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당선작
2010
2009

2008
2007
2006
2005
2004
2003
2002
2001
2000
1999
1998






[단평]
노동력과 사라진 정체성

- 지승학

  이 영화 속에서 정체성은 유린당한다. 한 나라, 한 개인의 정체성은 스스로의 언어를 포기한 채 받아들인 또 다른 언어의 어눌함으로 규정되어 그들 각각의 국가적 정체성을 따지기 어렵게 만든다. 그들 입으로 어디에서 왔다고 말하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방가’(김인권)의 출신지인 ‘부탄’은 바로 그러한 정체성의 무의미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적 지명일 뿐이다. 그들은 오직 자신의 가치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야 한다. 단지 그 뿐이다.

  이 땅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이다. 그들의 정체성은 일단 그렇게 결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공론화 할 수 없다. “이 우즈벡 새끼가” 라는 ‘마이클’(에숀쿠로브 팔비스)에 대한 ‘알리’(칸 모하마드 아사두즈만)의 폭언은 그들의 정체성이 무의미를 넘어 폄하의 모습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방가를 바라보는 ‘배타적’ 시선은 그래서 누가 누구를 배타적으로 보는 것인지 혼동된다. 이 혼동은 서서히 ‘그들과 우리의 관계’에서 ‘나와 우리의 관계’로 진행될 수 있게 만든다. 심지어 용철(김정태)조차 ‘방태식’(김인권)과의 관계를 끝까지 숨겨야 하며, ‘장미’(신현빈)가 한국에서 낳은 아들조차 한국 사람임을 인정받지 못한다. 이런 슬픈 연결 고리는 존재와 정체성의 경계에서 ‘그들’과 ‘우리’를 구분 짓지 못하는, 아니 구분 지을 수 없는 암세포의 전이처럼 우리와 그들을 아프게 한다.

  이 아픔은 “돈벌러 왔지 일하려고 왔냐?”라는 ‘마이클’의 말처럼 노동력과 ‘임금(wage)’의 관계 역시 명확하게 틀 짓지 못하게 한다.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임금은 노동을 망각하게 하고, 그 노동은 우리의 존재가치를 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자신들이 ‘개새끼’로 분류된다는 사실 조차 무감각하게 만든다. ‘개새끼’는 망각된 정체성을 지칭하는 극단적 이름이다. 그래서 ‘여기서 일하려면 이런 말에 기분 나빠하지 마’ 라는 ‘장미’의 충고는 우리가 받는 임금과 자본이 우리의 정체성을 얼마나 무가치하게 만들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방가’는 이미 이러한 사실을 초월해 있다. 그가 한국인으로서 한국사회에 설 곳은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화기 너머에 계시는 어머니에게 ‘방태식’이 해줄 수 있는 말은 실질적으로 모두 가상이며 허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정체성마저 가상으로 만들어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노동력으로 자신의 정체성이 규정되는 현대사회의 일원이라면 누구나 겪어야하는 과정을 내밀하게 묘사한다. 현대 사회에서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는 자기를 가상으로 규정하는 임의적 정체성으로만 넘쳐날 뿐 나의 존재가치를 드러나도록 만들어주는 요소는 하나도 없다. 노동력에 의해 규정되는 임의적인 정체성이 비단, 방가와 ‘그들’의 문제만은 아닌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가의 가상의 정체성, 임의적 정체성은 오히려 한국인이라는 실체적 정체성과 만났을 때 빛을 발한다. 부탄 출신 외국인이라는 임의적(가상) 정체성으로 인하여 방가는 한국어 강의를 할 수 있게 되고, 외국인 노동자들의 대변인 노릇을 할 수 있게 된다. 그가 제공하는 노동력은 역설적이게도 정체성을 망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방가는 사회에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방가는 한국 땅을 밟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간다.

  이것은 결국 노동 제공으로 규정되는 우리의 정체성의 문제는 바로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는 가상 또는 임의적 정체성을 깨닫는 것에서부터 시작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제공하는 노동력은 나의 진정한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진심으로 고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의 정체성은 가상의 배타적 경계를 벗어나 실존의 문제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방가와 방태식은 우리에게 바로 그 문제를 짚어주는 슬픈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Copyright 2002 donga.com. E-mail.sinchoon@donga.com
Privacy policy.