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의 응모작들은 예년의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작품의 소재 자체도 자연스러움을 잃고 있는 경우가 많고, 인물의 성격도 과장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사구조의 불균형이나 주제의식의 과잉 상태가 여기서 비롯되고 있다. 신인다운 패기와 실험성은 자신의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해 내는 힘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소재의 신기성(新奇性)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 가운데 본심에서 주목을 받았던 작품들은 <프라이 데이와 결별하다>(김언수), <전화 번호부>(응모자 이름), <전사들의 행진곡>(응모자 이름), <이야기 속의 이야기>(응모자 이름) 등이었다. 이 가운데 중편소설의 소설적 주제와 확대라는 점에서 <전화 번호부>, <전사들의 행진곡>을 먼저 지목하였다. <전사들의 행진곡>은 두 개의 이야기를 결합시킨다. 대학에서 쫓겨난 운동권 출신의 젊은이와 월남전 참전 후에 중동 건설현장에서 일했던 고엽제 피해자가 각각 두 개의 이야기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현실을 위해 일했던 이들이 역사의 흐름으로부터 외면 당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하였지만, 두 인물이 이야기의 끝 장면에서 부자지간임을 암시함으로써 의도적인 인물의 설정 자체가 소설적 상황에 대한 설득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전화 번호부>는 부랑자 보호시설에 수요되어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소설적 상황의 설정 자체에 극적 요소가 담겨져 있다. 특히 외부 세계와의 접속을 꿈꾸며 살아가는 이들의 희망을 상징하는 기호로서 헌 전화번호부를 소설적 장치로 활용한 점이 흥미롭다. 그러나 사회 제도의 문제성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두드러지게 드러남으로써 소설적 형상성보다는 넌픽션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서사적 기법과 그 새로운 해석이라는 점에서 <프라이 데이와 결별하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골랐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는 환상이라는 이름의 글쓰기에 대한 실험을 보여준다. 그러나 소설적 묘사와 그 감각성은 인정되지만 서사적 균형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약점이 너무 크다. 중편소설은 중편으로서의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소설적 양식이라는 점을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프라이데이와 결별하다>는 반복되는 일상의 체험 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주인공의 내면의식을 끈질기게 추구하고 있는 작품이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일상의 테두리에서 벗어나는 순간 삶의 모든 가능성이 차단된다. 삽화적이긴 하지만 삶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처리하고 있는 늙은 유리창 청소부의 죽음은 그 인상이 매우 강렬하다. 주인공이 스스로 모든 외적 관계로부터 자신을 차단시키면서 자기 존재의 영역을 확인하고자 하는 노력은 정체성을 잃고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대비된다. 특히 삶의 범위를 좁혀가면서 주인공이 결국 자기 자신을 그 좁혀진 공간으로부터 증발시키는 소설적 결말도 인상적이다. 현대인의 삶과 그 존재에 대한 회의를 그려내는 이야기 자체가 그 구성의 작위성에도 불구하고 감응력을 발휘한다. 자신의 주제를 형상화하는 호흡이 빠른 문장도 소설적 문체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뢰감을 주고 있다. 이같은 특징들이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고르는 데에 도움을 준 셈이다. 당선작을 낸 김언수씨에게는 문단의 새로운 이름으로 오래 기록될 것을 당부드리며 다시한번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응모자 여러분들에게도 또다른 도전을 위해 노력할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