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당선작
2018
2017
2016
2015
2014
2013
2012
2011
2010
2009
2008
2007
2006
2005
2004
2003
2002
2001
2000
1999
1998





<공동정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이야기하다.
- (김채희)


영화를 공동 연출한 이일란, 이혁상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공동정범>은 국가폭력을 성찰하는 다큐멘터리, 더 나아가 인간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작품이길 바란다." 영화를 본 관객은 그들의 의도대로 공동정범으로 구속되었던 다섯 사람 이외에 공권력도 그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느낀다. 한편으로는 정당화될 수 있는 유일한 폭력인 공권력이 누구를 위해 작동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공동정범>은 국가폭력을 되돌아보는 '성찰적 다큐멘터리'의 첫 번째 목적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국가폭력을 고발하는 영화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망라해 수없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이 주제는 자칫 관객의 피로도만 자극할 수 있다. 현명한 연출자들은 이를 피하고자 '인간에 대한 성찰'을 영화의 한 축으로 설정했다. 그들은 또 다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서로의 입장이 충돌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시점을 영화에 제시함으로써 관객들이 능동적으로 상황을 재구성하도록 만들었다.

그렇다면 고발, 성찰과 더불어 다큐멘터리가 추구하는 가장 필수적인 덕목인 사건의 '진실'에 대해 <공동정범>은 어떻게 접근하는가? 2000쪽이 넘는 검찰 조사기록이 끝내 변호인단에게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은 다섯 명의 피고인을 '공동정범'으로 기소했다. 쟁점은 여섯 명이 사망한 사건의 책임이 특공대와 농성자 중 어느 쪽에 있는가라는 것으로 모아졌다. 그러나 <공동정범>의 전작에 해당하는 <두 개의 문>은 책임 공방 그 자체가 의미 없다고 결론 내린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진술을 해줄, 살아남은 농성자들은 감옥에 있고, 검찰의 조사기록은 누락된 상태에서 진실에 대한 접근은 원천적으로 차단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변호인과 인권단체 그리고 용산참사진상위원회가 벌인 현실에서의 진실 추적은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한다. 세상이 용산을 잊고, 언론의 관심도 이 사건에서 멀어졌지만 '영화'는 구속된 농성자들이 풀려날 때를 기다렸다.

<두 개의 문>의 배턴을 이어받은 <공동정범>은 '내부자들'에게 시선을 돌려, 그들의 목소리로 망루 안의 진실을 재구성하려 했다. 그러나 수많은 목소리들로 구성된 클로드 란츠만의 <쇼아>가 그 풍부한 아카이브로도 아우슈비츠의 진실을 재현하지 못했던 것처럼, <공동정범> 역시 같은 점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또한 7만 명이 넘게 관람한 <두 개의 문>과 비교했을 때, <공동정범>이 동원한 1만 명이라는 숫자는 실패라 규정지을 수 있는 또 다른 근거가 된다. 그렇다면 관련 영상, 증언, 기록물 그리고 한 맺힌 절규의 목소리로도 진실을 재구성하는 데 실패했으며 관객에게 호소하는 데도 실패한 이 영화는 어떤 의미도 지니지 못하는가?

브레히트는 죽은 동료들보다 오래 산 자신을 자책했다. 그는 꿈속에서 친구들이 이야기했던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라는 말 때문에 자신이 미워졌다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서 토로한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강한 자'라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브레히트처럼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며 그들이 더 강했더라면 이 사태는 애초에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출소하고 난 이후 누구도 자신들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에 가장 큰 고통을 느꼈다고 말한다. 가슴속 회한을 털어놓을 길 없었던, 말을 잃은 자들은 종교에 귀의했고, 술로 연명했고, 사람들과 담을 쌓은 채 살았다. <공동정범>의 연출자들은 '말의 통로'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두 개의 문>이 광장과 영화의 언어로 외연을 확대하고 밖으로 시선을 돌리는 데 집중했다면 <공동정범>은 그 반대의 전략을 취했다. 대중의 관심과 참여를 통해 정치, 사회적 이슈를 자극했던 전작이 그 결과로 '분노'와 '연대'를 얻었다면, <공동정범>은 살아남은 자들의 목소리를 영화에 가득 채워 서로의 상처를 보듬게 했다. 공적 영역에서 사적인 영역으로 이행한 <공동정범>은 이렇게 실패를 통해 '치유'라는 예술의 오래된 기능을 탐색한다.

 

Copyright 2002 donga.com. E-mail.sinchoon@donga.com
Privacy poli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