옛날 옛날, 한 옛날,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에는 이 마을도 모두 바다였다고 한다. 누가 간척사업으로 이 마을을 뭍으로 만들었는지는 모른다. 아마도 한울님 아니면 최치원 아저씨였을 것만 같 다. 그러니까 그때, 이 마을이 모두 바다였을 때, 지금 이 마을처럼 바닷가 어느 마을에 불가 사리라는 괴물이 나타나서 여자들만 잡아갔다고 한다. 포도청 아저씨들이 그 괴물과 싸워 봤 지만 늘 졌다고 한다. 그 못된 괴물은 맨날맨날 여자들을 잡아갔지만 사람들은 그 괴물이 너 무 무서워서 모두 벌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그때 어느 용감한 사람이 아내가 잡혀가면 구할 생각으로 꾀를 썼다. 그 사람은 아내의 발에 질긴 명주실을 감고 잠을 자며 며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아내가 없어진 걸 알고 사내는 명주실을 쫓아가서 불가사리가 살고 있는 동굴을 찾아냈다. 사내는 죽을 각오를 하고 불가사리와 사흘 밤낮을 싸웠다. 사내는 피 투성이가 되면서도 용감하게 싸웠기 때문에 불가사리를 물리치고 아내를 데려 올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동안 아이가 없던 아내의 배가 갑자기 불려 왔다. 아무래도 불가사리와 그 아내가 얼레리꼴레리 한 모양이다. 아내가 아이를 낳았을 때 사내는 동티를 없애기 위해 아이를 보 자기에 싸서 썰물일 때 바다에 띄워 보냈다. 불쌍한 아이는 그만 죽게 된 것이다. 그런데 뜻 밖에도 하늘에서 까치 한 마리가 내려와 아이를 싼 보자기를 물고는 바다 한가운데 높게 솟 구친 작은 바위섬에 내려다 놓았다. 까치는 계속해서 아이를 위해 먹을 걸 구해 주기도 했고 책도 가져다주었다. 아이가 책을 읽으면 그 소리가 중국에까지 들렸다고 한다. 글 읽는 소리 를 들은 뱃사람이 아이를 구해 주었는데, 그 아이가 최치원이라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 뒤 로는 사람들이 그 바위를 까치바위라고 했다. 그래서 이 마을도 까침바우가 되었다. 물론 지 금까지 내가 한 이야기가 참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다. 새만금 간척사업이 시작되면서 바 다를 메운다고 까치바위는 조각조각 부셔져서 바다에 실려 나갔다. 삼촌에게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는 마을이 자랑스러웠지만 바위가 부셔지는 걸 보고는 어쩌면 거짓일지도 모른다 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어른들은 마을 이름이기도 한 까치바위를 없애고 쓰레기장을 만들었을까?


삼촌에게 전화를 받은 건, 막 점심을 먹고 <세상 밖으로>라는 비디오를 보며 방바닥을 뒹 굴고 있을 때였다. 삼촌은 내가 학교에 가지 않은 게 이상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절대 로 꾀병을 부리거나 해서, 일요일도 아니고 삼일절이나 식목일 같은 공휴일도 아닌 그저 지 루하기만 한 6월의 어느 화요일에 학교를 가지 않은 건 아니다. 까침바우에 사는 학생이라면 모두가 그런 것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내가 학교를 가지 않은 건 순전히 동네 어른들이 우 리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들이야 이 죽여주는 일에 모두들 만족하고 있지만.

우리 마을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뱃일을 해서 먹고산다. 물론 전남듸젤 아저씨나 밧데리집 아저씨, 중국집 아저씨나 종금상회 할머니도 있기는 하지만, 뭐 굳이 따지자면 새 발의 피라 고 해야 할 정도다. 그래서 그런지 어른들은 사람을 부를 때 이름보다는, 아이구 칠성호 선 주, 어여 영남호 뱃동사, 길용호 아줌, 이렇게 부르길 더 좋아한다. 그래서 나도 내 이름보다 도 해화호 손주로 더 유명하다. 해화호는 아빠랑 뱃동사 아저씨랑 함께 타던 우리 배의 이름 이다. 원래는 할아버지가 타던 걸, 할아버지가 나이가 드셔서 아빠가 탔다고 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아이구 해화호 선주님, 아빠는 어이 해화호 선장, 이렇게 불러야 한다. 빵빵. 해 화호는 바다를 가르며 하루나 이틀쯤 일을 해서 노랑조개, 배꼽, 소라, 생합, 피조개, 골뱅이 따위를 잡아온다. 우리 배뿐 아니고 칠성호도 영남호도 신광호도 모두들 조개를 잡아온다. 배라고 생긴 배들은 모두들 봄여름 가을 겨울 조개를 잡아오는 거다. 아니다. 지난 겨울부터 는 일을 하지 않았지만, 겨울에만 일을 하는 배들도 있었다. 김 양식을 하는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작은 배가 그런 배들이다. 겨울에만 일을 하기 때문에 김 양식을 하는 것이 조개를 잡는 배들보다는 돈을 훨씬 적게 벌 것 같지만 또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할아버지의 반대 때문에 그만두었지만, 아빠도 언젠가 김 양식을 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 김 양식이 돈을 벌 면 몇억도 벌지만, 실패하면 집안 말아먹는다는 할아버지의 말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 다. 집안을 말아먹어서 그런지 아니면 지난 겨울에 김을 키우지 못해서 그런지, 슬기네 집은 다시 김 양식을 할 수 있는 전라남도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 슬기는 나중에 내가 각시 삼으 려고 했던 나의 단짝이다. 그런데 슬기네 집이 이사를 가면 슬기도 전학을 가야 한다. 편지 를 쓴다고는 했지만 슬기가 전학을 가는 건 너무나도 싫은 일이다. 어른들이 싸우지만 안았 다면 지금도 슬기와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텐데, 어른들이 싸우는 바람에 슬기와의 사이만 괜히 멀어졌다.


