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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妄覺)과 망각(忘却)사이의 재난
봉준호의 <기생충>
-이현재



봉준호는 <플란다스의 개>부터 <기생충>에 이르는 7편의 장편영화에서 늘 '망각'(忘却/妄覺)이라는 사태에 집착해왔다. 그만큼 봉준호의 영화에서 '망자'(忘/妄者)는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았다. 봉준호의 '망자'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무엇이 '망각'의 조건이 되고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봉준호의 영화에서 '망각'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진술이 곡해된다는 것(妄覺)이며, 다른 하나는 주어진 사실이 잊어진다는 것(忘却)이다. 이 때 방향 모두 어떤 사실이 누군가에게 주어졌고, 그것이 굴절되어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망각'이란 어떤 사실이 누군가에게 주어지지 않는 이상 나올 수 없는 현상인 것이다. 즉, 알고 있다는 상황이나 정황도 없이 '망각'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망각의 조건에는 캐릭터를 둘러싼 환경, 즉 '주어진 사실'과 필연적으로 결부되어 있다.

<기생충>은 알려진 바대로 두 계급의 가족이 충돌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택(송강호 분)네 식구는 반지하에서 피자박스를 접으며 생계를 유지하는 가정이다. 하지만 아들 기우(최우식 분)의 친구가 그에게 박 사장(이선균 분)네 과외를 주선하며 상황이 달라진다. 기우와 기택네 가족은 박 사장 가족의 필요를 조작해가며 모든 식구를 박 사장 집에서 근무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인물들은 상호 간의 망각(妄覺)을 일으킨다. 먼저 기택의 가족은 그들의 신분을 스스로 조작해가며 박 사장과 그 가족의 '망각'을 조직하고, 이를 통해 기존에 일하던 이들을 밀어낸다. 목적은 박 사장의 집에서 일자리를 얻어 좀 더 나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함이었으나, 이는 원래부터 그 장소에서 일하던 사람뿐만 아니라 그 공간과 관련된 거의 모든 기억을 밀어내며 박 사장이 거주하는 공간 자체를 망각시킨다. 그렇게 기택의 가족이 마지막으로 밀어낸 인물은 집사 역할을 담당하던 국문광(이정은 분)이었다. 그는 단순히 집사가 아닌 집의 역사를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국문광이 기우를 집에 들이며 처음으로 소개한 것은 집의 역사였다. 지금은 박 사장네 가족이 거주하는 대저택은 본래 건축가 남궁현자 선생의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낸 건축물이라는 것이다. 물론, 집의 주인이라 할 만한 건축가 남궁현자는 더 이상 살지 않는다. 대신 그 집을 돈 주고 산 박 사장 네, 박 사장을 통해 생계를 해결하고 있는 집사가 살고 있을 뿐이다. 이때, 국문광은 그 집의 내력을 알고 있는 유일한 극 중 인물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기생충>은 그를 통해 망각이 드러나는 방식을 현현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집에서 쫒겨났던 국문광이 귀환한 순간을 생각해보자. 그는 일자리를 되찾기 위해 집으로 귀환하지 않는다. 그는 일자리 대신 집이 품은 시대의 과거에 묻었던 비밀을 되찾기 위해 귀환한다.

국문광이 되찾고자 한 것은 집의 방공호에 숨긴 병든 자신의 남편 근세(박명훈 분)였다. 국문광의 남편이 있는 방공호는 <기생충>의 주제를 관통하는 주된 형상이라 할 수 있다. 박 사장네 집에 방공호가 있는 까닭이 시대를 반영하는 결과물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지하 방공호는 과거에 북한의 침공을 대비하여 만든 공간이었다. 결국, 냉전과 반공의 결과물인 것이다. 국문광이 이 곳에 병든 남편을 숨길 수 있었던 까닭 역시, 국문광에게 남궁현자의 집은 단순한 건축물 이상으로 생의 터전이었기 때문이었으며, 그렇기에 이 공간을 알고 있는 생존자 또한 국문광과 그 남편을 제외하고는 없었던 것이다. 이 점에 있어 박 사장이 거주하고 있는 집에 있는 방공호는 실재의 공간이었다기보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망각(忘却)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문광이 이 공간을 다시 실재의 세계로 복원시킨 순간, 기택의 가족이 조직했던 망각(妄覺)은 곧 위기에 처한다.

이후 기택의 가족은 국문광과 망각된 방공호를 차단하기 위해 온갖 애를 쓴다. 이는 박 사장이 예민하게 생각하던 "선을 넘는다"는 투정과도 관련되어 있다. 자본을 통해 구축한 자신의 망각(妄覺)된 공간 역시, 망각(忘却)에서 복원된 상들에 의해 위협받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기택의 가족 역시 계층과 계급에 관계없이 망각(忘却)된 공간이 선을 넘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공모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현실을 망각(忘却)시키는 망각(妄覺)에 공모하고 있었으나, 서로 깨닫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봉준호의 <괴물>은 이상하게 시작된다. 실패한 사업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한강으로 투신하기 전, 괴물을 응시한다. 그리고 그를 말리려는 동료들에게는 "끝까지 둔해빠진 새끼들. 잘 살아 들"이라는 냉소를 남긴다. <괴물>에서 그는 한강물에 휩쓸려갔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그럼 기택은 돌아올 수 있을까? 돌아온다 한들, 그는 과연 근세가 몰고 온 재난과 다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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