동네가 이 모양인 것이 결코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말을 꺼냈으니 끝을 맺어야 할 것 같다. 어른들이 싸우기 시작한 것은 새만금 간척사업이 시작되고 보상이 나오면서부터다. 쬐그만게 어떻게 그런 걸 다 알고 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건 아주 간단한 일이다. 동네 아줌마들의 수다 소리를 십 분만 듣고 있으면 모든 걸 알 수가 있다. 그렇다고 내가 쩨쩨하 게 아줌마들의 수다 소리나 엿듣는 건 물론 아니다. 바로 우리 집 코앞에 바다가 있기 때문 에 배 들어올 시간이면 아줌마들은 우리 집에 모여서 무슨 할말이 그리도 많은 지 웃고 떠 들고 난리가 난다. 그러니 뭐 듣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다 듣게 되는 거다. 에이, 말이 또 엇나갔다. 그러니까 보상이 나오면서 사람들은 서로 더 많은 보상을 받기 위해 아옹다옹 싸 움을 시작한 거다. 저 집은 얼마를 받는데 우리는 왜 얼마냐? 저 집은 이사를 온지 얼마 지 나지 않았는데 왜 보상을 주느냐? 뭐 처음에는 이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결국엔 김 양 식하는 사람들과 조개를 잡는 어촌계 사람들이 싸움을 하게 되었다.

옛날, 까침바우라는 마을이 처음 생기면서부터 조개를 잡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지금으로부터 한 10년 전쯤에 김 양식을 하는 사람들이 까침바우에 찾아 들었다고 한다. 조개를 잡던 사람들은 조개를 잡는 바다를 많이 잃기는 하겠지만, 바다가 하도 넓기 때문에 그 정도는 괜찮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땅이 원래 어촌계 땅이기 때문에 임대료를 조 금씩 받았다고 한다. 조개를 잡는 사람들이나 김 양식을 하는 사람들이나 사이좋게 잘 살아 왔던 거다. 그런데 문제는 새만금 간척사업 보상이었다. 김 양식을 하는 집은 겨우 다섯 집 인데, 김 양식장 앞으로 나오는 보상이 조개를 잡는 배 한 척 앞으로 나오는 보상의 열 배가 넘었다. 그래서 어촌계 사람들은 원래 김 양식을 하는 땅이 어촌계 땅이기 때문에 김 양식장 앞으로 나오는 보상의 절반은 어촌계 사람들이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김 양식을 하는 사람들은 배 한 척 정도의 보상을 받을 수 있으니 손해는 없다고들 했다. 김 양식을 하는 사 람들은 그럴 수가 없었다. 황무지 같은 땅에다 양식장을 일구었으니 모두들 자신들이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김 양식을 하는 집은 겨우 다섯 집뿐이었다. 까침바우에 사는 나머지 사람들은 어촌계 편인 거다. 김 양식을 하는 사람들이 먼저 법원에 고소를 했다. 법원에 내 는 돈도 적은 게 아니지만 절반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어촌계 사람들이 맞고소를 했다. 결국 아직까지 두 쪽 모두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어촌계 사람들이 각자 가지고 있 던 배 앞으로 나오는 보상은 지난 해에 어른들이 바다 어디쯤에 있는 섬에 배를 가져다주 고 다 받은 상태다. 보상을 다 받았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바다에서 일을 할 수가 없지만 할아버지는 올 봄에 어디서 배 한 척을 사 왔다. 처음에 아빠는 더 이상 배를 타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미 사 온 배를 놀릴 수도 없고, 또 보상금은 아파트를 사는데 다 써 버렸기 때문 에 다시 뱃일을 해야만 했다. 해화호가 있을 때처럼 맨날맨날 일을 할 수는 없었다. 분명히 그건 불법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경비정에 걸려서 벌금을 물기도 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래도 칠성호도 신광호도 복남호도 모두 그 섬에 가져다주었기 때문에 아빠가 잡아오 는 조개는 비싼 가격에 팔 수 있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도 너도나도 다시 배를 사 와서는 뱃일을 했다. 바다가 더러워져서 옛날처럼 조개가 많이 잡히지는 않는다고 했다. 몰래몰래 일하고 경비정을 피해 도망 다니기도 하면서, 그래도 어른들은 다시 뱃일을 하는 것이 마냥 좋은 모양이었다. 할아버지도 신광호 할아버지도 요즘은 마냥 싱글벙글이다. 그런데 그 모습 이 톰과 제리처럼 서로 으르렁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결코 좋게 보이지 않은 모양이다. 김 양식 사람들이 불법 어업을 한다고 신고를 했다.


지난 토요일이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집은 또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으레 그러려 니 하고는 뱃머리에 나가 보았다. 판장에는 마을 어른들과 처음 보는 아저씨들이 서로 뒤엉 켜 싸우고 있었다.

"니기미, 좆도 벌어먹고 살자고 허는 짓인디, 너무 허잔혀잉. 아 글씨, 우리는 이 조개가 곡 식이나 매 한가진디 곡식을 발로 차는 법은 없는 것이다고잉."

아빠의 목소리였다. 나는 얼른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갔다. 아빠는 처음 보는 아저씨 들 가운데 한 사람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그 옆에는 엄마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서 있었 다.

"당신, 이거 못 놔, 지금 당신 공무 집행 방해하는 거야."

TV에서 보면 공무 집행을 방해한다고 해서 사람을 잡아 가두고 두들겨 패기도 하던데, 아 빠도 잡혀가면 어쩔까, 나는 마음을 졸여야 했다. 그때 신성호 방씨 아저씨가 끼워 들었다. 방씨 아저씨는 조개를 푸는 커다란 플라스틱 삽을 들고 처음 보는 아저씨들을 때릴 것 같이 하며 말했다.

"내미럴, 우리 같은 무식한 뱃놈들이 공무 집행을 알기나 허남, 좆도 씨벌. 그저 바다나 파 먹고 살뿐이지. 아무리 생각혀 봐도 오늘 일은 당신네들이 잘못을 헌 것 같구만잉. 긍께, 존 말로 헐 때 그냥 사라지소잉. 당장 꺼지지 않으면 당신들 배때기가 성허지 않을 것잉께 글로 코롬만 아쇼잉."

"우리야 뭐 위에서 시킨께 조사 차원으로 나왔지만, 당신들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안 좋을 것인디. 오늘은 어차피 퇴근 시간도 되고 해서 그만 가것지만 당신들 서슬 보니 월 요일 날에는 뭔 일이 나도 나 것구만. 암튼 이번에는 위에서 단단히 벼르는 사람이 있응께, 아 그것은 알아야 할 것이여."

그제야 나는 한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아빠가 처음 보는 아저씨의 멱살을 풀어 주었기 때 문이다. 하지만 아직 걱정이 남아 있다. 월요일에 다시 온다는 그 아저씨들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음날, 여느 때처럼 우리 집에 모여든 아줌마들을 통해서, 나는 그 아저씨들이 감사원에 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제 그 사람들 말여, 왜, 한빈이 아빠랑 한판탕 떠들고 간 사람들이 글씨 감사원서 나왔 는디, 김 양식 쪽에서 신고를 했다고 허더구만잉."

"참말이어라, 아따 해도 너무 하는구만. 아무리 서로 안 좋은 일이 있다고 같은 동네 살면 서 어찌 그럴 수가 있다요잉."

"누가 아니래잉, 그래서 이참에 어촌계에서 멍석말이를 허자고 난리가 났다는 구만."

"또 신고를 하면 어첬코 헌다고 그런다요잉. 그쪽에서 돈을 많이 써서 높은 사람들이 이번 에 조사를 하라 했다고 허더구만."

"긍께, 아주 마을 사람들이 모다 모여서 패를 나눌 모양이데잉. 그려서 오늘 밤 한꺼번에 김 양식 허는 사람들을 조지믄 지들도 어쩌지 못할 것이라고 허드랑께."


그날 밤, 나는 낮에 아줌마들이 한 이야기를 까마득히 잊고 하제에 있는 오락실에까지 가 서 오락을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갑자기 밖에서 카가쾅,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렀다. 나 는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싸움 구경이 무엇보다도 재미나는 일이라는 것은 알 지만 모처럼 만에 기록을 깨려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말소 리 사이로 유리뿐만 아니고 물건들이 부셔지는 소리가 들렀을 때, 나는 기록을 깨는 것을 다 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사람들은 버스가 서는 곳과 오락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모여 있 었다. 나는 슬기의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그곳이 슬기네 집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낮에 아줌마들이 하던 말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었다.

"이런 법도 없는 동네가 어디 있땅가요잉. 아무리 잘못을 했기로서니 사람을 이렇게 잡드 리하는 법이 참말로 어디에 있다요잉. 아이그, 그, 나 죽네 나 죽어잉."

"지 죽는 것은 아는 년이 그려, 같은 동네 사람들이 바다에서 거져 나오는 조개를 파먹었 다고 신고를 혀, 이년아. 이런 씨알 배기 없는 쌍년의 자식들."

"씨를 말려야 헌단게잉. 이 마을이 처음 생김서부텀 우리는 조개를 파먹고 살았는디, 니미 바다를 내어 줬더니 고마운지는 모르고 오히려 쥐 새끼처럼 우리를 물고 지랄이여, 지랄이. 이 것들을 아조 이 마을에서 몰아내야 헌단게잉. 아주 몰아내야 허고 말고잉."

슬기네 집은 참말이지 엉망진창이었다. 유리창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고, 가끔 슬기를 따라 얻어 타던 자가용도 얼마나 찌그러져 있던지 차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어른들 은 계속해서 집과 차를 부수고 있었다. 슬기는 한쪽 구석에 오두마니 앉아 엉엉엉 울고 있었 고, 슬기네 아빠 엄마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머리카락을 뽑히기도 하며 손찌검을 당하고 있었다. 나는 슬기에게 다가가 슬기에 손을 잡았다. 참말이지 참말이지 나는 그 속에서 슬기 를 구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슬기는 나를 지렁이 보듯 바라보았다. 조금 창피한 얘기지만 나는 그 눈빛이 너무나도 무서워서 그만 슬기네 집을 박차고 나와 마을 뒷동산까 지 올라갔다. 안 그래도 전학을 간다고 사이가 멀어진 것만 같았는데, 이제 다시는 슬기를 보지 못할 것만 같았다. 까치바위가 있을 때라면, 마을에서도 별이 으뜸 잘 보이는 까치바위 에 갔겠지만 까치바위가 부서지고 나서부터는 뒷동산에 오르게 되었다. 그래도 까치바위 다 음으로 별이 잘 보이는 곳이다. 나는 언젠가 삼촌이 알려준 자미성을 찾아보았다. 우리 눈으 로는 잘 보이지 않은 별이지만, 그곳에도 우리와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산다고 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싸움도 없고 서로 미워하는 법도 없다고 했다. 그런 세상이 있을 수 있을까?

별을 한참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 오작교에서 불길이 쏟아 올랐다. 무슨 불인지 알고 싶기 도 했지만 나는 거기까지 갈 기분이 아니어서 그만 집에 들어왔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어제였다. 왜 오늘은 엄마가 빨리 일어나라 는 잔소리를 한 번도 하지 않나, 뭐 그런 생각을 하며 이불 속에서 뭉그적거리고 있을 때, 승철이 목소리가 들렸다.

한빈아 놀자, 라고 했지만 그건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하는 인사였다. 어제 같으면, 한빈아 학교 가자, 이런 식이어야 했다. 그런데도 녀석은 두 번 세 번 놀자를 되풀이했다. 그제야 나 는 승철이 녀석이 아침에 분명히 뭔가를 잘못 먹었을 거라고 생각하며 이불 속을 빠져나왔 다. 바보 같은 녀석은 자기의 잘못도 모르고 가방 대신 등에 릴낚시를 메고 있었다. 그 옆에 는 승철이 뿐이 아니고 성호도 같은 모양을 하고 서 있었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무엇인 가에 홀린 기분이었다. 혹시 개교기념일은 아닐까도 생각해 보았다. 아니다. 개교기념일은 지 난 4월에 벌써 찾아 먹은 적이 있다. 나는 꿈이 아니길 바라며 승철이에게 학교를 가지 않느 냐고 물어야 했다.

"오늘은 학교 안 가도 된 당께. 어제 동네 어른들이 김 양식하는 사람들 몰아내고 있을 때, 경찰들이 올까 베 오작교에 불을 놓았당께. 그려 갖고는 버스도 못 오고 저만치에서 돌아가 단고 허드랑께."

"맞어, 아부지가 그러는디 김 양식에서 신고를 허가지고 배도 못 나가고 벌금까정 물게 생 겼었다는디, 그래서 동네 어른들이 김 양식을 지어 패부렸짠여. 그것 땜에 어젯밤에 또 짭새 들이 왔다가 갔당께. 아직까지 동네 어른들이 쬐다 오작교에 모여서 짭새들을 못 오게 헌다 는디. 그려서 경찰들이 돌아가고 김 양식 보상 나올 때까지 우리들을 학교에 안 보낸다고 혔 당께. 그려서 우리는 낚시 갈려고 허는디, 한빈이 너는 안 갈 테여."

"니들이나 가. 나는 그냥 집에 있을랑께."

아빠를 졸라 릴낚시까지 사기는 했지만, 이제 나는 낚시 따위에는 관심이 없어졌다. 바다 가 오염되어 썩은 고기들이 올라온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망둥이나 아나 고가 잡히기에는 조금 이른 철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집에 있다고 해서 뭐 별다 른 일도 없을 것 같아 대문을 돌아 나가는 승철이와 성호를 불러야 했다. 어쩌면 재수가 좋 아 우리가 잡은 고기들을 사가는 아저씨들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낚시는 가지 않는 게 훨씬 나을 걸 그랬다. 점심도 굶어 가며 우리 셋이서 잡은 게, 글쎄 망둥이 세 마리와 아나고 한 마리뿐이다.


<세상 밖으로>를 다 보지 못한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나는 지금 오작교로 가는 길이다. 삼촌에게 어제까지의 일을 말해 주었더니, 삼촌은 오늘이나 늦어도 내일쯤 집에 온다고 했 다. 그 동안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새겨 보았다가 알려줄 것을 부탁했다. 처음에는 삼촌 의 부탁을 거절했지만 삼촌의 유혹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삼촌은 부탁을 들어주는 조건으로 졸업식 날에 사주기로 했던 천체만원경을 미리 사준다고 했다. 언젠가는 받게 될 것을 고생 까지 해 가면서 미리 받으려하는 내가 매욱해 보이기도 하겠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다. 3년이 라는 세월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를 나는 잘 알고 있다. 우리 마을도 어른들이 마냥 말하는 개판이 된 것이 고작 3년 정도가 걸렸을 뿐이다. 그리고 그 3년 동안 누군가 또 새로운 별을 발견한다면 나에게는 그만큼의 기회가 없었지는 것이다. 나는 아무도 발견하지 않은 별을 발 견할 거다. 그 별 이름은 장한빈이다.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도 틀린 생 각이다. 내 이름을 붙여야만 그 별이 온전히 내 것이 되는 거다. 내 별을 갖는다는 일이 얼 마나 근사한 일인가? 귀찮긴 하지만 그래서 나는 모처럼 만에 찾아온 황금 같은 휴식을 삼 촌의 부탁으로 보내야 할 것 같다.

오작교가 까치와 까마귀가 견우님 직녀님을 위해 하늘에서 만들어진 다리이기 때문에 이 마을에 있는 오작교도 굉장히 멋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그 건 아주 커다란 오해다. 오작교는 그저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똥강 위에 만들어진 다리다. 아마 이 마을이 이름 이 까침바우고, 오작교가 이 마을로 들어오는 유일한 다리이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모 양이다.

삼촌이야 늘 사진기를 들고 다니니까 그저 찰칵찰칵 사진을 찍으면 그만이지만, 나는 사진 을 찍을 수 없으니까 자세히 보아 두어야 할 것 같다. (대학까지 가서 사진을 배운 삼촌이 조금은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말이지 나도 사진 정도는 찍을 수 있다. 얼마 전 기 혁이네 집에 놀려 가서 눈을 대고 단추만 누르면 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구두쇠 할아 버지 때문에 우리 집은 그 흔한 사진기 한 대가 없다. 요즘 같은 시대에 사진기도 한 대 없 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창피할 것 같아 이렇게 말하기로 했다.)

오작교에는 장작불이 활활활 높게도 타오르고 있었다. 다행히도 경찰차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마을 사람들만 흔전만전 장작불에 구은 돼지고기와 술을 마시고 있을 뿐이었다. 수다쟁 이 아줌마들은 여전히 수다를 떨고 있었고 우리 또래의 아이들은 장작불 옆에서 돼지고기를 한 점이라도 더 집어먹으려 달려들었다. 나도 다른 때 같으면 녀석들처럼 행동했을 테지만 오늘은 참기로 했다. 나에게는 막중한 사명이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나는 녀석들과는 달리 어른들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방씨 아저씨가 제일 먼저 알은체를 해 왔다.

"한빈이 니도 막걸리 생각 있어서 이리 왔냐잉. 안 그래도 잘왔다잉. 여그 아저씨들 술이 떨어졌응께 이 돈 가지고 가서 술 좀 받아오너라잉. 우수리는 니 쓰고잉."

아빠도 그러라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갈 수가 없었다. 사나이의 약속이 돈보다 중요하 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원에서 소주를 서너병 사고 남은 돈은 다 내 것이 되는 것인데 참말 아깝기는 했다. 빨리 뛰어갔다 온다면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이기 때문에 그냥 갔다오기로 했다.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소주를 다섯병을 들고 돌아올 때에 경찰차 두 대가 오작교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얼른 아빠에게 다가가 소주를 내밀며 경찰차가 다가오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어른들 가운데 몇 사람이 장작불에 나무를 우겨 넣고 기름을 부었다. 경찰차가 오작교 앞에까지 다가왔을 때는 불이 더욱 더 거세졌다. 나는 다리 에서 조금 떨어진 둑 위에서 다리 저편을 바라보았다. 경찰차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렸을 때 숨어야 될까 말아야 될까를 가지고 나는 심각한 고민을 해야만 했다. 경찰차에서는 경찰 아저씨들만 내리지 않고 불독이라고 불리는 3학년 때 우리 반 담임이었던 선생님과 교장 선 생님이 함께 내렸기 때문이다. 벌써 몇 녀석들은 비겁하게 꽁무니를 내빼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도 없어서 어른들이 있는 곳에 숨기로 했다.

"오순경님, 지들 때문에 고생이 많소잉. 점심이나 대접혀야 쓰는디, 지들이 지금 까치바위 굿을 지냉께 일체 타지 손님을 받지를 못혀요잉. 오순경님도 이해 혀지요. 글고 지가 오늘 아침에 김순경 통해서 보낸 봉투는 잘 받아보아지요잉."

이장 아저씨의 목소리였다.

"옜기 이사람. 그런 엉너리 그만 허고 여그 학교 선생님들이 오셔네잉. 자네들 굿이고 뱃일 이고 다 좋은디 아그들까지 학교를 안 보냉께 이 양반들이 여그까지 안오셔나잉. 이제 그만 들 두고 내일부터는 학교를 보내 것다고 선생님들에게 말씀 드리소잉."

"아이고 오순경님도 지들 사정 잘 암시롱 그러싸요잉. 지들이 까치굿을 할 때는 일절 사람 들 출입이 안되잔은 가베요잉. 긍께 선생님들한테는 오순경님이 잘 좀 말씀 드려보쇼잉. 우 리도 뭐 자식새끼들 학교 안 보내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지라."

"이 사람들이 좋게 좋게 넘어가려 했더니, 사람을 우습게 보나. 자네들이 언제부터 까치바 위에 그리 치성을 들였다고 굿이네 뭐네 하는 것이여. 내 물차를 불려 이 불 다 꺼 버릴 수 도 있응께 지금부터 선생님이 하는 말씀 잘 들으소잉. 그래야만 위에다도 내 동네 일뿐이라 고 얼버무릴 수 있다는 것만 명심하고잉."

"에, 에, 아, 아......"

에, 에, 아, 아, 교장 선생님의 목소리다. 다시 에, 에, 아, 아를 한 번 되풀이 한 다음에 친 애하는 으로 시작하는 말을 할 것이다. 우리들의 휴식에 갑자기 복병이 생긴 거다. 이럴 때 방씨 아저씨가 지난 토요일처럼 삽을 들고 선생님을 몰아내면 좋으련만, 다리가 막혀서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에, 에, 아, 아, 친애하는 까침바우 하제 주민 여러분, 역사와 전통이 빛나는 훌륭한 마을 에 사시는 여러분들이 무척이나 자랑스럽습니다. 미리 미리 일일이 찾아다녔어야 옳은 줄 알 지만 그만 바쁘다는 핑계로 오늘에야 이렇게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송구스럽고 또한 영광입 니다."

"니미, 송구는 뭐고 영광은 또 뭐여. 아 이장, 뭐 하는 거셔. 그냥 밀고 나가랑께."

"맞어, 이럴 때 아니믄 언제 우리게 속 사정을 세상에 알리것남. 어제 경찰차도 오고 감사 원이가 뭔가도 와서는 그냥 가는 게 바로 우리가 하나로 뭉친 단합의 힘이라 이 말씀이시. 그렁께, 다른 말 필요 없이 어업권이 허락되고 보상이 결정 날 때 까정 이러고들 있어야 한 당께."

"오늘은 거 뭐시기 텔레비에서 안 나오남. 아, 영남호도 봤제. 어제 텔레비에 나가 나왔당 께. 그 놈들 오랜만에 옳은 소리를 하더구만잉. 아, 우리야 이러고 싶어 이러남. 다 먹고살자 고 허는 짓이지. 어제 텔레비에서 우리편을 들어 주었응께 소장도 함부로 우릴 어쩌지 못할 것이네잉. 어제는 지방 방송이었지만 우리가 이러고 며칠만 개기믄 틀림없이 서울서도 올 것 이네잉. 그냥 앉아서들 술이나 믁소잉."

"근다고 선상님 앞에서 이러믄 쓰요잉. 그지 말고 그냥 조용히 뭔 소링가나 들어보시다잉." "맞소, 맞아. 그냥 술이나 마심시롱 들어나 보잔께요."

아까운 일이었다. 마을 어른들이 한 두마디만 더 하면 교장 선생님도 얘기를 그만 둘 것 같았는데 이장 아저씨가 산통을 다 깨 놓았다. 하지만 아직 실망하기에는 이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조용히는 있었지만 교감 선생님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 다. 그저 술을 마시거나 할뿐이었다.

"......에, 에, 아, 아, 그냥 본론으로 들어가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 학 교의 학생 수들이 점점 줄어들는 가운데서도 폐교가 되지 않은 것은 여러분들의 자녀가 차 지하는 비율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학교를 나오지 않으니 글쎄 학생 수가 한 반 에 다섯 명도 안되더군요. 그 수 가지고는 어찌 수업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중 고등 학생은 그냥 두더라도 우리 초등 학생만은 학교에 보내주십사 하는 것이 제 말의 요지인 것 입니다."

교장 선생님의 말이 끝나고 한동안 어른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교장 선 생님의 말은 공평하지가 못하다. 가려면 다 가야지, 중학교 고등학교 형들은 나 두고 우리들 만 학교에 간다는 건 아무래도 잘못된 생각인 것 같다.

"어이, 달수 알았다 허고 돌아가시게 허소잉. 우선 시간이나 벌어야 할 것잉께."

"아따, 혜성이성. 그럴 필요가 뭐가 있당가요. 그냥 안된다고 딱 명토를 박아야 헌당게요잉. 아무튼 이 일은 조용히 넘어 갈 것이 아니고 버르집을대로 버르집어서 높은 곳에서 서류만 보고 일하는 그 속 모르는 놈들도 다 알아야 한당게요. 아, 바다에서 그냥 두면 썩어 날 조 개 좀 파먹고 산다는 디 그걸을 가지고 불법 지랄하는 꼴을 더 볼라요잉. 달수성, 얘들 못 보낸다고 명토를 박으쇼잉."

"아, 이 사람아. 지금 지소장 말 듣고도 모르는감. 서슬 봉께 지소장이 당장이라도 물차를 부를 기세던디 그러면 우리는 다 잡혀가는 것이여잉. 세종이 자네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김 양식 그놈들 줘 패진 이제 겨우 이삼일 지났을 뿐이여. 그 사람들 성질도 가라앉히고 다 시 불려 들여서 화해라도 헐려면 시간을 벌어야 하는 거셔. 이번 일을 버르집을려면 시간을 일단 벌어 놓고 알려도 알려야 허는 것잉께 일단 지소장을 돌려보내는 것이 순서고. 오늘이 나 내일 우리 해화놈 온다네. 자네들도 알다시피 그놈이 사진으로 신문사 밥도 가끔은 얻어 먹는다고 헝께 그놈 신세나 한 번 기다려 보세잉."

안심이었다. 어른들은 우리를 학교에 보낼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 모양이었다. 학교를 보 내는 쪽으로 의논을 해서 전화를 준다고 했지만 선생님이 돌아간 뒤에 한 의논이라는 게 고 작 어떻게 김 양식과 화해를 하느냐, 그리고 어떻게 해야 지금 하는 뱃일에 대한 허가 권을 따내느냐, 뭐 그런 것들이었다.

저녁이 되자 아줌마들이 손수레에 시루떡하고 먹거리들을 가지고 나왔다. 밤이 되도록 별 다른 일이 더 벌어지지는 않았다. 마을 어른들은 당번을 정해서 불을 지핀다고 했다. 나도 오작교에서 밤을 세워야 하지만, 졸음이 머리끝까지 차 올라서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더 이 상 아무 일도 없을 것만 같았고 삼촌도 뭐 이 정도는 이해할 거다.


삼촌의 목소리다. 다른 때 같으면 못들은 체 하고 잠을 잤을 테지만, 오늘은 삼촌의 목소 리가 너무나도 정답기만 하다. 나는 이불을 박차고 마루에 나와 한껏 반가운 체 말을 했다. "삼촌, 왔어. 나, 오작교에서 다 보고 있다가 이제 막 왔당께. 참말이랑께."

"어, 그래. 한빈이 안 잤구나. 여기. 이 거, 선물."

삼촌이 내게 내미는 건 틀림없는 천체만원경이다.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천체만원경 통해 별을 보고 싶었다. 나는 얼른 신발을 신고 삼촌의 손을 잡아끌었다. 삼촌 피곤하다는 엄마의 잔소리가 있었지만 지금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행히 삼촌은 내 마음을 아는지 뒷동 산에 함께 올라 주었다.

나도 약속을 지켜야 했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이야기를 삼촌에게 해주었다. 어 른들은 참 이상하다는 말을 했을 때, 삼촌은 그냥 웃기만 했다. 나는 삼촌에게 약속을 지켰 으므로 별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눈으로 볼 때와는 너무나도 다르게 별들은 저마다 각기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벌써 여름이 다가오고 있는 모양이다. 여름철에 보이기 시작 하는 거문고자리와 전갈자리 그리고 뱀자리와 독수리자리들이 또렷이 보인다. 싸움은 땅에서 만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뱀과 땅꾼이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나는 북두칠성 국자 안에 있 다는 자미성이 보고 싶어졌다. 싸움도 없고 서로 미워하는 법도 없는 별. 눈에는 보이지 않 더니 참말이지 천체만원경으로 보기에도 작은 별 하나가 북두칠성 국자 안에서 흐릿하게 보 였다. 나는 삼촌에게 자랑을 하고 싶어 자미성을 찾았다고 말했다.

"삼촌, 삼촌 자미성이랑께. 자미성. 근디 참말로 저기서는 싸움이 없대야."

"왜, 삼촌이 거짓말 한 것 같아."

"아니 그게 아이고. 저기 뱀자리하고 땅꾼자리하고도 싸우잔여. 땅에서도 싸우고 하늘에서 도 싸우고 늘상 싸움만 항께, 싸움 없는 디야 있을까혀서. 그런 디가 있으믄 참 좋을 것 같 아서 말이여."

"왜, 한빈이는 이곳이 싫어. 이곳도 알고 보면 참 좋은 땅인 걸."

"삼촌 아니랑께. 참말로 하나도 안 좋탄께. 어른들은 맨날 싸우고, 까치바위도 부셔져서 쓰 레기장 되고, 긍께 이 땅은 좋은 땅이 아니고 나쁜 땅이여잉. 어른들이 싸우는 바람에 슬기 랑 사이가 멀어졌짠여. 글믄 나중에 각시 삼을 수가 없는디......."

아빠도 엄마도 나중에 내가 슬기를 각시 삼기로 마음 먹을 걸 모르고 있지만 삼촌은 알고 있었다. 동무들에게 얘기를 하면 녀석들은 틀림없이 얼레리꼴레리를 외치고 다녔을 거다. 그 렇다고 아빠한테 얘기하기에는 세대 차이가 너무 난다. 그래서 삼촌에게 얘기를 한 적이 있 다. 물론 비밀을 지킬 것을 사나이의 이름으로 약속을 하고 서다.

"한빈아. 핑계처럼 들리겠지만 삼촌 말 한 번 들어볼래. 우리는 모두 참 좋은 땅에 살고 있 지만 우리가 그 걸 깨닫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해. 그 걸 깨닫기 위해선 나무가 필요하 거든. 천년에 한 번씩 사랑이라는 열매가 맺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름다운 건 사람들 가 슴 가슴에 저마다 사랑이라는 열매가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이 땅도, 더럽고 썩은 냄새가 나지만 참 좋은 땅이라고 할 수 있는 거고. 한빈이가 슬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그리고 별을 좋아하는 것처럼, 어른들은 또 어른들대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게 있을 거야. 예를 들면 가족 이라던지 그런 거. 그 게 조금 달라서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 사랑하는 마음은 있을 거야. 그렇지 않을까?"

나는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삼촌의 말이 틀린 것도 같고 맞는 것도 같았기 때문이 다. 나는 사랑이라는 게 무어냐고 물어 보고 싶었지만 그만 두기로 했다. 사랑 정도는 나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별을 좋아하고 슬기를 좋아하는 거, 뭐 그런 게 아닐까? 하지만 사랑하는 게 조금씩 다르다고 해서 서로 싸우고 미워하는 어른들이 이상한 건 여전했다. 이 제 집에 들어가 잠을 자야 할 것 같다. 내일은 학교에 가야겠다. 어른들은 내일도 여전히 오 작교에 불을 지핀다고 했고 둑길로 걸어가면 2.3시간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힘이 조금 들기 는 하겠지만 어쩐지 내일이 아니면 전학을 가는 슬기를 영원히 보지 못할 것만 같다. 내가 슬기에게 어른들의 잘못을 빌어야겠다. 그리고 나중에 내 각시가 되어 달라는 말도 내일은 꼭 해야겠다.


늦잠을 잤나보다. 다른 날 같으면, 해가 중천에 떠올랐다고 엄마한테 잔소리를 들었을 텐 데, 엄마도 아빠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 오작교에들 가신 모양이다. 나는 라면을 끓여먹고 학 교에 가려고 수문이 있는 고갯마루를 넘어서고 있었다. 고개를 넘어 오른 쪽으로 가면 둑길 이고, 계속 큰길로 가면 오작교가 나온다. 그런데 나는 고개를 넘고도 오른쪽으로 가지 않고 큰길을 따라 뛰어야 했다. 멀리 보이는 오작교에서 연기가 커다랗게 솟아 오르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오작교까지 한달음에 달려가 숨을 고르기도 전에, 어제 경찰 아저씨가 말한 물차가 소방차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빠도, 싸움을 잘할 것만 같던 방씨 아저씨도, 그리고 이장 아저씨랑, 다른 아저씨들도 모두 경찰 아저씨들이 잡아가고 있었다. 엄마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고, 할아버지도 그저, 야 이눔들아. 이 개만도 못헌 놈들아, 먹고 살자고 헌 짓을 가지고 사람을 그리 개 부리듯 몰고 가는 법이 어디 있다냐. 이 개만도 못한 놈들아, 버럭버 럭 소리만 지르고 있었다. 아줌마들 몇하고 할머니는 경찰 아저씨의 다리를 잡기도 했지만, 경찰 아저씨들은 할머니랑 아줌마들을 뿌리치고 아빠랑 동네 아저씨들을 데리고 갔다. 비겁 하게도 삼촌은 그저 사진만 열심히 찍고 있었다. 삼촌이 말한 참 좋은 땅은 저렇게 잡혀가고 싸우는 사람들이 사는 곳일까? 아무리 봐도 저 건 사랑이 아니다. 참 좋은 땅이 있기는 있을 까? 자미성을 옮겨다 놓고만 싶다. 나는 갑자기 학교로 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동네 어 른들이 다 경찰 아저씨들에게 잡혀갔으니 내일은 가기 싫어도 학교에 가야할 거고, 슬기를 만나면 말하려고 준비했던 말들도 그만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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